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의 춤, 둔둔바와 모리바야싸
만딩고 문화의 리듬은 한 인간이 태어나 죽음을 맞는 생애 동안 중요한 순간들을 촘촘하게 기록하고 빛내줬다. 탄생과 성인식, 결혼 등을 축복하는 춤이 유독 많지만, 오늘 소개할 춤은 공동체가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과 관련된 춤이다. ‘강한 남성들의 춤’이라 알려진 ‘둔둔바(Dundunba)’와 ‘여성의 소원이 이뤄짐을 축복하는’ 춤 ‘모리바야싸(Moribayassa)’다. 전통적으로 각기 오직 남성들만, 오직 여성들만 출 수 있는 춤이다.?
아프리카 만데 사회 속에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 맡은 역할이 각각 달랐다. 동물을 사냥하고, 농사짓고, 마을과 마을 사이 분쟁을 책임지는 건 남성의 일이었다. 여성은 생명을 치유하고 낳는 존재로 여겨졌다. 동물을 사냥하고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여성의 일이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말도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것을? 의미했다. 남성에게 전쟁이란 피비린내가 나는 물리적 힘의 싸움을 뜻했고, 여성에게 전쟁이란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는 일을 뜻했다. 싸움에서 전사한 남성과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여성은 같은 방식으로 땅에 묻어줬다고 한다.?
이 두 리듬은 아프리카 젬베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들어봤을 유명한 리듬이자 춤이지 않을까. 둘 모두 프랑스인들이 ‘춤’이라 부르기 전부터, 긴 시간동안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전통 사회의 ‘의식(Ritual)’에서 시작되었다. 의식에서 지켜야 하는 룰과 금기는 명확했다. 시간의 흐름으로 ‘낡은’ 의식은 현대의 새로운 유희가 되기도 하고, 여전히 하나의 정신으로서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가 마주할 오래된 ‘의식’을 만나러, 지금으로부터 꽤 먼 거리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자.
내가 처음 ‘둔둔바’ 춤을 본 건 유튜브에서 였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마마아프리카 미팅(Mama Africa Meeting)’이란 축제였다. 어둑한 밤, 거리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큰 원을 그리고, 원의 중앙에서 젬베들과 함께 춤추는 사람을 보고 있다. 같이 박수치고 몸을 끄덕 대다가, 어떤 파트가 되면 갑자기 열 댓명이 중앙으로 뛰쳐나와 마구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것이다. 양팔을 어깨 위로 들고, 가슴을 앞으로 쿵쾅 쿵쾅 내미는 동작이었다.
그 파티 영상을 보자, 사뭇 지금까지 여행하며 만나 온 광장들이 스쳐갔다. 온 가족이 살사를 추던 멕시코의 소칼로 광장들, 형형색색으로 꾸민 옷을 입(지않)고 거리를 가득 메워 밤새 키스하고 춤추는 브라질의 카니발, 힙과 스웩이 가득한 이들이 댄스 배틀을 벌이던 뉴욕 거리. 이 춤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춤추었지만, 둔둔바 파티는 조금 다른 결의 친밀함이 느껴졌다. 꼭 한 동네 사는 것 같은 친밀함이랄까.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눈치 게임을 벌이듯 앞서거니 나가 춤추는 게 재밌어 보였다.
‘둔둔바’는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성인식 때 추는 춤인데, 기니 국립 발레단의 레퍼토리에 ‘강한 남성들의 춤’이란 컨셉으로 공연되었다. 한 손엔 작은 도끼를, 다른 한 손엔 하얀 천을 든 남자 무용수 들이 성큼성큼 무대를 휘젓는다. 채찍을 든 이도 있다. 금방이라도 적을 만나면 펄쩍 뛰어 나갈 듯한 태세다. 젬베를 다리에 끼고 빙글빙글 도는 뮤지션 앞에 서서 한 명씩 솔로를 보인다. 마치 뮤지션과 금방 싸움을 할 것처럼 다가가서는 뒤로 풀쩍 공중제비를 넘고, 채찍을 휘두르며 가슴을 강하게 진동시킨다. ‘강한 남성들의 춤’이란 별칭의 이 ‘둔둔바’ 춤은 세계를 투어한 기니 국립 공연단의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았다.
공연에서 표현하는 ‘싸움’은 공동체의 맥락에선 실제 싸움으로 행해졌다. 한 손엔 도끼를, 다른 한 손엔 하마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든다. 양 팔뚝에 커다란 원형의 액세서리를 낀다. 두 무리의 남성들이 각각의 원을 그리며 서로를 지켜보다, 얼굴을 맞댄 채 두 줄로 서서 싸움을 시작한다. 한 쪽이 항복할 때까지 싸운다. 가끔 폭력적이고, 피로 물들기도 했다. 남성의 용맹함과 강인함을 드러내고 증명받는 방식이었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기에 진입하는 남성 그룹은 나이가 많을 수록 더 힘을 가지는 사회 속에서? 약자였다. 성인기에 이미 진입한 남성 그룹과 그 갈등이 가장 심했다. ‘둔둔바’는 남성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실제의 갈등을 정면으로 맞서고 끝맺게 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실제로 싸우지는 않고, 하나의 유희로서 행해진다. 남성과 여성의 안무가 달랐으나, 서로 바꿔 추기도 할 정도로 그 경계가 유연해졌다. ‘둔둔바’는 기니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춤이 되었고, 기니 코나크리에서 열리는 젬베 댄스 잔치를 ‘둔둔바’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전 세계에 기니 리듬이 알려지며, 젬베가 울려 퍼지는 곳곳의 축제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강인함을 뽐내며 둔둔바 춤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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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바야싸(Moribayassa)’는 아주 오래된 여성들만의 의식이다. 삶을 살다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내 주변의 사람들도 주술사조차 이를 해결하지 못할 때, 가장 마지막 해결책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라 한다. 모리바야싸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여성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렇게 기도를 한다. “내 어머니의 병이 낫는다면, 그 날 모리바야싸를 추겠어요!”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닭 1마리를 당신께 바치고, 모리바야싸를 추겠어요!”
‘모리바야싸’는 여성들의 삶에서 특별한 힘을 주는 의식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일생에 딱 한 번만 소원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가 이뤄졌다면? 그동안 당신을 옥죄었던 모든 고통이 끝난 것을 축복하며, 아주 흥겨운 리듬이 당신을 위해 연주될 것이다! 소원을 이룬 여성은 막 아무렇게나 기운 누더기를 입고, 깨진 조롱박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간다. 머리도 빗지 않고, 다리도 드러낸 채, 사회의 온갖 금기를 깨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녀를 뒤따라 어린 아이들과 마을의 다른 여성들이 노래 부르며 나온다. 그들은 함께 부서진 바가지를 나뭇가지로 두드리며 마을을 흥겨운 스텝으로 돌고 또 돈다. 그리고 도착한 망고 나무 아래에 헌 옷을 묻고, 새 옷을 입고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여성이 헌 옷을 벗기 시작하면, 뒤따르던 아이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집으로 뛰어간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금기’다! 그가 과거의 역경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 걸 축복하기 위해서.?
춤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특별한 동작은 없다. 단순한 스텝과 정해진 리듬에서 함께 노래부르고 마을을 돌고, 옷을 버리는 행위 전체를 ‘모리바야싸’라고 불렀다. 평생 한번만 이뤄질 수도 있는 이 ‘기도’는 누군가를 해치는 행위에 절대로 쓰이지 않았다. 항상 액운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로서 수행되었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중병도 치료하고, 아이를 왜 가질 수 없는지를 사람들은 알게 되었지만, 까마득한 과거부터 시작된 이 춤에 대한 믿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