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침묵하지 않는 춤 ⑧] 모어 More Zmin “꼿꼿하게 아름다운 춤을 추는 할머니가 될 것이다”
인터뷰 시리즈
[침묵하지 않는 춤 – 페미니즘으로 본 춤의 세계]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페미니즘적 관점과 사유가 확장되고 있다. 퀴어/여성 서사에 주목하는 문학, 페미니즘 연극제, 여성주의로 읽는 미술사 등 위계와 차별에 맞선 창작과 기록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는 끝없이 이어진 문화예술계 미투, 성폭력과 가부장적 폐습을 지적하고 성찰을 요구해온 목소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몸이 주요한 매체이자, 곧 주체이기도 한 춤의 세계는 어떨까? 2021년부터 이어진 ‘페미니즘으로 본 춤의 세계’라는 부제를 단 이번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성별, 장애, 나이, 외모, 성 정체성,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등과 관계없이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지 않는 실천 윤리인 페미니즘을 중심에 두고 지금, 오늘의 춤을 살펴본다. ‘침묵하지 않는 춤’은 무용 담론에서 벌어져 왔던 위계와 배제의 구조를 확인하고, 수행적인 예술로서 춤추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나 큰 죄가 되어야 했나. 그동안 우매한 인간들이 보내온 시선과 폭력은 노력과 반성도 없이 희미하게 형태를 잃어갔다. 그것들을 안고 살아가기에는 하염없이 게으른 나. 결코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더럽힐 수 없고 죄다 시궁창에 버려야 할, 이별 못 한 오물덩어리다. 보통의 사람들이 다르다고 보는 내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아름다운 춤을 출 때, 비로소 완연한 내가 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차별과 차이에서 멀리도 달아난 나는 그저 나인 나로 살아가겠다.
남성도 여성도, 강자도 약자도 아닌, 아름다운 한 인간으로.1
춤이라는 예술은 안정성과 거리가 멀다. 발생하고 사라진다. 춤추는 무용수의 몸과 현재의 기운, 몸에 쌓아온 움직임과 표현의 역사, 춤이 발생하는 시공간의 에너지와 관객의 태도 등에 따라 매번 다른 춤이 펼쳐진다. 모든 춤은 각기 다른 고유성을 획득한 후 소멸한다.
몸을 질료로 삼는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춤은 몸을 가진 누구에게나 경계 없이 열려 있는 듯 하지만, 신체와 춤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사회의 시대상, 인식, 역량 등에 따라 가장 경계에 놓여 있는 예술일지도 모른다. 항상 변화하고 머물다가 사라지는 춤의 본질적 특성을 퀴어적이라 칭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무대 위에서 춤추는 퀴어는 관객을 향해 몸을, 더 나아가 세상을, 어떻게 다르게 볼 것인지 묻는다. 춤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온몸으로 사회의 편견에 저항하며, 거침없이 표현하는 퀴어 무용수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모어>의 개봉 직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지민 드랙(Drag) 아티스트에게 만남을 청했다.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드랙 퀸 퍼포먼스와 공연을 해왔다. 하도 많이 해서 기억도 잘 안 난다. 공연은 한시적으로 머물다 사라지지 않나. 무형의 것들이다. 때론 엄청난 회의감이 들고, 뼈가 시리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없다’는 감정에 도달했다. 분명히 행위를 했지만, 그 순간만 존재하고 사라지니까. ‘나는 없다’는 감정은, 결국 ‘나는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반어법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말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는 절망의 구렁텅이를 드러내고 싶다. 그 안에 희망이 도사리고 있을 테니. 나의 최종 목적지는 희망이다. 사랑과 희망이 있기에 우리 삶이 무심히 굴러갈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모지민 아티스트는 지난봄,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를 출간했다. 책에는 삶, 죽음, 사라짐, 존재, 시간, 허상 등 추상적인 관념에 관한 사유가 돋보인다. 무형의 것, 소멸하는 춤과 한평생 가까이 지내온 그가 날렵하고 가감 없는 시선으로 포착해낸 기록이기도 하다. 부재한 나와 존재하는 나, 드러내고 싶은 것과 감추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 속에서 그에게 사라지는 것은 무엇이고,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 열망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책과 영화가 탄생했다. 돌이켜 보면, 사라지는 것은 가치관인 듯하다. 특히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 사진 속 나는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너무 늙은 것 같고. 하지만 돌아갈 수 없지 않은가. 흰머리도 늘어나고 전보다 쾡해 보이지만, 결국 현재의 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자꾸 과거의 젊은 나를 아름답다고만 생각하면 불행해질 테니. 나이듦, 늙어감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연스러운 길이니까. 할머니가 되어서도 나는 꼿꼿하게 아름다운 춤을 출 것이다. 험난한 시간을 통과하고 나름 터득하며 왔기 때문에 훨씬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남기고 싶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생을 살고 흔적도 없이, 소리 없이 소멸을 향해 도착하고 싶다.
책날개에 모지민 아티스트는 ‘낮은 곳에서 하이힐을 신고 높은 곳에서 토슈즈를 신는다’고 적었다. 그는 대학의 무용원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타고난 끼순이었던 그에게 중학교 선생님이 권유한 발레는 ‘여성성이 허용되는 무용에서 살아 있다는 안도감2’을 맛보게 했다. 그러나 그 해방감도 잠시, 발레라는 장르는 그에게 여전히 성별 이분법과 폭력이 작동하는 세계였다.
발레에서 대부분 남성은 왕자, 여성은 공주가 되길 원한다. 발레를 처음 접했을 땐 오로지 너무 아름답다는 마음뿐이었다. 이 안에서 나의 여성성이 허용될 수 있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뱉기도 했지만. 결국 그 안에 남성과 여성은 명백히 갈라져 있었다. 남성스럽게 춤추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학교 내에서 나의 정체성은 논란거리였다. 한국도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다고는 한다. 아는 후배 중 남성으로 입학해 성전환하고 무용을 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지금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지. 내가 너무 연약해서 극복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인생은 가도 가도 절망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꼭 필요한 고난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험난한 길을 가야 하는 운명의 굴레가 아니었나 싶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절망을 지나서 희망이 오기도 했으니까.
모지민 아티스트는 ‘밤마다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귀신이 인도하는 곳’으로 갔다. 2000년, 우연히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드랙 퀸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춤을 췄다.
드랙은 나에게 애증 덩어리이다. 유년 시절부터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폭력 속에서 살았다. 무용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선배는 ‘그 여성성을 버리라’며 뺨을 갈겼다. 말 그대로 귀신의 이끌림으로 지하 세계에서 힐과 가발을 신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명 나서 덩실덩실 춤추긴 하는데, 그 세계도 폭력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고달파도 입을 찢고 웃는다. 클럽 안의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고, 퍼포머를 굉장히 함부로 대한다. 드랙 퀸이라는 게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머리를 잡아당겨 가발이 벗겨지고, 담배 빵을 당하기도 하고, 힐에 밟혀 퍼포먼스가 중단 되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진다. 서열과 계급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다. 드랙 퀸 퍼포먼스는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막노동이다. 말 그대로 극한직업. 그래서 항상 도망치고 싶었는데, 20년을 넘게 했네.
모지민 아티스트가 드랙으로 활동하던 초창기에는 기괴하다, 난해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랙은 의상, 메이크업, 소품 등 시각적 요소와 립싱크, 퍼포먼스, 춤 등 공연 예술적 요소가 강하게 혼합된 예술 장르다. 그에게 드랙 퀸 퍼포먼스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인간 모어로 살고자 하는 욕망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혼재된 있는 시간처럼 보인다.
데뷔할 때부터 남들이 안 하는 것만 하고 싶었다.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같은 장르의 음악은 그 자체로 굉장히 낯설고 이질적이다. 그런 걸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썰렁하다. 초상집처럼. 나는 도리어 통쾌하고 재밌었다. 욕은 욕대로 먹고 팁도 안 나왔지만. 나는 그게 아름답고,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 해도 꺾을 수 없는. 협업하던 그룹에서 아웃된 적도 있다. 그룹 안에서도 너무 다르니까. 외롭고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이 길에 서 있는 게 나라면, 그 길을 걷는 게 맞다. 지금은 스스로 멋지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모지민 아티스트의 드랙 퀸 퍼포먼스에는 모어의 페르소나를 상징하는 여러 오브제가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화려한 헤드피스, 꽃, 발레복 튀튀(tutu), 깃털과 부채.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무대 위에서 이뤄지는 환복과 탈의 장면이다. 단편적이고 짧게 기획된 퍼포먼스를 제외하고 그는 대부분의 퍼포먼스에서 의상을 갈아입고, 최후에는 벗어 던진다.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읽히기도 한다.
인간의 맨몸이 가장 아름다운 도구이자 의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려야만 하지 않았나. 드랙 퀸 퍼포먼스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피로도가 있다. 짙은 화장이 점점 나에겐 의미가 옅어진다. 민얼굴 자체로 내 안에 내재된 것을 표현하고, 관객에게 가닿길 바란다. 벗는 행위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코로나19로 관객 수가 주춤하던 때 열린 <드랙X트랜스 이갈리아(2021)> 공연을 모지민 아티스트는 인생의 Top 3 퍼포먼스 중 하나로 꼽았다. 남성 정장을 입고 등장해, 천천히 환복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맨몸을 드러냈다. <毛魚 2021 제비다방(2021)> 공연에서는 튀튀 형태의 핫핑크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낭독으로 시작해, 중간에 새빨간 튀튀로 환복하고, 퍼포먼스 도중 수박 한 통을 깨부수고 몸에 바른다. 그의 몸을 겹겹이 뒤덮고 있던 장막이 사라지고, 굴곡진 몸의 선이 비로소 드러난다.
<드랙X트랜스 이갈리아>에서 옷을 전부 찢고 전라의 상태가 되자, 행복하더라.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방점을 찍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다. 극장에서 조명을 받은 몸은 근육이 미세하게 갈라진다. 마치 조각상처럼. 무대 위의 맨몸은 근육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제비다방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수박을 부수고 깨고 몸에 쳐발랐다. 벗어 재끼면서 알몸인 내가 탁하고 나왔을 때, 그때 주고받는 힘이 엄청나다. 의상에 가려지지 않은 진짜 내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지민 아티스트가 통과한 시간은 드랙 퀸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편견과 선입견을 서서히 부서뜨린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 과장된 여성성의 표출, 부재한 것에 관한 욕망, 발산으로만 수렴하는 에너지 같은 것들을. 마치 그가 쌓아온 시간처럼 서서히 그러다 종국에는 단숨에.
처음부터 이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드랙은 도구이자 무기다. 한편으로는 일차원적이다. 가면을 쓰면 표현하기 쉽다. 짙은 화장을 하면 더 뻔뻔해질 수 있다. 알몸과 민얼굴로 무대 위에 올랐을 땐, 도구나 무기가 없기 때문에 더 불리하다. 지금의 나는 불리하지만, 더 깊게 표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표출하기에는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 돌고 돌고 돌아서 이 자리에 왔으니 누려야지. 요즘은 정말 원 없이 즐기고 있다.
모지민 아티스트의 책과 영화에 묘사된 인생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뉴욕에서 열린 스톤월 항쟁3 50주년 기념 공연 <13fruitcakes(2019)>이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등 전설의 배우들이 공연한 라 마마(La mama) 극장에서 그는 올란도, 인어, 흑조, 자작나무, 예수 등의 역할을 표현했다. 인생의 정점을 찍은 이후, 요즘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당시 인터뷰에서 뉴욕 공연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언급했는데. 성실하게 살다 보면 하이라이트가 계속 찾아오더라. 이렇게 영화도 개봉하고.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 그동안 계속 소모되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채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깨달음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시간이 주는 것인데, 그 시간을 통과해 지금은 어느 자리에 도달했다.
모지민 아티스트는 무대 위에서는 수행하듯 춤을 추고, 일상에서는 수행하듯 성실히 시간을 보낸다. 새벽에 일어나 요가를 한다. 밝아 오기 전 고요함에 머물며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린다. 집 가까이 위치한 절에 가서 앉아 있는다. 절 건너편 냇가의 물소리를 듣고 고양이를 돌본다.
퍼포먼스가 없을 때는 정말 오롯이 혼자 보낸다. 할 것도 너무 많고. 글도 써야지 그림도 그려야지 청소도 해야지.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 혼자여도 충분히 아름답다.
다른 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춤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무대 위의 춤은 과거에 끌려다니지 않고, 현재에 정착하지 않고, 아주 짧은 찰나에 미묘한 복잡성을 드러낸다. 드랙을 통해 젠더 규범을 전복하거나, 강화하거나, 바꿔내는 퍼포머의 능력은 젠더가 물 흐르듯 움직이며 유동적이고, 동시에 사회화된 개념임을 증명한다. 어떤 미래를 도래하게 만들 것인가 상상하게 하는 춤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시간을 앞당긴다. 다큐멘터리 <모어>는 모지민 아티스트가 관통한 시간을 곳곳에서 춤과 퍼포먼스로 재현한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신파적 감정을 쏟아내기보단, 설명할 길이 없는 응축된 감정을 찬란하고 애잔한 몸짓으로 화면에 담는다. ‘누구든 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길 원치 않는다4’는 그가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그는 배추밭에서, 경운기 위에서, 포구에서, 시골길에서, 눈밭에서, 다리 위에서, 이태원 지하 클럽에서, 절에서, 벚나무 아래에서, 공항에서, 뉴욕 거리에서 춤을 춘다. 그가 자아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마음을 홀라당 빼앗기고 만다. 그가 춤을 통해 마지막으로 가닿고 싶은 곳이 있다면, 과연 어디일까.
시베리아.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눈으로 들어가 춤추고 싶다. 마치 엄마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시베리아는 광활하다. 나의 작은 몸과 대비되어 엄청난 장관이 펼쳐질 것 같다.
듣는 이보다 재빠르게 황홀경에서 빠져나온 모지민 아티스트는 특유의 촌천살인을 내뱉으며 바쁘게 이동했다.
애써라 인간들아. 잘났다고 착각하지 말고 작작 해라. 누가 더 애썼는지 내기해볼까.
*그와의 대화를 복기해 기록하고 있는 지금, 그는 영화 상영을 위해 뉴욕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New York Asian Film Festival)에 참석 중이라 했다. 아름다운 인간 모어, 그가 소멸하는 날까지 그 앞에 놓여 있을 끝없는 하이라이트를 응원하며.
1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 은행나무, 2022, 24p
2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 은행나무, 2022, 21p
3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은 1969년 뉴욕의 ‘스톤월 인’이라는 성소수자 술집을 경찰이 급습해 난폭한 단속을 벌이자,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드랙퀸, 히스패닉, 흑인, 성 판매자들이 자발적으로 이에 맞서 투쟁한 사건이다. 항쟁의 영향력이 성소수자 차별에 저항하는 힘으로 확산됐고, 미국 역사에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촉발한 분수령으로 기록됐다. 현재 전 세계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한국의 퀴어퍼레이드)’는 스톤월 항쟁 1주년을 기념하는 최초의 게이 퍼레이드에서 시작됐다.
4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 은행나무, 2022, 16p
진행|보코, 소영
기록|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