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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코너] 지금의 우리를 고백하기 – 재난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춤

4월의 마지막 날. 오늘도 어김없이 이번 달의 정산을 시작한다. 공연예술계도 농사철과 같이 바쁜 때와 한가한 때가 나눠지는데, 4월은 일이 많아지는 상승곡선의 딱 중턱에 있다. 올해는 참으로 ‘농한기’가 어둡고도 길다. 씨를 뿌려야 할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가 망한다는 말처럼,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아직 뿌려도 늦지 않은 씨’를 찾으며 이번 한 달을 유독 바쁘게 보냈다.

이 글은 지금 우리, 나와 팀 ‘쿨레칸’, 이 겪고 있는 재난을 고백하는 글이다. 누군가에 비해 우리의 재난 상황이 소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춤을 추며 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발달해온 댄서에게 접촉과 만남 그 자체가 공포가 되는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은 사실 아주 큰 재난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이 다르듯, 우리의 지금을 고백하고 기록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이후 또 닥칠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나의 주요 생업은 공연과 워크숍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야 일이 시작되는 데, 코로나로 만남 자체가 불가능해지자 3-4월에 ‘구두’ 계약된 모든 공연이 연기되고 취소되었다. 작년부터 지속해온 공공기관과의 워크숍도 올해 어떻게 더 발전시키면 좋을까 논의하던 차에 모두 잠정적 연기되었다. 그중 하나는 4월 중순 개학해서, 온라인 원격회의 ‘줌’과 5인규모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며 진행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진행해온 엠마누엘의 춤 워크숍은 한창 사람들이 늘어가던 시기였는데, 코로나로 그 흐름이 얼어붙었다. 춤이 이미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사람은 춤 출 수 없을 때 ‘일상’을 이어가지 못해 힘들었다. 춤을 이제 시작한 사람의 경우,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듯 가까스로 생긴 어떤 재미가 제대로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어 갔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취소되는 경험도 정말 큰 충격이었지만, 우리가 열심히 맺어온 어떤 정서적 관계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게 더 피부로 와닿았다.

지난 호에 소개했던 ‘엠마의 집’ 영상은 힘차게 시작했지만, 2화까지 만들고 그만두고 말았다. 3화를 만들려고 할 당시, 우리들이 체감하는 우울감과 무력감은 꽤 컸다. 1, 2화를 보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내준 이들은 많았다. 무력해지지 말자고 춤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먼저 쓰러지고 말았다. 워크숍 때 만나는 ‘웃는 얼굴들’, 엠마의 눈 앞에 파노라마로 쭉 펼쳐지는 그 얼굴들이 아닌 손톱보다 작은 카메라 렌즈를 보며 춤추기는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엠마는 ‘춤추는 얼굴들, 그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자신과 예술의 존재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워크숍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추는 춤은 단순히 ‘수업’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5년동안 꾸준히 이어온 매주의 워크숍은 커다란 만남의 장이었고, 일주일마다 펼쳐지는 하나의 잔치였다. 쿨레칸의 멤버 용일은 지금을 두고 ‘고향을 잃은 기분’이라 말했다. 공연연습과 개인연습을 하며 춤은 계속 추고 있지만, ‘함께 춤춘다’는 몸의 감각, 몸과 몸 사이를 빼곡하게 채웠던 에너지들은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나 또한 거리두기 기간동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쏟아지는 댄스 워크숍 라이브방송을 보며 춤추기를 시도했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모로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 댄서들과 이렇게 접속할 수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 신나고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끝까지 1시간을 이어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혼자 추는 춤이 마치 혼자 밥먹는 것 같아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쓸쓸해졌기 때문이다. 약 3주만에 수업을 들은 나는 몸이 그새 굳어버렸는지 워밍업부터 몸이 무겁고, 예전에 몸 밖으로 잘 나오던 에너지가 생겨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나는 작은 기회라도 잡고 싶어 평소보다 두 배 더 바쁘게 집과 작업실, 여러 회의들을 오갔다. ‘코로나 19 긴급지원’이라 이름붙은 지원사업에는 가능한 힘을 다해 꼬박 지원했지만, 1개 빼고 다 떨어졌다. 선정 공고문에선 모두들 ‘예상보다 너무 많은 지원자들이 몰렸다’고 했고, 그 중 10~15%가 지원을 받게 됐다. 어딘가 부족했을 나의 지원서가 가장 큰 탈락의 이유겠지만, ‘긴급지원’이란 말 한마디에 나는 꽤나 간절했었던 모양이다. 작게는 3명, 크게는 10명 정도가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지원서로 작성하며, 선정되면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를 조금이나마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될거라 상상하며 기대했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합격문’은 출근길 신도림역 빼곡한 지하철 탑승만큼이나 무척 좁았다. 대충 작성했거나, 터무니 없는 계획을 작성한 것들만 제외하는 줄 알았는데, 매년 진행되는 예술지원사업보다 더 합격하기 어려운 지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수한 예술성’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처음부터 해당되지 않았던 것 아닐까. 현 상황에서 아무도 예술가를 고용할 수 없으니, 문화재단이라도 일시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는데, ‘우수한 예술가’여야 가능했던 것이다.

유일하게 선정된 지원사업은 영등포 문화재단의 사업인데, 영등포구 예술인 대상으로 코로나 19 피해사례 설문조사를 한 뒤 만들어졌다. ‘긴급신속지원’이라는 목적에 맞게 ‘선별’하지 않고 신청한 단체 모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한 유일한 지원사업이었다. 처음에는 단체 규모에 따라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할 예정이었으나, 지원신청한 단체들이 예상보다 너무 많았고, 지원의 목적이 긴급신속 지원이었기 때문에, 신청한 단체들에게 모두 나눠주어 각각 약 87만원씩 지원받게 되었다. 선정이 되어 너무 기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지원금이 1/5로 줄어 처음엔 낙담했으나, 모두에게 나눠주었다는 그 점에 안도하고, 고마웠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어떤 글을 마주쳤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한국인 시각예술 작가가 코로나 19로 경제위기를 맞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공문에 대해 쓴 글이었다. 공문서의 첫 문장은 이러했다. “베를린은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인 예술가들의 헌신 없이는 활기차고 위대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한 문장에서 그만 감동을 받고 말았다. 공문서의 문장이 이렇게 깊은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니. 이후, 베를린은 갑자기 실업자가 된 예술가, 프리랜서, 자영업자들에게 긴급지원 신청 3일만에 5000유로(약 680만원)를 통장에 바로 입금하는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쳤다. 그들의 언어적 표현과 정책 실행력에서 나는 강한 신뢰를 느꼈다.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적 표현, 갑과 을의 계약관계가 아니었다. 더욱 놀란 부분은 ‘국적을 불문한다’는 조건이었다. 외국인과 결혼한 나는 한국의 외국인을 대하는 정책과 그 태도에 꽤 민감한 편인데, 베를린이 보여준 예술가, 그 중에서도 ‘외국인 예술가’에게 보여준 이 환대의 제스쳐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5월, 다시 춤수업을 시작한다. 우리가 주로 ‘고용’이 됐던 축제과 공연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새로운 워크숍도 열고 자체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지 계속 방법을 찾는 중이다. 매일매일이 전투같지만, 이 긴 싸움에서 쓰러지지 않고 함께 잘 이겨낼 수 있기를. 4월동안 체감하고 배운 건 ‘그럼에도 계속 춤추겠다’ 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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