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영의 아프리카 만딩고 춤 안내서

11화. 그 누구도 처음부터 전사는 아니었다 – 구룬시(Gourounsi) – 소영의 아프리카 만딩고 춤 안내서

그 누구도 처음부터 전사는 아니었다.
우리의 땅과 사람들을 빼앗으려 하니,
전사가 된 것 일뿐.

춤 구룬시(Gourounsi)

자세를 낮추고, 팔꿈치를 꺾은 양팔을 넓게 벌린다. 오른 발을 앞으로 쿵쿵 내딛으며, 눈 앞을 똑바로 응시한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가? 누군가 빼앗으려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춤이 내게 묻는다. 내 안에 이런 마음이 있었던가.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커다란 이빨들이 으르렁거린다. 이 춤은 바로 구룬시(Gourounsi). ‘강철도 뚫을 수 없다’는 전설을 가진 민족의 춤이다.

 ‘구룬시’ 민족은 부르키나파소 남부와 가나 북부 지역에 살고 있으며, 부르키나파소 도시 ‘티에벨레(Tiebele)’에는 약 1100년부터 뿌리를 내려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 도시는 관광지로도 유명한데, 바로 그들의 전통 건축양식 때문이다. 흰색과 검정, 붉은색은 바로 그들의 색. 기하학적 무늬들이 그려진 이 민족의 집들은 부르키나파소 60여개의 민족들 중에 비슷한 건축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Embed from Getty Images


‘강철도 뚫을 수 없다’는 별명을 얻게 된 건 15세기경 거대한 왕국을 이룬 모씨(Mossi) 민족이 구룬시 민족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왔을 때의 일이다. 수적으로 열세에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전투에서 그들은 강력하게 저항했고, 끝끝내 싸워 결국 정치적으로 독립된 자치권을 지켜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실제 전투에서 구룬시 민족의 몸이 마치 마법의 보호를 받듯 칼이 몸을 통과할 수 없었다고 하여 ‘강철도 뚫을 수 없다’는 전설이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현대의 댄서들에게 더 큰 영감을 주었다. 전통적인 형태의 춤은 잔치나 의식 등에서 각자 개인이 한두가지의 동작을 춤추는 데 비해, 다양한 동작들이 엮인 안무는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배운 안무는 실제 전통춤 동작을 확장하고, ‘전사와 싸움’에 대한 댄서들의 해석이 가득한 춤이었다.

구룬시 민족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상체를 아주 빠르게 진동시키는 동작이다. 아주 테크니컬한 동작으로, 이 특유의 가슴 바이브를 잘 살려 내는 건 만딩고 민족춤 중에서도 고난이도에 속한다. 그리고 쿨레칸 수업에서 많은 이들을 좌절하게끔 했다. (몿진 1호 인터뷰 ‘이진솔’편에 등장하는 춤이다). 발로 차며 앞으로 전진하거나, 주먹이 하늘로 솟구치거나, 전투를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하는 동작들도 많지만, 실제로 ‘강력한 전사’의 힘이 느껴지는 건 바로 이 떨림으로부터다. 내 안의 어떤 힘이 부글부글 끓어 터져 나오기 직전의 에너지들이 진동에 담긴다.

나는 어릴 때 태권도도 배워본 적 없는 순둥이의 몸이었다. 맞지도 때리지도 않고, 넘어져본 적도 그닥 없는 느리고 맹한 몸. 이 춤을 추기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감각들이 몸에서 솟구쳤다. 싫은 건 싫다, 아닌 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내가 맞서 싸우지 않고 피했던 순간들, 하지만 속으로는 눈 똑바로 쳐다보며 맞서 싸우고 싶었던 순간들이 춤을 출수록 솟아올랐다. 아, 나는 정말 싸우고 싶었구나. 나는 지금 싸우고 싶구나. 고개숙여 후회하고 싶지 않구나. 그렇게 춤추며 나에게 힘을 불어넣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세네갈의 안무가 제르멘 아코니는 춤은 하나의 변형(transformation)이라 말했다. 과거 사자를 사냥하러 간다면, 그들과 같은 힘과 에너지를 갖기 위해 춤을 췄다. 인간은 자신의 몸을 춤을 통해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바꾸었다. 구룬시를 췄던 몸의 감각은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힘이 필요할 때면, 구룬시 춤을 춘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의 힘을 잃기 쉬운 시기엔 더더욱. 

승리하기 위한 ‘전사’의 춤을 소개했으니, 전투와 관련한 부르키나파소의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리고 싶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길 최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 했다. 보보를 통치하는 왕으로서 싸우지 않고 승리한 위대한 여성, ‘귐비 와타라(Guimbi Ouattara, 1836-1919)’의 일화다.

Google Image Result for https://cdn.face2faceafrica.com/www/wp-content/uploads/2018/09/guimbi2.jpg

null


20세기 초 당시 기니의 왕, 사모리 투레(Samori Ture)는 그가 가진 왕국의 힘을 과시하고자 무자비한 침략을 일삼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보보를 침략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었고, 보보에 도착하기 전 ‘누무다라’란 나라에 도착했다. 이 나라는 총과 칼, 화약 기술이 발전한 곳으로, 사모리 투레는 쉽게 이들과 전투를 벌일 수 없었다. 하지만, 누무다라 왕 수하의 배신으로 사모리 왕은 전투를 벌이기 전 화약 창고에 물을 모두 부었고, 다음 날 전투에서 모든 화약들은 그 힘을 잃고 말았다. 이에 절망한 누무다라 왕은 강력했던 그들의 역사를 뒤로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마침내 당도한 보보디울라소. 보보의 ‘귐비 와따라’왕은 직접 사모리 왕을 만나러 국경으로 나갔다. 그리고 당신의 그 강한 힘으로 자신을 죽일테면 죽이고, 다만 자신의 나라와 사람들은 절대로 건드릴수 없다는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사바리(Sabali), 알라 카 사바리 디마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자비를 베풀길 바랍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사모리 왕은 더 이상 전투를 이어갈 힘을 잃고 만다. 귐비의 말 앞에서 무력해진 그는 다시 자신의 땅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때 말한 ‘사바리’는 ‘내가 당신을 죽일 힘이 있어도,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용서와 자비를 뜻하는 말이다. 귐비 왕의 말은 지금도 보보에서 많이 쓰고 있으며, 그녀의 이름은 병원과 학교, 영화관 등의 이름으로 남겨져 기억되고 있다. 

날 때부터 ‘전사’로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는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전투’들을 만난다. 나의 존엄성을 뺏으려고 하는 무수한 행위들 앞에서 우리는 기꺼이 투쟁하는 ‘전사’가 되기를 선택한다. 총과 칼보다 언제나 더 강한 건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다. 여전히 빼앗고자 하는 이들에게 ‘사바리’를 전한다. 당신의 그 욕망은 이 마음들 앞에선 한없이 무력하므로. 오늘도 우리들 삶의 크고 작은 ‘전투’들을 응원한다. 

Share this with your friends!
Share on Facebook
Facebook
Email this to someone
email
Pin on Pinterest
Pinterest
Tweet about this on Twitter
Twitter
Share on LinkedIn
Linkedin
Print this page
Pri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