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세네갈의 사바르 Sabar
이번 호부터는 만딩고 문화가 시작된 말리, 부르키나파소를 떠나, 이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대표적인 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오늘은 첫번째로 가장 서쪽에 위치해 푸르른 대서양을 마주한 나라 세네갈과 대표적인 춤 사바르(Sabar)를 만나보자!
다리를 하늘로 가볍게 차올리며, 모래가 흩날린다. 여름철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따다다닥 북소리가 울리고, 양손과 다리를 번갈아 하늘로 뻗으며 춤추는 이들의 얼굴엔 환희가 번진다. 세네갈의 춤을 처음 만난 건, 2014년 즈음 아프리카 춤 정보를 찾기 위해 본 다큐 영상 속에서였다. ‘시간의 춤, 영혼의 노래’라는 제목의 EBS 다큐프라임 ‘춤, 세상을 흔들다’ 시리즈 마지막 3부작이었다. 거기도 부르키파소에서 본 춤과 마찬가지로, 색색깔의 마스크들이 춤을 추고, 길거리에서 멋진 드레스를 입은 이들이 연주자들과 춤을 췄다. 모래와 거리에서 춤추는 모습 자체만으로 자유롭게 느껴졌고, ‘춤’이라는 건 ‘댄스 센터’, ‘극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서 태어나고, 훨씬 폭넓고 거대한 존재이자 예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네갈의 만딩고 문화는 그동안 안내서에서 소개한 말리, 부르키나파소쪽 과는 차이가 있다. 책 ‘만데 음악’에 따르면 만딩고 문화의 음악과 춤은 크게 두 갈래 – ‘세네감비아 만딩카 (Senegambia Mandinka), 말리와 기니의 마닝카(Malian and Guinean Maninka) 계열 – 로 구분한다.
‘세네감비아 만딩카’ 춤엔 세네갈과 감비아가 속해있다. 마닝카 계열에서 주요한 북이 ‘젬베’와 ‘둔둔’이라면, 세네감비아에선 ‘사바로(sabaro)’ 북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세네갈의 남부 ‘카자망스(casamance)’라는 지역이 만딩고 문화에 속하고, 세네갈의 주류 문화는 ‘월로프(Wolof)’ 민족문화다. 월로프 민족에도 만데 민족과 유사하게 ‘그리오’ 음악가 계급이 존재한다. 말리와 기니에서 ‘젤리’, ‘잘리’라 불리는 음악가 계급을 그들은 ‘게웰(Gewel)’이란 부른다.
‘사바르’는 음악과 춤, 그리고 댄스 이벤트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사바르’ 북은 한 손엔 스틱을, 다른 손은 북의 가죽을 치며 연주하는 세로로 긴 북들이다.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북들이 하나의 세트처럼 연주된다. 그리고 이 악기와 함께 추는 춤과 리듬도 ‘사바르’, 또 결혼잔치 및 세례식, 커뮤니티 파티 등에서 주로 열리는 댄스 이벤트도 ‘사바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세레르(Serer) 민족에 기원을 두는데, 이 민족은 과거 월로프와 만딩카 국가 사이에 존재했다고 한다. ‘사바르’는 만딩(Manding), 그리오의 고향, 모든 노래와 춤이 시작한 장소에 대한 노래라고도 한다(Bangoura 2004). 그리오라면 이 리듬과 노래를 삶 속에서 계속 가져오는 것이 그들의 사명인 것이다.
‘사바르’ 춤은 전통적으로 월로프 민족의 춤이지만,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민족에 상관없이 이 춤과 음악을 즐겨 춘다. 가장 유명한 스타일은 쩨부젠(Ceebu Jeen) – 세네갈 대표 요리와 같은 이름 – 으로, 무용가 제르멘 아코니는 이 춤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며 한쪽 발에서 다른 발로 건너뛰기, 한쪽 팔을 올리며 돌리고, 다른 손은 배꼽을 감싸거나 랩스커트의 허리 주름을 잡는다. 댄서는 페달처럼 발을 놀리며 한쪽 다리를 한 번에 들어 올리고, 다리는 엉덩이에서 풍차처럼 다리를 돌리고, 발은 다른 발목 위에 느슨하게 매달려 있다. 한편, 한 손은 엉덩이에 얹고, 다른 손은 목덜미에 올린다.”
‘사바르’ 파티는 여성이 주최하고, 결혼과 세례식, 또 여성 공동체를 위해 열리고 즐긴다. 유튜브에 올려진 사바르 파티 영상들을 보면, 드레스와 화장에 한껏 힘준 여성들이 둥그렇게 앉아있고 한? 명씩 중앙으로 나와 짧은 사바르 솔로를 춤춘다. 다리를 올리며 점프하면서 스커트가 휙 날리고, 허벅지와 속옷이 훤히 드러난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의 파티일수록 ‘드러나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치마를 들어 ‘보여주기’를 선택한다. 여성으로서 ‘아름다움’을 인정받는 기준은 몸의 모양과 크기에 있지 않다. 리듬에 맞춰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춤 기술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몸을 더욱 당당하게 드러내고, 성적으로 도발하는 댄서가 가장 크게 환호받는다.
다카르 시민 약 90-95%가 이슬람교를 믿는데, 대부분의 참여자가 무슬림 여성이라는 면에서 ‘사바르’ 파티는 더욱 특별하다. 이슬람 사회 속 여성은 자신의 몸이 드러나지 않게 가리고, 조용하고 정숙한 여성으로서 행동하길 사회적으로 요구받는다. 반면, 사바르 파티는 섹슈얼리티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여성의 몸이 도시 속 공적인 공간을 점유하는 ‘짧은 카니발’이다. 이슬람 사회 현실에서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는 행위들이, 이 파티에서는 허용된다. 춤추는 여성은 뮤지션 남성과 성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남성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성적인 욕망과 몸을 스스로 결정하고 표현하는 여성 중심의 섹슈얼리티가 놀랍게도 성별이 엄격히 구분되는 사회에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Francesca Castaldi, 2006). 예술은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 전복하는 힘을 가진 공간으로서 사회와 공존해왔다.
춤을 ‘잘’ 춘다는 의미는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사바르 역시 월로프어를 알아야 그 리듬에 잘 맞춰 출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삶과 함께 펼쳐지는 춤은 개인의 일상 언어이면서도, 커뮤니티 사이에서 즉흥적으로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도 그렇게 ‘사바르’는 시시각각 펼쳐지는 일상 속에서 다이나믹하게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다.?
참고자료
Wikipedia
Mande Music (Eric Charry, 2000)
African dance (Germaine acogny, p19)
Dance Circles: Movement, Morality and Self-fashioning in Urban Senegal (H?l?ne Neveu Kringelbach, 2013)
Bangoura, Mohamed “Bangourak?.” 2004. Djembe Kan – mandebala.net
Choreographies of African Identities: N?gritude, Dance, and the National Ballet of Senegal (Francesca Castaldi, 2006)
사진
Lucile Robert,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