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삶과 죽음을 잇는 신들의 춤, 보보동 bobodon (2)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때, 동시에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부르키나파소에 죽음을 표현하는 말 중 하나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존재가 함께 살고 있다고. ‘살아있는 자’, ‘세상을 떠난 자’, 그리고 ‘곧 다시 태어날 자’. 그만큼 죽음은 삶과 맞닿아 있고, 결혼식과 생일만큼 장례식과 추도식도 일상적인 의례다.
엠마누엘은 곧잘 ‘우리는 장례식에서도 춤을 춰’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주로 ‘살풀이’류의 춤을 상상 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웬걸, 완전 반대다. 형형색색의 탈을 온 몸에 쓴 채 공중제비를 돌고, 뛰어다니고, 채찍을 든 이도 있다. 당당당당- 하는 북소리가 빠르게 울리면, 마스크들이 채비를 하고 통통통통 제자리 걸음을 뛰며 춤을 준비한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훌-쩍! 하고 깜짝 덤블링을 하는데! 번쩍하는 카타르시스 속에서 아주 짧게 시간과 공간이 어그러진다. 이렇게 판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해, 어느 할아버지의 10주기 추도제는 세 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예외도 있다. 어린 아이와 청년들의 장례식은 너무 슬프기 때문에 마스크들은 춤추지 않는다.
춤으로 기록해온 보보민족의 역사
신성한 언어, 보보 마스크 댄스
보보민족에게는 두 개의 언어가 있다. 바로 ‘말’과 ‘춤’. 한국 사람들이 ‘글’로 기록하고 보존해온 역사만큼, 보보 사람들에겐 ‘춤’으로 기록해온 역사가 있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하고, 한글을 쓰는 게 너무 당연하듯, 보보사람이 보보말을 하고 보보춤을 추는 건 그만큼 너무 당연한 일이란 거다. ‘모든 사람이 춤출 수 있다’란 말을 들을 때, 나는 줄곧 ‘막춤’을 상상했다. 그렇지, 막춤은 누구나 출 수 있지! 하지만 당신이 보보 민족이라면, 막춤보다 더 고차원적인 어떤 기록으로서의 ‘춤’을 자유롭게 언어로 구사하듯 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즐기는 것 외에 기록하고 역사를 쓰는 관점에서 춤을 춘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일까?
보보 마스크 춤은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춤이며, 기록이자 역사다. 마스크 춤을 이어가고 전수하는 건 주로 남자들의 역할이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인 성인식 기간 동안 다양한 마스크들의 안무와 비밀 언어들을 배운다. 어릴 때부터 마스크 댄스를 보고, 연습하며 자라는 만큼, 성인식의 가르침은 모두에게 오랜 기간 기다려온 숙원이며, 숙제였다. 성인식 이후, 자신이 원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마스크를 쓰고, 다양한 의례에서 공연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누구나 춤출 수 있다’! 마스크들은 자연의 다양한 정령들을 상징하며, 죽음과 관계되거나 성인식과 같은 통과 의례 때에만 등장한다.
보보 마스크 춤은 ‘사크레(Sacre, 신성한 춤)’와 ‘세미 사크레(Semi Sacre, 반-신성한 춤)’로 나뉜다. 사크레, 세미사크레는 보보어는 아니지만, 이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지어졌다. 보보 민족의 마스크와 춤, 음악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재현한다. 인간이 이를 재현하지만, 상징은 신이거나 자연 정령이거나 동물들을 뜻한다. ‘사크레’는 신성한 춤으로, 마스크 고유의 안무나 리듬이 모두 고정되어 있는 춤이다. 현대로 전승되면서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 기록과 같다. 민족 고유의 비밀과 마법이 담겨있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은 모두 볼 수 있지 않고, 이 춤을 절대로 출 수 없다. ‘세미 사크레’는 절반의 신성을 담고 있다는 뜻인데, 현대에 생긴 변화다. 과거에는 모든 마스크 춤이 ‘사크레’였다. 절반의 신성을 담고 있어, 다른 민족들도 어떤 때에 마스크를 쓸 수 있거나, 의례란 맥락이 없는 현대 예술 페스티벌에 등장하거나,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할 수도 있다.
2016년 봤던 다른 마스크 춤들은 모두 촬영이 금지됐는데, 이 때만 가능했다. 운좋게도! 그리고 정말 많은 보보 사람들이 시청해서 약 2만뷰를 달성했다! 영상은 <몿지니의 꾸러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판이 펼쳐지면, 제일 처음 등장하는 마스크는 바로 ‘숲’의 정령들이다. ‘과마(Gwama)’란 이름의 이 마스크는 수풀, 나무줄기, 지푸라기 등으로 온 몸을 감쌌다. 영화 ‘반지의 제왕’ 의 나무 정령들처럼 어느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법한 모습이다. 그들의 춤은 복잡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이제 마스크 댄스가 시작한다는 걸 알리는 듯 보였다. 보보 민족이 숲에서 기원을 찾는 것처럼, 이 마스크는 그 최초를 상징한다. 그 이후,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수직으로 높-이 세워진 가면을 쓴 마스크들이 등장한다. 진분홍, 진노랑, 청록, 주황, 연보라 등 하나같이 색 조합이 아름답다. 나무줄기에 천연 염색한 것이라는데, 어떻게 저런 반짝거리는 질감이 표현되는 건지! 이들은 위엄있는 신이나 독수리와 같은 위협적인 동물들을 뜻한다. 그래서 춤도 긴 가면을 공기를 가르듯 세차게 휘두르는데, 그 특유의 악센트와 느낌이 강렬하다.
이 강한 정령들의 춤이 끝나면? 그 다음은 노는 시간이다. 인간과 가까운 새들과 고양이, 암탉과 같은 동물들의 마스크가 나와, 사람들과 더 즐길 수 있는 춤을 춘다. 각각의 상징마다 정해진 안무가 있는데,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소’와 ‘산새(래리냐)’ 가면이다. 청록과 분홍의 옷을 입고 머리엔 소 탈을 쓴 이는 우리가 배우고 있는 ‘펜통오크레(곡물 껍질을 발로 까는 동작)’을 춤춘다. 지팡이를 집고 앞으로 옆으로 통통 뛰는데, 솔직히 너무 귀엽다(!). 말만 안해서 그렇지, 거의 펭수급! ‘래리냐’라고 불리는 산새 가면은 몸 전체가 청록색에 머리 위에 분홍 깃을 단다. 이 춤은 리듬 맛이 참 좋다. 가끔 어느 동네에는 카톨릭 교황의 얼굴 가면도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카톨릭교가 마스크 댄스같은 전통종교를 분명 억압했을 텐데, 이들은 교황의 얼굴로 가면을 만들고, 그에 맞는 리듬과 안무도 만들다니. 그것 또한 역사로 남기는 것인가. 대단한 관용이자 크리에이티브다(!) 판을 주로 마무리 하는 건 ‘원숭이’가면이다. 보보 마스크에서 여자들은 볼 수 없는 가면이 있는 등 금기가 많은데, 원숭이 가면은 여자들과 가까운 가면이라고 한다.
보보 마스크 댄스는 거대한 의례면서도, 한 판 크게 펼쳐지는 대동놀이였다. 마스크들이 쉬는 동안 어린이들이 판으로 옆돌기를 하며 뛰어든다는지, 평상복을 입은 이들이 마스크 흉내를 내며 춤춰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다. 마스크들이 한 20-30초 정도 격하게 춤을 추면 그 끝마무리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젊은 남자들이 우루루 나와 마스크를 잡는다. 나는 무섭게 생긴 마스크들을 보며 ‘아, 악한 기운이 퍼지기 전에 잡는 거구나’하며, 더 종교의식처럼 상상했다. 그런데 웬걸, 마스크가 피곤할까봐 잡는 거라고… 너무 인간적인 이유에 무릎이 꺾였다. 악한 기운이라니, 뭔 말인가. 판타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하하)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마을에 마스크들이 나타난다
함께 추모하고 위로하는 놀이와 문화
마스크는 때로는 춤추지 않고,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가 될 때도 있다. 엠마누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조부모와 손주의 관계는 아주 특별하고 가깝다. 가족관계들 중 가장 농담도 많이 주고 받는다. 조부모-손주가 나누는 농담의 레퍼토리가 있을 정도다. 손주는 주로 조부모가 알고 있는 어떤 조상의 환생이거나, 또는 조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여하튼 그의 장례식 마지막 날, 할아버지의 몸을 감쌌던 멍석데기를 동네 중앙에 두고, 채찍을 든 마스크들이 눈을 부라리며 지키는 가운데, 손자손녀들은 멍석으로 뛰어가 그 일부를 칼로 잘라가야 하는 의례였다. 이 멍석 조각을 지닌 사람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크게 용돈을 얻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손주 인생 처음으로 한 탕 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준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물론 당신이 용기만 가지고 있다면! 멍석에 가까이 가는 순간부터, 마스크들이 당신을 채찍으로 인정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할테니까.
엠마는 당시 십대 무렵. 그는 굳게 마음을 먹고, 집에 있는 모든 옷을 네겹 다섯겹 껴입었다. 그리고 멍석에 눈을 고정한 채, 냅다 뛰었다. 마스크들이 천둥치듯 채찍을 내려치기 시작했고… 윽 옷 다섯겹이 무심하게도 살이 다 드러날 만큼 찢겨 나갔다. 옷이 찢어져도 마스크들은 동정심 따위 없다. 너무 아프다…. 고통을 참아내는 그의 짧은 탄성들이 이어졌다. 그날 멍석을 정말 크게 많이 잘랐고, 채찍을 맞기엔 너무 어린 동생들과 사촌누이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물론 이 의례는 모두가 꼭 참여해야 하는 의무는 아니다. 채찍이 무섭다면 피해도 되지만,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할아버지의 선물은 돈도 있지만,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두려움을 이겨낸 값진 용기에 대한 교훈을 손주들에게 알려준 셈이다. 그리고 어떤 집에 누군가 돌아가시면, 마스크들은 그 소식을 듣고 바로 등장한다. 장례를 치뤄야 하는 비용과 상관없이, 마스크는 그 마을의 모든 장례식에 함께 한다. 이렇게 보보 민족은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춤과 놀이로 죽음을 함께 추모해 오고 있다.
엠마는 그날 멍석을 판 돈의 일부를 친구들과 모아, 다음해 돌아오는 ‘사쿠마퀴에(Grand Funeral)’ 축제에 작은 파티를 만들었다. 이 축제는 마스크들의 축제로, 한해 돌아간 이들의 영혼을 위한 날이다. 뜻은 ‘모래가 된 이들을 위한 장례식’이다. 일년에 한번, 3~4월경 동네마다 열린다. 집집마다 음식을 하고, 마스크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떤 놀이를 하기도 하고, 밤이고 낮이고 마스크 댄스판이 열린다. 그리오들이 진행하는 전통적인 춤파티도 좋지만, 젊은 사람들은 쿵짝거리는 쿠페데칼레나 발라폰에 춤추는 ‘발랑동’같은 다른 춤도 추며 편하게 놀고 싶은거다. 그래서 그 돈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파티를 더 재밌게 해줄 아티스트나 디제이 들을 초대했다고!
유희와 위엄사이
모래마당과 유튜브를 가로지르며 춤춘다
보보 마스크 춤은 신성을 깨지 않기 위해, 엄격하게 보호되어 왔다. 카메라는 그들의 문화가 아니었고, 사진이나 영상 속 마스크 속의 신체 일부가 드러나면 ‘신’을 표방하는 그 힘을 잃는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계 여행을 하고, 무역을 하고, 발전된 기술을 사용하는 지금 세대는 이 문화를 널리 소개하고 공유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한다. 보보 마스크들의 춤을 모은 페스티벌도 생겨났다. 페이스북 라이브로, 유튜브로, 인스타그램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가족들, 또는 이 보보문화를 모르는 전세계인들에게 계속 그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공유한다. 우리 문화에 이렇게 좋은 것들이 많다고 하며.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도 여전히 마스크들은 유희와 위엄 사이에 위치한 신성한 존재다. 그리고 그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인사에는 언제나 ‘신’의 축언이 함께 하는데, 보보의 신 ‘쏘고’와 ‘도’는 현대의 이들을 여전히 깊이 사랑하실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