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아프리카 현대 무용 (상) – 새로운 만남의 문을 열다, 제르멘 아코니(Germaine Acogny)
앞으로 두 번에 걸쳐 소개할 ‘아프리카의 현대무용’ 편을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만딩고 춤 안내서’를 시즌 1으로 드디어 마무리한다. 현대무용 씬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면서도, 현재까지 꾸준히 창작과 교육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두 예술가, ‘제르멘 아코니(Germaine Acogny)’와 ‘살리아 사누(Salia Sanou)’의 이야기를 다룬다. 1960년대부터 2005년 사이의 이야기로, 그들이 집필한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현대무용의 역사적 순간들과 예술가들의 가치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아프리카권 현대무용에 대해 조사를 하며, 개인적으로 그들이 춤과 예술로 보여준 존엄한 정신에 감명을 크게 받았다. 또한, 역사를 되짚어보며, 나를 둘러싼 환경과 갖고 있는 관점에 대해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아프리카의 현대무용’편은 순서상 마지막이지만, 이 안내서를 시작하게 된 첫번째 이유다.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춤도 진화한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동등한 만남을 이끌다, 제르멘 아코니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발레 수업을 들을 때였지.” 반짝이는 눈빛을 한 학생들을 바라보며,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그녀는 운을 띄웠다. 바로 세네갈의 안무가 ‘제르멘 아코니’다. 10대에 프랑스로 유학왔던 학생이 지금은 ‘현대 아프리카 무용’의 어머니로 불리는 거장이 되었다. “그때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죠. 너는 …을 가지고 있지.” 생략된 단어 대신 선생의 눈이 제르멘의 큰 엉덩이를 가리켰다. 세네갈이 프랑스로부터 식민지 독립을 했어도, 인종차별은 노골적이었다. 10대의 제르멘은 선생이 지시하는 다양한 스텝들을 모두 따라한 후, 이제 ‘이걸 하겠다’고 말한다. 무릎을 구부리며 아래로 내려가는 ‘그랑 쁠리에(Grand plie)’ 동작이었다. 곧게 펴야할 상체를 앞뒤로 파도처럼 유연히 움직이며 내려간다. “나는 새로운 춤을 배웠고, 그것을 다시 나와 합했죠.” 그녀의 얘길 듣던 학생들이 통쾌한 환호성을 지른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발레와 모던 댄스, 체육학 공부를 마치고, 제르멘은 다시 세네갈로 돌아온다. 시인이자 운동가였던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가 독립국가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제르멘은 상고르의 시를 춤으로 표현하고 싶다며,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상고르의 ‘네그리튀드(Negritude)’ 문화운동엔 춤이 꼭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노예무역 300년. 이후 식민지배 100년. 서아프리카는 오랜 세월 유럽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를 당했다. 프랑스는 종교를 앞세워 인간평등의 신념을 펼치는 듯 했지만, 아프리카의 문명은 열등하다는 식의 야만적인 정책을 펼쳤다. 1930년대, 상고르는 파리에서 유학하며 ‘아프리카인’으로서 처한 현실을 더욱 깨닫게 된다. 당시 벌어진 세계대전에서 ‘검은 피부의 사람들’은 이유없이 죽어갔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인뿐만 아니라 캐리비안해 출신의 사람들 – 노예무역으로 강제이주된 아프리카인의 이후 세대들 -도 속해 있었다. 이후, 그동안 멸시받았던 아프리카 문화의 힘을 다시 살려내는 운동이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네그리튀드(Negritude)’ 운동이다. 부정적 의미가 담긴 ‘네그르’를 그대로 사용하며 차별받는 흑인 문화의 자긍심을 높이는 지식인들의 운동이었다. 상고르는 이 운동을 이끄는 중심 멤버였다.
1977년, 세네갈에 설립된 ‘무드라 아프릭(Mudra Afrique)’ 국제 무용 학교는 이 네그리튀드 운동의 연장선에 있었다. 상고르는 프랑스 무용가 ‘모리스 베자르(Maurice Bejart)와 함께 학교를 세우며, 아프리카 춤을 가르칠 교사로 제르멘을 초청한다. 국가와 지역을 초월한 범아프리카적인 정체성을 강조하며, ‘아프리카 춤’이 ‘발레’와 같이 세계 보편적인 무용언어로서 전 세계와 소통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발레와 현대무용, 아프리카 춤 등의 수업이 만들어졌고, 유럽과 아프리카 각국의 댄서, 안무가들이 모였다. 학교는 상고르의 퇴임 이후 재정이 감소하며 5년 후 문닫고 말았지만, 이 새로운 춤과 만남에 대한 열망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당시 함께 했던 아프리카의 젊은 댄서들은 이 교육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부르키나파소의 안무가 ‘이렌 타삼베도(Irene Tassembedo)’는 유럽 활동 후 본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무용 학교(EDIT)를 열고, 젊은 세대들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데 힘쓰기 시작했다.
제르멘 역시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춤(Danse Africaine)’이란 책을 저술하고, 세네갈 작은 해안가 마을에 ‘모래학교( Ecole des Sables)’를 1998년에 설립한다. ‘모래학교’는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전세계 댄서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설립되었다. 제르멘은 당시 고정관념이었던 ‘아프리카 춤은 자연발생적이다’라는 시선에 반대했다. 이 춤 역시 다른 무용과 마찬가지로 연구와 분석, 가르칠 수 있는 형식과 규칙이 있다고 말한다. 전통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춤이라 해도, 그녀의 예술적 방향은 뿌리로 돌아가는 춤이 아니라, 뿌리에서 시작되어 현대에 계속 진화하는 춤임을 강조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춤도 진화한다.”
Ecole des Sables book ‘Danse africaine’
또한, 제르멘은 ‘아프리카 춤들은 우주와의 지속적인 대화’라는 생각에 기초해 자신의 테크닉과 교육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아프리카 춤들에서 공통적으로 중요시되는 땅에 가까운 자세, 척추의 유선형 움직임, 근육의 수축과 진동 등을 중심으로 자연과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상징적 동작들을 만들었다. 즉흥을 많이 활용해 댄서들이 자신의 전통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형하고, 새로운 표현과 형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 테크닉은 전세계 모든 댄서들에게 열려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아프리카인 학생들이 고전발레, 현대무용 스텝을 배우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간 것과 마찬가지로, 비-아프리카인 학생들 역시 아프리카의 방법, 동작들을 배우며 그들의 세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현재 ‘제르멘 아코니 테크닉’은 오랜 시간 수련하고 검증받은 이들이 선생이 되어, 세네갈 뿐만 아니라 미국, 벨기에,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이 테크닉을 널리 전수하고 있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이후 세대들은 ‘아프리카 춤/무용’이란 개념을 조금 다른 식으로 맞닥들였다. 다큐멘터리 ‘무브먼트 레볼루션 아프리카(Movement (r)evolution Africa)’는 이 개념을 둘러싼 다양한 안무가들의 의견을 보여줬다. 코트디부아르 안무가 ‘베아트리체 콤베(Beatrice Kombe)’는 ‘이건 아프리카 댄스가 아니라 새로운 표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콩고 안무가 포스틴(Faustin Linyekula)은 자신은 아프리카와 콩고에서 왔지만, 아프리카와 콩고를 대표해 말하지 않는다고 하며, 자신의 진실한 나라는 아마도 자신의 몸일 것이라 했다. 케냐, 남아공, 짐바브웨,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온 다른 안무가들 역시 그들이 국제적 무대에서 활동하며 받게 되는 편견들, 이중적 시선에 대해 토로했다. 왜 전통적이고 의식적인 춤만을 기대하는가. 왜 ‘고요한’ 아프리카 춤은 없다고 생각하는가, 왜 나의 춤을 단순히 ‘현대무용’이라 할 수 없고, ‘아프리카’란 수식어를 꼭 붙이는가. 왜 유럽만 ‘현대무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음 호 ‘아프리카의 현대무용(하) – 안무의 국제적 만남과 발전, ‘새로운 표현’의 시대가 열리다’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책 ‘Danse Africaine’, Germaine Acongy, 1980
위키피디아 ‘Germaine Acogny‘, ‘Mudra Afrique‘, ‘Negritude‘
사이트 ‘Ecoles des Sables‘
영화 African Dance – Sand, Drum and Shostakovich, by Ken Glazebrook, Allla Kovgan, 2007
영화 Movement (R)evoloution Africa (65min, 2007)
글 소영 (bbang.libr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