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만딩고 음악의 뿌리, 젤리(Djeli)의 노래
3화.
만딩고 음악의 뿌리,
젤리의 노래
인생의 수수께끼에 관한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받는다. 서아프리카 만딩고 사람들은 세상의 중요한 진실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름’없는 수수께끼로 만들어 노래와 이야기에 담았다. 인간의 말은 그 커다란 비밀들을 담기엔 너무 작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와 이야기의 중심엔 ‘젤리 Jeli’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역에 따라, ‘젤리 Jeli’, ‘잘리 Jali’ 등으로 불렀다. 프랑스어로 ‘그리오 Griot’라고 한다.
‘젤리’는 음악가이자 가수, 연설가, 구전 역사가, 수도자, 중재자, 조언자, 연대기 기록자, 과거와 현재를 빚는 자 등을 통칭한다(Eric Charry, 2010). 그들은 노래, 음악연주, 이야기와 연설이라는 3가지의 방식으로 조상들의 뿌리와 업적을 전승하고, 굉장히 다양하고 정교한 음악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젤리의 대표 악기는 마림바의 조상 ‘발라 Bala’, 현악기 ‘코라 Kora’, 그리고 ‘고니/은고니 N’goni’이다. ‘젬베 Djembe’, ‘둔둔 Dundun’과 같은 퍼커션 류는 젤리의 주요 악기가 아니다. 노인이 된 젤리를 ‘젤리바 Jeliba’라고 높여 부르며, ‘바오밥 나무’, ‘큰 나무’에 비유한다. ‘한 명의 노인이 사라지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이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그들이 가진 지식과 지혜는 현대인의 이성을 초월한다.
만딩고 사회에서 ‘음악’은 자연의 힘을 다루는 특별한 일에 속했다. 자연의 힘은 신비롭고 위험한 에너지라, 평범하게 농사를 짓는 보통 사람은 다룰 수 없었다. 이 힘을 ‘냐마Nyama’라 불렀고, 오직 장인계급 Nyamakala만이 이 힘을 다루었다. 구전음악가 젤리는 대장장이(누무, Numu), 가죽장인(카랑케, Karanke) 등과 같이 장인계급에 속했다. 그들은 마법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어 왔고, 대를 이어 그 힘을 다루는 기술과 비밀을 전승했다. 전해오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예언을 하고, 동물과 식물의 언어를 할 수 있으며, 갑자기 사라지거나, 주술을 통해 물건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힘 등을 갖고 있다. 물론 현재도 그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음악은 ‘젤리’들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수업에서 주로 배우는 전통춤은 또 다른 장인계급인 대장장이 ‘누무’의 음악과 관련이 있다. 젬베와 둔둔 등이 누무의 대표 악기로, 사람이 태어나고, 성인이 되고, 생을 마감하는 생애사와 농사에 관련된 일, 마을잔치 등에서 주로 연주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음악의 시초는 사냥꾼 ‘돈소’의 음악 Donso Music이다. ‘심비 Simbi’라는 악기를 다루며, 큰 사냥을 떠나기 전 음악으로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사냥꾼? 대장장이? 그들이 왜 음악을 하는 것인가 의문이 샘솟을 것 같다. 사냥꾼과 대장장이, 구전음악가들은 사회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왕국을 통합한 제국사회로 발전할 때, 모두 그 각각의 사회 중심에 있는 이들이었다. 사회가 변화하며, 음악도 함께 변화되어 왔다. 음악 간의 시간적 간격 또한 아주 넓다. 현재, 식민지 이후의 현대사회에서 ‘젤리’들은 서구의 영향을 받아 기타, 키보드, 드럼과 같은 현대 악기를 연주하고, 또 ‘젤리’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젤리들이 가장 많이 노래해온 이야기, 고전 중의 고전, 베스트셀러이면서 스테디셀러인 이야기는 무엇일까. 바로 말리 제국을 만든 ‘왕 중의 왕’, 실존인물 ‘순디아타 케이타Sundiata Keita’의 이야기다. 그는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온 킹’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 이야기는 만화와 비할 수 없이, 훨씬 더 풍요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며 네 발로 기어 다니다 이후 열두 왕국을 통합한 지도자가 되고,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인권 선언 중 하나 ‘만덴 헌장’을 발표한 존경스러운 인물인 것이다.
이야기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사냥꾼’과 ‘젤리’, ‘대장장이’ 등이 모두 등장하며, 신비로운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순디아타를 제일 가는 영웅으로 손꼽는 만큼, 순디아타의 젤리 역시 젤리 중의 젤리로 칭송받는다.
부르키나파소 영화 <케이타 : 그리오들의 유산(Keita : Heritage du Griot)>은 이 순디아타의 이야기를 지금의 현실과 교차시키며 아주 흥미롭게 그려내었다. 어느 날, ‘젤리바’ 할아버지가 한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의 이름은 ‘마보 케이타’. 할아버지가 마보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갈 때, 마보가 책을 소리내며 이렇게 읽고 있었다.
“인간은 원래 고릴라처럼 생겼으며, 지능이 낮았다. 진화를 거듭하며, 호모 사피엔스라는 지능이 높은 종이 되었다.”
“나는 너의 조상이 누군지 안단다. 케이타.” 이를 듣던 젤리바가 마보에게 대뜸 말한다.
“제 이름을 아세요?” 마보가 깜짝 놀라며 되묻자,
“물론이지. 그리고 너는 ‘세상의 처음’ 와가두(Wagadu)에서 왔단다.”고 말한다.
“저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마보는 한번 더 놀란다.
“어느 날, 너의 조상은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세상을 일으켰단다.” 라고 할아버지가 말하자,
“네? 저의 조상이요? 어떤 조상이요?”
“그래, 너의 조상. 마강 콩 파타 코나테!(Maghan Kon Fatta Konate)”
마보는 한 번도 자신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집을 찾아온 어느 할아버지가 나의 이름을 알고, 나의 조상의 이야기까지 알고 있다니! 그 이후, 아이는 젤리바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학교 수업도, 시험문제도 뒤로 한 채, 집으로 달려와 할아버지 곁에 꼭 붙어 있는다.
학교 시험이 중요한 엄마와 선생에게 젤리바의 이야기 교육은 골칫거리가 된다. 프랑스식 서구 교육이 다윈진화주의를 가르칠 때, 젤리바는 마보의 조상이 한 일들을 이야기해준다. 시험에 집중하지 않아 선생님을 화나게 해서 걱정하는 마보에게 젤리바는 하늘을 날고 있는 새를 가리키며, 저 새가 너의 가족의 ‘토템’이라고 알려주며, 너를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계속 아이를 지켜보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보가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뿌리에서 자신의 중심을 찾을 수 있도록. 그것이 ‘젤리’의 역할이라고 말하며.
본격적인 순디아타의 이야기는 다음 3화에서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
책 Mande Music (Eric Charry, 2010)
영화 KEITA : l’heritage du griot (Dani Kouyate)
지식백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 쿠루칸 푸가에서 선언된 만덴 헌장
Pingback: 3화. 순디아타 케이타(Sundiata Keita)의 이야기, 만데의 시작 - 소영의 아프리카 만딩고 춤 안내서 - Mott.zine
5 year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