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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춤추다 보니 어느 날 – 까르의 부르키나파소 일기

출국을 기다리며

컴컴한 어둠에 비행기 활주로 불빛만이 바삐 깜박이고 있다. 베를린에서 부르키나파소로 가던 중 경유를 위해 잠시 내린 이곳은 모로코 공항. 원형의 납작한 모자 페즈(Fes)를 쓴 남성들과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들이 기다란 치마와 바짓단을 펄럭이며 분주히 걸어 다니고 있다. 3개월간 유럽에 머물며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공기와 분위기, 눈빛, 피부색, 옷차림… 살면서 몸소 마주친 적 없는 또 다른 시공간의 모습에 다시금 놀랐다. 세상은 정-말 넓구나.

아시아인이라고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공항. 중동인과 아프리카인이 가득한 공항에 있으니 어쩐지 가슴이 건포도처럼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이방인이 된 기분으로 가방을 앞으로 메고 팔로 한번 더 둘러멘 뒤 게이트 한 쪽 빛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있는 사람 중 나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다들 머릿속엔 언제 뜰지 알 수 없는 무책임한 비행 대기시간뿐일걸? 긴장하지 말자구.’

새로운 땅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릴 때마다 나는 내가 알던 사회의 한계를 실감하곤 했다. 파리의 거리에서 마주친 셀 수 없이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 베를린 밤거리에서 만난 갈색 여우, 스페인 산티아고 메세타 지역의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 벌판.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내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모습의 별세상 속에서 나는 두근거리기도 하고. 때론 ‘이게 뭐지! 모르겠어! 무서워!’라며 막연히 두렵기도 했다.

와이파이를 잡으니 메시지가 와있다. “까르, 잘 오고 있니? 와가두구에 도착하면 샤콜이 널 데리러 갈 거야.” 와가두구는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이다. ‘샤콜이 누구지? 내가 샤콜을 알아볼 수 있을까? 소영에게 샤콜 사진을 부탁해야 하나?’ 아니다. 여기 아시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분명 알아볼 테다. “소영, 생각보다 비행기가 늦어지네. 늦게 도착할 것 같아. 샤콜에게 전해줘! 곧 만나자-” 한 시간 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가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다. 길이 엇갈리면 안 될 텐데. 와가두구 공항엔 와이파이가 잡힐까?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창밖으로는 컴컴한 어둠에 비행기 활주로만이 반짝이고 있다.

비행

기다린 지 2시간째. 비행기 문이 열렸다. 무릎이 90도로 접히는 낮고 좁은 좌석. 내 오른쪽엔 분홍색 가발을 붙인 드레드 머리의 한 여성분이 창밖을 보며 앉아있고 왼쪽엔 자신의 다리가 들어갈 자리에 커다란 짐을 끼우고 정장을 걸친 긴 다리는 한쪽 통로로 뺀 남성분이 앉아있다. 천천히 활주로를 돌던 비행기가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직진하며 속도를 낸다. “으아앙—!!!” 한 아기의 울음과 함께 서서히 머리와 목으로 기내 압력이 느껴진다.

어쩌다 이토록 먼 길을 떠나게 된 걸까? 명확한 이유를 찾고 싶지만 암만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넉 달 전 엠마가 겨울에 한 달간 고향 부르키나파소에 가게 될 거라고 했다. 이에 어떤 영문인지 엠마와 동행하고 싶다는 멤버가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기에 비행기 푯값이 만만치 않았지만 쿨레칸을 통해 엠마누엘(줄여서 엠마)과 아미두 곁에서 만딩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지낸 동료들이 어연 3년째 함께 활동해오고 있던 터였다. 나 또한 그중 한 명으로 춤과 노래를 통해 경험하고 있는 만딩 문화의 고장이 궁금했다. 엠마의 고향, 부르키나파소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들은 정말 줄라동(Diouladon)을 추며 기쁨을 나누고 당캉(Dankan)을 부르며 축제를 노래할까? 그들의 일상에서 춤과 노래는 어떤 모습일까? 가보지 않는다면 영영 알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도 모였고 엠마도 가겠다. 이참에 많은 생각 말고 함께 가보기로 했다. 돈은 벌면 되고 시간은 충분했다.

비행기가 대기를 무겁게 가르며 위로 상승하자 먹먹해지는 귓구멍. ‘으악. 아프잖아!’ 다급히 코를 막고 고막으로 숨을 불어넣는 와중 이곳저곳에서 아기들이 울기 시작했다. “와아앙–!!” “끄에에엥” 세상에 아기가 한 여섯 명은 탄 것 같다. 앞으로 직접 만나고 경험하게 될 모습을 짐작하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그저 막연히 가보고 싶었던 곳에 정말로 가보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 그걸로 충분한 것이겠지? 그 뒤로도 몇 번의 울음소리가 울렸지만 불이 꺼져 깜깜한 기내에서 나는 서서히 잠에 들었다.

비행에 온전히 몸을 실은 지 약 4시간. 기내에 불이 켜지고 착륙 알림이 울렸다. 비행기에서 본 한국의 야경은 북한과 대조되어 땅의 반쪽만이 반짝였고 프랑스는 수천 개의 줄기로 일렁이는 주황 불빛이 용암과도 같았다면. 부르키나파소는 마치 서울에서 보이는 밤하늘의 별과 같이 검은 대지에 띄엄띄엄 점으로 된 작은 불빛들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비행기가 땅에 닿자 조용하던 기내에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 소리가 들렸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을 때 아파트 곳곳에서 들리던 기분 좋은 환호가 떠올랐다. 그러게. 어딘가 도착한다는 건 기쁜 일인데 그동안 한 번도 박수칠 생각을 못 했다. 기쁨을 표현한다는 건 부끄럽지만 좋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박수에 덩달아 흥이 났다. 비로소 도착한 것이다. 부르키나파소에.

첫 만남

후덥지근한 공기. 고속 터미널 같은 공항. 함께 내렸던 모든 사람이 검문소를 떠나고 나와 한 프랑스 여성과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는 부르키나파소 여성만이 남아있다. 어째서인지 우리 셋의 가방이 나오질 않았다. 도착했다는 설렘도 잠시. 모로코에서는 비행기를 기다리더니 이번엔 가방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결국 안내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에 몇 가지 정보를 기재한 뒤 맨몸으로 털레털레 입국 장소로 나갔다. 헌데 나를 보고 세 명의 공항 경찰이 말을 건다.
“너 한국에서 왔지?” 어라라? 뭐지?
“맞아. 한국에서 왔어.”
내 말에 서로 무어라 말하더니 한 명이 문밖으로 나가 소리를 친다. 놀란 내가 둘을 쳐다보니 그들이 하는 말.
“너 기다리던 사람 방금 떠났어.” 뭐라고?
그때 한 길쭉한 남자가 주차장에서 내 쪽을 향해 긴 팔을 흔들며 성큼성큼 뛰어온다.
“카루!!!!” 저 사람이 샤콜이구나!

“카루~~~~ 못 보는 줄 알았어!”
“미안해, 나 가방이 안 나와서 기다리느라!”
“그랬구나. 일이 잘 못 된 줄 알았어~~!”
“으아… 다행이다. 못 만날 뻔 했다~~!”

흥분한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마구 이야기를 나눴다. 옆으로 동그란 안경을 쓴 샤콜은 어쩐지 마이콜을 닮았다.

“나, 가방이 결국 안 나왔어.”
“흐음..”

샤콜이 공항 오피스로 들어가 공항 관계자 몇 마디를 주고 받더니 가방은 괜찮을 거란다. 그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와가두구의 밤거리로 나왔다. 파랗게 어두운 하늘. 모래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밝히는 주황 불빛. 신호등은 없으나 손짓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거리의 오토바이들과 차들. 달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시내 구경을 하다 몇 마디 주고받고 멈춘 대화가 어색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카누데, 카누데, 카누데 다닐레예 쏘다냐~” 그러자 샤콜이 내 노래에 자신의 음성을 보탠다.
“카누데, 카누데, 카누데 다닐레예 쏘다냐~”
“카루 이 노래 어떻게 알아?”
“엠마랑 아미두가 알려줬어. 둘이 한국에서 이 노래로 공연했어. 같이 춤도 추고.” 내 말에 샤콜이 크게 웃는다. 웃으니 긴장이 풀린다.


“카누데~ 카누데~ 카누데 다닐레예 쏘다냐~”
“카누데~ 카누데~ 카누데 다닐레예 쏘다냐~~~”
신촌의 지하 연습공간에서 엠마와 눈을 맞추며,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모아 목청껏 불렀던 노래였다. 뜻도 모르고 부르다 나중에 축제 준비를 하며 알게 된 노랫말의 뜻은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을 찾지 못해 서성이던 나를 이 노래의 마음이 지켜주고 이끌어주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사랑한 건 무엇일까? 만딩고일까? 엠마누엘과 쿨레칸에서 만난 잊지 못하는 여러 사람일까? 그들이 함께 주고받은 함성과 열기일까? 혹은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던가.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한 상태로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다 도착했다.
춤추다 보니 어느 날. 부르키나파소에.

처음 만난 와가두구의 밤거리

2017년 겨울. 알바로 번 삼백만원과 8L가방을 메고 비행기를 탔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내가 그들의 지지가 없는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일까 궁금했다. 그렇게 3개월간 파리-산티아고-베를린-파리에 살다 부르키나파소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고 거리에서 만난 많은 이들의 춤을 보며 지냈다. 머나먼 땅의 부르키나파소 보보디울라소는 까마득하면 까마득하고 때론 다시 훌쩍 찾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느끼곤 한다. 몇 회를 하게 될까. 모르겠다~ 일단은 즐겁게, 그날의 기억들을 글로 되살려보고자 한다. _까르

Comment: 1

  • 시디키
    5 years ago

    크~~~~~ 재미있다 까르야 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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