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록바의 통쾌한 슛처럼 오늘을 춤춘다 – 코트디부아르의 춤(2) ‘쿠페데칼레 Coupe Decale’
“오늘부터 통행금지, 저녁 여섯시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세력들 간의 내전으로, 매일 밤 클럽을 오가며 춤추는 이들로 가득했던 아비장(Abidjan)의 거리엔 이제 총성이 울렸다. 아비장의 밤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지만, 길거리의 클럽 ‘마키(Maquis)’를 아지트로 삼고 놀던 도시 청년들은 방구석 1열보다 차라리 밤새 춤추는 일상을 선택했다. 저녁 6시 마키로 들어가 아침 5시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이었다. 낮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으로 암흑의 시간들이, 밤에는 이 모든 절망을 잊을 만큼 빛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오늘 이야기할 춤 ‘쿠페데칼레(Coup?-d?cal?)’는 예측 불가능한 혼란 속에서 하나둘씩 웃음과 일상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에서 싹을 틔웠다.
‘쿠페데칼레’는 2000년대 초 생겨난 코트디부아르의 팝 음악 장르이자 춤이다. 어느 특정 민족의 ‘전통춤’은 아니지만, 내가 부르키나파소에서 만난 한 젊은 댄서는 이 춤을 자신의 ‘전통춤’이라 말했다. ‘전통춤’이라 하면 보통 자신의 민족 춤을 말하는데, 내게 그의 설명은 꽤 신선했다. 많은 민족들이 뒤섞이며 새로운 문화가 빠르게 탄생하는 대도시에서 태어난 이들에겐 어쩌면 자신이 만난 첫 번째 춤을 ‘전통’이라 부를 수 있겠다. ‘쿠페데칼레’는 어쩌면 가장 ‘최근’의 전통춤이 아닐까. 코트디부아르를 넘어 아프리카 대륙 전역 어디서든 이 노래와 춤을 즐길 정도로 큰 사랑을 받는 춤이기도 하다.
‘쿠페데칼레’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전, 작은 ‘컨셉’에서 시작했다. 쿠페데칼레를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자르고 옮긴다’라는 아리송한 뜻이지만, 코트디부아르 속어인 ‘누쉬’어로는 ‘속이고 달아난다(to cheat and run away)’란 뜻이다. 즉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 다음, 튀어라’는 말이다.
쿠페데칼레 장르를 첫 번째로 히트시킨 노래 ‘사가시테(Sagacit?)’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 컨셉을 조금 눈치 챌 수 있다. 100유로 돈뭉치를 손에 쥐고, 오픈카를 몰고, 명품을 걸친 아프리카계 청년들이 에펠탑 광장과 클럽에서 춤을 추는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착착차작착착’ 강렬한 드럼 비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움직이듯 말 듯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리듬을 탄다. ‘쿠페’할 때 머리 위로 올린 손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데칼레’하며 올린다. 지금 춤추는 내가 여기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인 듯 보여주고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
1993년, 코트디부아르 초대 대통령이자 33년 동안 나라를 통치했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의 죽음 이후 정치권 세력 다툼은 내전으로 이어졌고, 이를 피해 프랑스로 이주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이주민으로서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다. ‘도둑의 춤’이란 이 컨셉은 아프리카의 무한한 자원을 헐값에 착취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프랑스, 그리고 서유럽 제국주의를 겨냥한 말임과 동시에 더 이상 밝은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사회 시스템 속에서 현실을 떠나 새로운 도피처를 찾는 젊은이들의 열망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샴페인을 터뜨리며 전원주택에서 오픈카를 몰며 화려한 삶을 사는 모습을 추구하기 전에, ‘쿠페데칼레’의 시작은 꽤 단순했다. 복잡한 정치와 현실을 떠나 이 음악은 보통 젊은이들의 희망과 취미에 대해 노래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전통춤들과 90년대 유행했던 콩고의 춤 ‘은돔볼로(Ndombolo)’,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움직임이 결합해 새로운 춤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컨셉만 들어도 재밌는 게 아주 많다. 세계적인 축구선수 드록바의 드리블(Drogbacite), 결혼식에서 찍는 카메라(Camera-camera), 일본 비디오 게임의 캐릭터(Konami), 돈을 뿌리는 행위(Farot-farot) 등의 컨셉이 일상에서 왔다면, 조류독감이나 관타나모 수용소같이 당시 사회현상을 위트 있게 표현한 춤들도 있다.
2005년 중국에서 시작된 조류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판데믹’이 되며, 아프리카 대륙까지 퍼졌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WHO의 권고를 따라 감염 위험이 있는 가축들을 생매장해야 했는데, 이미 당시 전쟁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코트디부아르가 이를 그대로 수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때 나온 노래가 바로 DJ Lewis의 ‘Grippe Aviaire(조류독감)’이다. 병에 걸린 닭들이 온 몸을 부르르 떠는 걸 춤으로 만들고, ‘내 몸에서 나가’, ‘그냥 몸을 움직이자’, ‘우리 모두 미쳐버렸어’, ‘키스’ 등 큰 메시지 없이 빠른 비트 속에 리듬을 살리며 가사를 쏟아냈다. 걱정을 좀 떨쳐버리고 웃어보자는 그의 노래는 ‘판데믹’만큼 사람들을 웃게 하며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아주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렇다. 쿠페데칼레에서 중요한 건 심각해지지 않는 것, 가볍고 즐겁게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쿠페데칼레’는 클럽과 거리에 머물지 않고 무용가들을 만나 공연 작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음악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올해 4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판데믹이 된지 초기일 때,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와 격리생활을 컨셉 삼아 만든 노래도 나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미지가 거리 곳곳을 둥둥 기괴하게 떠다니는 화면 속에서 여느 때와 같이 여유로운 미소로 다리와 엉덩이를 리드미컬하게 흔든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댄서들이 마스크를 쓰고 춘다는 점. 그래도 여전한 것은 계속 춤을 춘다는 점.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서도, 손을 비누로 씻으면서도, 시크한 표정으로 다리를 흔든다. 손을 잡는 대신 발바닥을 마주치며 춤을 춘다. 마스크조차 차려입은 옷처럼 멋지게 쓴 이들을 보니 나도 실실 웃음이 배어 나온다. 우리가 이렇게 춤추고 있는 사이에, 이 또한 모두 지나갈 거라는 듯이.
글 | 소영
[참고자료]
The Popular Movement of Coup?-D?cal?. Anthropology of an Urban and Coastal Dance(Yaya Kone, 2014)
위키피디아 – 쿠페데칼레
Numeri Danse TV – Coupe Dec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