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살리아 사누(Salia Sanou) – 춤은 가버린 시간이자, 오게 될 시간이다.
‘아프리카 춤(African Dance)’, ‘아프리카 현대무용(African Contemporary Dance), ‘아프로 퓨전 댄스(Afrofusion Dance), ‘아프로 현대무용(Afro Contemporary Dance)’. 춤의 종류를 구분하거나 지칭할 때 한 대륙의 이름이 따라붙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아시아 댄스, 유럽 댄스, 오세아니아 댄스, 남아메리카 댄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대륙은 지구 표면에 존재하는 거대한 면적의 육지를 뜻하는 개념이다.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고 연속적이기에 대륙을 범주로 문화나 예술을 정의하는 표현은 그 의미를 온전히 전하기 어렵다. 그런데 유독 아프리카 대륙 출신의 무용수나 안무가가 다른 대륙으로 이주해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 매번 비슷한 질문을 직면하게 된다. ‘당신이 추는 춤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춤은 얼마만큼 아프리카 전통 춤인가요?’, ‘당신의 춤을 현대무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뉘앙스의 차이만 다를 뿐 호기심을 가장한 무지와 선입견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왜 어떤 문화적 배경은 늘 설명과 증명을 요구받을까?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을 멈추고, 차이를 차별이나 혐오가 아닌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풍요로움, 더 나아가 자유의 감각으로 확장할 수는 없을까? 갈증을 느끼던 차에 마침 국제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안무가 살리아 사누(Salia Sanou)를 온라인 화상 채널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1969년 부르키나파소 레게마(Leguema) 마을에서 태어나 ‘현대 아프리카 무용’의 대모라 불리는 거장 제르멘 아코니(Germaine Acogny)를 비롯한 여러 안무가로부터 춤을 배웠다. 그의 춤은 풍요로웠던 유년 시절로부터 출발한다.
어린 시절은 지금의 내가 지닌 문화적 경험의 요람과 같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무용, 음악, 연극, 춤 등 모든 장르의 구분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여러 예술 장르가 융합적으로 어우러지고 동시에 독창성을 가졌다. 성인식, 장례식 등 모든 행사에서 예술은 보편적으로 공유되었다.
태어나고 자라온 토양의 문화적 풍요는 아프리카를 방문한 프랑스 몽쁠리에 국립안무센터의 안무가 마틸드 모니에(Mathilde Monnier)와의 만남을 계기로 유럽으로 확장된다. 1993년, 20대 초반의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마틸드의 무용단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긴 춤의 여정을 시작한다. 프랑스를 비롯해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등 다양한 문화권 무용수와 함께 세계 각국을 돌았다.
마틸드와의 만남은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나, 경력에 있어서나 결정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정말 특별한 안무가다. 사실 그녀는 나에게 어떻게 추라고 지시할 수도 있었다. 그게 안무가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나의 몸으로 창조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해라, ‘자유롭게’를 강조했다. 이 과정을 통해 많이 배웠다. 특히 무용수 스스로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궁극적으로는 이때가 아프리카와 유럽 간의 균형적 관점을 체득하던 시기가 된 것 같다.
마틸드와의 소통과 배움을 통해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즉흥에 대한 시선, 유럽 안무가들에 대한 지평을 넓혀 갔다. 한편으로는 진정한 아프리카의 모습 혹은 다양한 아프리카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동료 안무가 세이두 보로(Seydou Boro)와 함께 ‘살리아 니 세이두(salia n? seydou)’ 무용단을 만들어 ‘이국적이고 민속적인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한 현대 아프리카 춤’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험하기로 한다.
우리의 첫 작품은 현대의 아프리카에 관한 것이었고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말도 많았고. 호불호가 명확했다. 한쪽에서는 프랑스 춤을 추는 애들이라고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통과 다른, 우리가 새로 창조한 현대 아프리카 춤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당시 유럽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다른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충돌하는 시기였다. 논쟁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첫 번째 작품 <Le si?cle des fous(미친자들의 시대)>는 르완다에서 두 번째로 열린 ‘인도양-아프리카의 안무적 만남(Les Rencontres Chor?graphiques de l’Afrique et de l’Oc?an indien)’ 국제 무용축제에서 2위를 수상했다. 안무적 만남 속에서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불행한 지원자에서 차츰 행복한 지원자, 심사위원, 그리고 예술 감독이’ 되었다.
이 축제는 젊은 안무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콩쿨이다. 아프리카든, 유럽이든 대륙을 따지지 않고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동시에 아프리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54개의 국가가 있기에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풍요로움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인도양-아프리카의 안무적 만남’은 아프리카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2001년부터 6년간 반가운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프랑스로부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과정이 식민주의적이지 않으냐는 비판도 뒤따랐다. 안무가로서 콩쿨에 참석하며 살리아 사누는 현대 무용의 학술 언어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동시에 끝없이 이어지는 논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았다.
물론 정치적, 경제적 부분도 무시할 수 없고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대중과의 소통에 조금 더 관심 있었다. 아프리카인들도 자신의 세상과 문화를 보여줄 권리가 있지 않은가. 콩쿨을 매개로 아프리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표현의 자유를 얻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더 가치 있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살리아 사누의 저서에서 끝없이 논쟁에 휘말리는 현실 속에서 안무가로서의 통찰과 사유가 드러나는 대목을 엿볼 수 있다.
“‘아프리카 현대무용’에 대해서, ‘현대 아프리카 무용’에 대해서, 아니면 ‘아프리카 창작무용’에 대해서 말해야 할까? 의미론적 논쟁은 관찰자나 기자, 무용 비평가, 프로그래머, 특히 목록화하거나 정의하고 때로는 설명 불가능한 것을 설명해야 하는 관련 기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들의 정의 속엔 때때로 건방지고 부정적이고 경멸스러운 함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유들은 한편으로 우리의 움직임에 영양분을 공급했고, 그러한 논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 <아프리카, 현대무용(Afrique, danse contemporaine)>, 살리아 사누, 2008
세계 곳곳에서 아프리카 출신의 예술가가 직면하게 되는 정체성을 설명하고 증명하기를 요구받는 상황에 대해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아프리카 전통춤에서도 파리의 지하철에서도 영감을 받는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왔고 검은 피부색을 가졌지만, 춤 자체가 곧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 아프리카 무용’이라는 용어 자체는 나를 가두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현대 미국 무용가’라고 칭하는 걸 들어본 적 있는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를 ‘근대 유럽 안무가’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을 우리는 다시 인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곳곳의 관객을 만나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현대성’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성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다시 부르키나파소로 돌아간다. 그의 저서, 같은 책의 다음 구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현대무용’이라는 학술 용어 속에서 이것이 단순한 서구의 미적 모방이라 유지되고 지속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나는 교육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고민은 2006년 구체화된다. 과거 프랑스의 무용단으로 함께 떠나고, 또 새 무용단을 함께 만들기도 했던 동료 세이두 보로와 이번엔 부르키나파소 와가두구에 안무발전센터(Centre de la choreographic development) ‘흰 개미굴(CDC La termiti?re)’을 설립했다. 그들은 매해 ‘몸의 대화 비엔날레(Festival Dialogues de corps)를 개최해 전 세계의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열어왔다.
이 안무발전센터는 나에게 하나의 꿈과 같았다. 춤은 사실 아프리카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중적인 것.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체계적으로 배움을 학습할 수 있는 교육기관은 드물었다. 춤을 포함한 창작활동을 지원이 필요해 만든 곳이다.
안무발전센터의 이름이 재밌다. ‘흰 개미굴(La termiti?re)’이다. 부르키나파소 출신 작가의 작품에서 따왔다.
흰 개미굴은 땅에 있다. 개미들은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곳, 땅 아래에서 계속 움직인다. 아름다운 철학이고, 이 안무발전센터를 만든 취지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와도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젊은 무용수나 안무가들에게 외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늘 내면적인 힘을 써야 한다는 메세지를 이름에 담고 싶었다.
이 센터에는 크게 3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무용수와 안무가를 양성하는 것. 인턴쉽 제도도 있고 3년 과정의 학업 프로그램도 있다. 둘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 아프리카 각지에서 온 무용수, 혹은 전 세계 곳곳에서 온 무용수들이 머물 공간을 마련한다. 셋째, 작품을 전파하는 것. 만들고 단순히 썩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줄 기회를 제공해 아프리카에 대한 시선을 넓히고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학업 프로그램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들 역시 참여할 수 있다. 난민 캠프, 빈민촌 등 각지에서 온 친구들도 많다. 3년 과정을 통해 프로 무용수의 자질을 갖추게 되고 이 과정을 마치면 무용수로서 몸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계로 도약하게 된다. 이 과정을 마치면 타지역의 무용 센터의 교육자로 파견되기도 하고, 무용단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안무발전센터는 단순히 예술가 양성과 작품 활동 지원을 넘어 복합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열었다.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부르키나파소와 부룬디의 난민 캠프를 찾았다. 2013년 부룬디의 프로그램(Refugees on the Move)에 속한 예술가들과 난민 캠프에서 작업을 진행한 이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부르키나파소의 난민 캠프(Sagg-nioniogo, Mentao 등)에서 워크샵을 진행했다. 당시 캠프에는 35,000명이 넘는 말리 난민이 모여있었다. 춤은 희망을 잃은 자들 가장 가까이로 들어갔다. 그렇게 절망의 한복판에서 <Du desir d’horizon(수평선의 욕망으로부터)’>라는 작품이 탄생했다.
사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건 의식주이다.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 치고 있는 이들에게 춤을 추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다들 황당해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한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연대 의식을 느끼고 나를 움직이게 했고,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눴다. 서서히 아틀리에를 만들고 그들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춤을 추자는 제안은 다른 종류의 말 걸기, 대화의 다리를 놓는 과정이었다.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기에 움직임을 통해 자유로움을 감각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작품과 관련한 한 인터뷰에서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난민캠프에서의 경험, 내가 목격한 삶의 무가치함, 폭력 등을 표현하는데 언어는 실패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난민 캠프는 사실 되게 민감한 장소다. 누가 어떻게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겠는가? 그곳에서는 모두가 약한 존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향을 떠나고, 삶의 터전을 잃지 않았나. 그런 공간에서 예술은, 춤은, 문화는 기존의 언어가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게 만들 수 있다.
<Du desir d’horizon(수평선의 욕망으로부터)’>은 난민 캠프에서 목격한 경험과 사무엘 베케트 작가의 ‘최악을 향하여’라는 희곡에서 영감을 받았다. 살리아 사누 안무가는 세상의 혼돈 속에서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삶의 시를 떠올렸다.
캠프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서 있고, 어떻게 잠을 자는지 관찰했다. 폭력에 시달렸기 때문에 난민들의 몸 상태는 충격적이었고 폭력적 자세를 주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상대적으로 아이들, 여성들이 힘을 내는 상황이었다. 사무엘 베케트 작품은 어떻게 이 세상의 혼돈을 그릴 것인가 하는 상황과도 맞닿아 있었다. 이들이 난민 캠프에 평생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가난과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온 이들에게 인류의 시적 영감과 그 안에 있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다. 문학과 춤으로.?
살리아 사누 안무가에게 몸은 하나의 영토(territory)로 반응한다. 하나의 몸은 다른 몸이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다. 영토라는 공간적 관념은 타인과 만남이라는 욕구를 통해 채워진다. 다른 몸을 향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열리고 닫히는 기준은 문화적 허용치에 따라 달라지고, 호기심과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중요한 4가지를 꼽으라면 몸, 만남, 공간, 영토이다. 어떤 공간에 가면 사람을 만난다. 그들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시선을 통해 반응하게 된다. 그때 나의 몸은 하나의 영토가 된다. 다른 영토를 지나거나 통과하거나 머뭄으로써 서로의 영향력이 수용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늘 ‘제3의 영토’를 떠올린다. 나와 타인의 영토 사이의 지대. 그곳에서 바로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서로 허용하고 동의하는 공간.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무지로부터 비롯된 편견, 차이가 오역되어 발생하는 혐오와 차별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때 춤은, 예술은 어디에 있고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서로의 영토를 존중하며 자유롭게 넘나드는, 우리 앞에 도래할 시간을 상상한다. 살리아 사누 안무가의 저서에 실린 물음으로 그 시간을 앞당겨 본다.
“우리의 색은 다른 이들의 색과 섞이고, 우리의 시선은 쉼 없이 다른 이들의 시선과 교차되며, 우리의 냄새는 섞이고, 우리의 시각은 나란히 놓이게 된다. 이것을 하나의 큰 자유나 집단적 기억의 풍요로움으로 봐서는 안 되는가?”
기록 | 보코
참고
– 이 인터뷰는 쿨레칸의 ‘데게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춤 : 경계를 넓히는 용기와 자유’를 주제로 2021년 1월 29일, 2월 19일 2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대화를 바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청년국제교류네트워크 구축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아프리카, 현대무용(Afrique, danse contemporaine)>, 살리아 사누, 2008, 1차 번역 디올 사(르프렌치코드)
– 인터뷰 ‘국제 무용의 날 메세지 2018 – 아프리카 International Dance Day Message 2018 ? Africa’, 2018
– 프로그램북 ‘Du desir d’horizon, Salia Sanou’, Maison de la danse Lyon,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