[몿지니의 꾸러미] ‘춤과 몸’ 편
‘몿지니의 꾸러미’는 매월 하나의 주제로 <몿진>을 기획하고 글감을 구성하면서, 몿지니들이 영감을 받았던 재료들을 한데 모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13호는 ‘춤과 몸’을 테마로 보코가 채집한 영감의 꾸러미를 풀어봅니다.
다큐멘터리 <땐뽀걸즈>
감독 이승문 (2017)
거제도 조선소에 구조 조정의 바람이 분다.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은 19살이 되면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선택해야 한다. 다큐멘터리는 그곳의 ‘땐(스)(스)뽀(츠)반’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학교에서는 면봉을 불로 지져 눈썹을 올리거나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학교 밖에서는 아르바이트로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거나 아픈 엄마를 대신해 어린 남동생을 돌본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각자 감당해야 하는 하루분의 무게가 다르다. 하지만 춤출 때만큼은 역할과 이름표를 떼고 비슷한 표정이 된다. 춤추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기쁨이 서려 있다. 무대 위 10대 여성들의 춤은 욕망하는 몸을 가진 자의 빛나는 움직임이 된다. 꾸러미에 쓰려고 다큐멘터리를 한 번 더 봤는데 지난번과 같은 대목에서 또 찔찔 울었다.
산문 ‘발레리나의 가슴’
무용 연구가 정옥희 (2019) / 문학3
창비에서 만든 문예지 <문학3> 에서 ‘여성과 몸’을 주제로 한 산문 시리즈를 연재했다. 시인, 소설가, 활동가, 기자, 연구자, 의사 등 12명의 여성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쌓아온 여성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 중 춤에 대해 말하고 쓰고 가르치는 무용 연구가 정옥희 님의 산문을 소개한다. ‘내가 사랑하는 발레도 탈코르셋 할 수 있을까?’, ‘그 결과를 발레의 퇴보가 아닌 진보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성이 굶지 않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몸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발레 전공생으로 보낸 청소년기부터 현재까지 춤추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사유와 물음을 던진다. 여유 있을 때 시리즈 전체 정독을 추천한다. 과학사, 고전 문학, 생애 구술사, 자기방어훈련, 장애, 질병, 출산과 육아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목소리로 ‘여성과 몸’에 대한 고민을 만날 수 있는 반가운 기록이다.
전시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 아르코 미술관
일단 전시 제목부터 너무 설레버렸는데, 이민진 소설가의 <파친코>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시는 ‘역사 서술의 규범은 누가 정의해 왔으며, 그 역사의 일부가 되지 못한 이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전시장 1층에서는 남화연 작가의 신작 최승희 무용가의 예술에 주목하는 <반도의 무희>와 정은영 작가의 여성국극과 퀴어 공연을 연결 짓는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에는 바리공주 설화와 한국의 여성 무속을 장기간 리서치해 온 제인 진 카이젠의 <이별의 공동체>가 상영된다.
전시를 다 보고 내가 메모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최승희의 꿈처럼 조선, 만주, 중국, 몽골을 잇는 장대한 동양무용이 전수되었다면 어떤 춤이었을까?’, ‘강함이란 어디서 오는가?’, ‘몸은 저항의 한 방편이 된다.’, ‘사라져 버린 것과 이미 사라진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내가 전시를 보고 온 직후, 코로나19로 인한 공공부문 다중이용시설 중단 정책에 따라 6월 14일까지 한시적으로 중단되었다. 휴관 기간 동안은 아르코 미술관 유튜브에서 아쉬운 대로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전시는 무료, 1시간 간격으로 입장 가능하며 6월 16일부터 21일까지 사전 예약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