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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또 올 줄 몰랐는데 자꾸 또 오네

부르키나파소여행기 특별기고
박용일 ‘또 올 줄 몰랐는데 자꾸 또 오네’

늘 어쩌다 보니 오늘이 된다. 한 치 앞도 계획적으로 살지 못하는 내가 <몿진>에 글을 기고해달란 부탁을 받았을 때, 내가 정말 여길 오긴 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느새 침대에 누워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지금 부르키나 파소다. 또 여기에 와 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왔을 땐 또 올 줄 몰랐다. 두번 째 왔을 땐 왠지 또 올 것 같았다. 세번 째인 지금은 알아서 또 올 거란 확신이 든다.

공기부터 얘기하고 싶다. 사람들은 공기를 기억한다. 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부르키나 파소에서 처음 맡은 공기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따뜻한 흙냄새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맡게 된 이곳의 공기는 분명 내 일생 가장 나쁜 공기이기도 했다. 부르키나 파소는 사헬 지대에 속한 국가다. 12월이 되면 북아프리카의 사막에서 하마탄 바람이라고 하는 모래바람이 부는데, 이 때문에 밖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있다.

하마탄 바람이 불 땐 이렇게 흙빛 나무들이 된다.

집 안에 있어도 피할 수 없다. 매일 청소를 해도, 자고 일어나보면 바닥부터 식탁까지 흙이 켜켜이 쌓여있다. 밤에 사진을 찍고 싶어 후레쉬를 켜고 찍으면, 렌즈 앞의 모래가 빛을 반사해 뿌연 사진밖에 못 건질 정도다.

하마탄 바람이 부는 밤, 플래시를 켜고 찍으면 모래입자가 빛을 온통 반사해서 초점도 맞출 수 없다.

또, 이곳은 서울에 자동차 타는 사람들 많은 것처럼 오토바이를 정말 많이 탄다. 그런데 자동차나 오토바이들이 대체로 중고인 데다(어떤 것들은 가히 중고의 중고의 중고…), 기름도 관리가 잘 된 질 좋은 기름도 아니니 매연이 더 심하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매일 태운다. 동네동네 여기다 싶은 곳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모아놓고 태우는데, 비닐 쓰레기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 연기도 매우 독하다. 이렇다 보니 기관지가 약한 나는 목감기로 시작해서 몸살감기로 번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사실 지금도 몸살이다.

지금의 공기를 말해보자. 내가 머문 기간은 각각 2016년 12월-2017년 3월, 2018년 1월-2월, 2019년 11월이다. 늘 12-3월에 머물렀고, 11월에 와보긴 처음이라는 건데, 오. 하마탄(Harmattan, 서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서 기니만으로 부는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바람)이 안 분다! 온 땅이 흙이므로 흙먼지가 없을 순 없지만, 그동안은 나뭇잎들마저 건조한 흙색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푸릇푸릇 생기있는 부르키나 파소를 만나고 있다. 당장 어제만 해도 비가 잔뜩 쏟아졌었다. 말로만 듣던 일이었다. 길가에 돋아난 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염소와 양들이 맛있게 먹는다.

쾌청한 11월의 하늘

매연과 쓰레기 태우는 연기는 여전하지만, 흙바람만 없어졌을 뿐인데 다른 것들도 괜찮아진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흙이라는 게 참 이 나라의 매력이라고 하고 싶다. 나는 이곳의 흙을 생각하면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춤판들이, 춤꾼들이 생각난다.

이곳 사람들은 흙과 가깝다. 물론 가까우니까 가깝겠지만, 흙을 미워하는 마음을 본 적이 없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든 몸에 흙을 묻히고 다니고, 그걸 보고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대충 털고 말지. 춤을 추는 곳들에도 흙이 있다. 우리나라 춤 연습실 바닥엔 먼지가 굴러다닌다면, 여긴 정말 흙이 쌓여있다. 야외이든 실내이든. 그러므로 일단 흙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눕거나 바닥을 쓸면서 추는 동작들이 많은 컨템포러리 댄스는 주로 고무 재질의 댄스플로어나 매끈하게 연마 된 콘크리트 바닥에서 춘다. 콘크리트 바닥을 생각하면 미슈의 집(쿨레칸 창단 멤버. 집 마당에 콘크리트 댄스플로어를 만들어 놓았다)에서 수업을 듣던 날들, 그곳에서 흘렸던 흙 섞인 땀이 기억난다.

부르키나파소 쿨레칸의 연습 터, 미슈의 집 마당.

전통춤은 아예 흙바닥에서 춘다. 수업도 때론 흙바닥에서 한다. 푹신푹신한 흙에선 몸이 휘청거린다. 내가 흙과 덜 친해서겠지. 땅을 찰 때마다 발이 모래 속에 파묻혀버리고 발 디딜 때마다 중심 잡기도 훨씬 어렵다. 그렇지만 맨발로 흙을 밟으며 춤을 추면 좋은 느낌이 있다. 내 무게를 받아주고 감싸주는 따뜻한 흙. 특히, 같이 춤춘 사람들과 땅에 누워 하늘을 보던 것이 잊혀지질 않는다. 북소리에 실컷 춤추고 땀 흘리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식힌 뒤 그 자리에 누워 태양과 달, 별들, 나무들, 새들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높은 건물들은 중심가에나 있어서 내가 춤춘 곳들에선 하늘을 볼 때 눈에 걸리는 게 없었다. 하늘 말고 보이는 건 나무랑 새들밖에 없었다.

낮엔 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저녁엔 팀원들 연습

동네에서 전통 춤판을 열거나, 마스크 댄스 세레머니를 할 거라면 일단 춤을 출 영역의 흙 속에 돌이나 다치게 할 만한 것들을 세심히 골라내고 흙먼지가 너무 날리지 않게 물을 넉넉히 뿌려준다. 그럼 춤판이 완성된다. 이곳에서 전통춤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즐긴다. 동네 할머니들이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 여러분들이 봤으면 좋겠다. 북소리에 애들은 방방 날뛴다. 민족 춤엔 그들만의 의미가 담긴 동작들이 있다. 여기 보보쥴라소에서 보보 민족이 추는 마스크 댄스는 아크로바틱 테크닉들이 정말 많이 쓰이고, 스탭도 무척 격렬한 데다가 탈춤 의상 자체가 지푸라기들을 엮어 만들기 때문에 먼지를 엄청나게 발생시키는 의상이다. 춤추는 본인이 가장 많은 흙을 뒤집어쓴다. 흙먼지 구름 속에서 얼굴까지 완전하게 가려지는 전신 의상을 입은 댄서들을 보노라면, 저 사람들 눈을 뜰 순 있는지, 숨을 잘 쉴 순 있는지 걱정이 든다. 아마 나라면 혼절할 것이다. 그런데 다들 희한하게 괜찮다. 마스크에 특별한 힘이 있는 걸까… 놀라운 건 이런 동네 춤판에서 춤추는 마스크 댄서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댄서’가 아니다. 그들은 옆집 청년들이다. 마스크 댄스 세레머니가 잡히면, 마스크 쓰고 싶은 사람들이 신청한다. 그리고 추는 것이다. 마스크 안에 누가 계신지는 비밀이고 알아챌 수도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탈을 쓰고 있을 땐 그 탈이 되기 때문이다. 

마스크 댄스를 하는 마당.

몸이 참 아팠다. 이곳에 오면 누구든 한번씩은 아프다. 누구는 공기 때문에, 누구는 물 때문에, 누구는 음식 때문에… 고열로 잠을 설쳤던 어제 새벽엔 말라리아를 검색하고 있었다. 내 약과 친구들의 약을 세 가지쯤 번갈아 먹어가며 효과 좋은 약을 찾아 꾸준히 먹고, 잘 쉬었더니 좀 나아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춤을 추고 싶어진다. 지금 나가서 거리를 걷다 보면 누군가의 기쁜 일로, 혹은 슬픈 일로 춤판이 열리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왜 춤을 추고 싶을까. 내가 추고 싶은 춤은 무슨 춤일까. 내가 잘 추고 싶은 춤은 무슨 춤일까. 무대에서 추는 춤? 그냥 아무 데서나 추는 춤? 연습실에서 추는 춤? 좋아하는 음악에 프리스타일로 추는 춤? 안무를 만들고 추는 춤? 메세지나 감정을 표현하는 춤? 프리스타일 배틀이나 퍼포먼스 대회를 위한 춤? 무대에 올리려고, 혹은 멋진 비디오를 만들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 추는 춤? 다 맞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잘하면 나는 춤을 잘 추는 걸까? 다 맞다.

CDC에도 연습공간 한 곳은 이런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사진 찍은 시점이 11월이라 모래바람이 안 불고, 직원이 매일 아침 걸레질을 해서 아예 광이 난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본 춤은 많은 사람이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춤이었다. 녹음된 음악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의 몸과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은 몇십분, 몇 시간, 조금 쉬었다가 또 하루종일 흐른다. 춤이 일상과 문화의 일부분인 이들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행복하고 건강한 춤을 춘다. 나 같은 ‘댄서’들은 이 춤을 ‘너무’ 잘 추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춤을 일상으로, 문화로, 삶으로 추는 ‘댄서’들은 ‘그렇게’ 안 춘다.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고 자란 댄서들은 트레이닝을 거쳐 이 춤의 진정한 프로가 되고, 어떤 다양한 환경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그 춤을 춘다. 그들의 일상과 문화와 삶을 똑같이 못 산 우리들은 평생 그렇게 못 추는 걸까? 아닐 거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 사람이지만 그렇게 추고 싶고, 그렇게 출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춤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해서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다.

결혼잔치 춤판도 흙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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