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주원 탈춤꾼 “탈이라는 게 결국은 벗기 위해 쓰는 것”

누군가의 춤이 시작될 때, 우리는 숨죽여 춤의 첫 신호를 기다린다. 허공의 손가락, 단단한 다리, 어깨 끝이나 고갯짓. 어디든 곧장 움직일 것만 같다. 하지만 역시 시선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곧 춤을 시작하려는 이의 얼굴이다. 커지는 눈동자와 벌렁거리는 콧구멍을 보며 곧 터져 나올 흥분을 예감한다. 치켜 올라간 눈썹과 좁게 찌푸린 미간에서 응축된 감정을 읽는다. 입꼬리가 하늘로 솟을수록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지고, 땅으로 꺼질 때면 함께 가라앉는다. 양 볼에 움푹 팬 보조개 자국, 콧방울의 미세한 떨림, 눈꺼풀의 빠른 이동, 턱의 씰룩쌜룩한 모양까지. 무엇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얼굴의 작은 변화에는 춤으로 전하려는 감정이 농축되어 있다. 표정은 말없이 건넬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표정을 가리고 춤을 추면 어떨까? 고스란히 몸짓으로만 이야기를 전한다면? 혹은 고정된 단 하나의 표정만으로 다채로운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면? 생소한 질문 같지만, 그 답은 이미 우리 곁에 오랫동안 친숙히 존재해왔다. 바로 탈춤이다. 

탈. 가면. 마스크. 전 세계 곳곳에서 춤과 음악과 이야기가 있는 자리에 등장한 도구. 탈을 쓰고 추는 춤과 연희는 탈놀이, 가장행렬, 가면극, 탈춤, 무도회, 무언극, 가면 춤, 마스크 댄스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해왔다.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추는 행위가 전 세계에 공통으로 존재해왔다니 놀랍지 않은가? 대체 왜?

아주 단순한 의문을 품고, 탈춤의 원리와 정신을 바탕으로 관객과 어울려온 이주원 탈춤꾼을 만났다. 이주원 탈춤꾼은 작명도 거창한 ‘천하제일 탈공작소’라는 예술 단체에서 활동하며 전통 연희와 창작 탈춤극에 관한 경험과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춤’과 ‘표정’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두자마자, 이주원 탈춤꾼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탈을 꺼냈다. 

직접 보여드리고 싶어서…

백정탈. 할미탈. 이매탈. 실제 공연에 사용하는 탈들이라고 했다. 여섯 개의 눈동자를 앞에 두고 ‘춤과 표정’에 관한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탈은 표정이 고정되어 있지만, 탈을 쓰고 춤추는 이의 연기에 따라 사람들이 각기 다르게 본다. 탈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다르게 읽히기도 하고. 하회탈은 고개를 숙이면 험상궂은 표정이지만, 고개를 넘기면 웃는 얼굴이 나타난다.

밑도 끝도 없이 품고 있던 의문을 먼저 꺼냈다. 전 세계적으로 탈춤 혹은 마스크 댄스라는 장르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왜일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를 일차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탈을 쓰는 행위에는 농경, 제례 의식, 신을 표현하는 춤, 사냥의 기원 등 여러 설이 많긴 하다. 아프리카 대륙이나 다른 나라의 가면은 인간이 아닌 경우도 많다. 신이나 자연물, 동물을 형상화한다거나. 반면 한국은 조선 후기 이전의 탈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조선 시대의 직업군과 이름이 명확히 남아 있다. 

한국의 하회탈은 턱의 형태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턱이 분리되어 있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양반과 선비. 턱이 있긴 하지만 고정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말할 수는 없는 각시, 할미, 초랭이 등. 마지막으로 턱이 아예 없는 하인인 이매. 

대사의 양과 지위에 따라 입의 크기와 턱이 조금씩 다르다. 할미탈은 입이 크게 뚫려 있는 데에 반해, 부네라는 기생 역할을 하는 탈은 입이 좁고 작게 뚫려 있다. 긍정이나 부정, 딱 두 가지 대사만 할 수 있다. 각시탈은 입이 붙어 있고 대사가 한 마디도 없다. 이매탈은 턱이 없어서 연희자의 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주원 탈춤꾼은 이매 역할을 자주 맡았다. 이매는 발을 절룩거리며 어리숙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턱이 없어 통념에 벗어나 자유롭게 말하기는 하지만, 장애가 극대화되거나 과장되는 요소로 쓰이는 경우도 적잖지 않다. 탈춤에서 여성 인물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가 있는 인물이나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탈꾼들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 특히 여성 인물의 경우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있긴 하다. 예를 들어 할미 캐릭터는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드러내지만, 젊은 여성 인물의 경우 타락을 나타내기 위해 소모적으로 사용되는 부분이 있다. 현재 탈춤이 지닌 한계인 것 같다. 본래 탈춤의 기능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매는 장애가 있지만, 분명 비장애인과 다르게 자유로운 존재라는 의미도 같이 가지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공동체 안에서 당연히 목소리를 갖고 등장할 수 있지. 내가 느낀 이매는 정말 배포가 큰 사람이다. 이매가 앞섶을 풀어 헤치는 순간, 나도 용기가 더 생긴다. 

탈을 쓰는 행위는 이중적이다. 탈 뒤에 표정을 감추기도 하고, 동시에 하나의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춤을 추는 이와 춤을 지켜보는 이 사이에 암묵적으로 정한 약속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일단 탈을 쓰면 효과적이라고 해야 하나. 마법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다. 여기 이주원이라는 사람을 보면 그냥 딱 봐도 남자다. 근데 내가 할미탈을 쓰고 들어가면 사람들은 나를 그냥 할미라고 봐주는 거다. 짓궂은 어르신 관객들은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만져보기도 한다. 이렇게 관객의 긴장을 느슨하게 해주기도 하고, 춤꾼은 탈이 있어서 배역으로 금방 들어갈 수 있다. 

관객의 위치에서 탈춤을 봤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탈 너머의 표정이었다. 탈춤꾼은 탈로 표현된 인물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까? 괴리가 생길 때는 어떻게 할까? 웃는 표정 밖으로 울고 싶은 감정은 어떻게 전하는 걸까?

일단 어느 탈을 쓰든 실제 표정도 같은 감정을 연기한다. 웃기는 장면에서는 웃어 주고, 슬플 때는 슬픈 표정을 짓고. 다만 탈 안에 숨게 되면서 더 드러날 수 있는 게 있다. 탈춤이 양반 의식을 비판하는 것도 탈을 씀으로써 까발릴 수 있었다. 그러나 미묘한 게, 내가 아무리 백정탈, 할미탈에 숨는다 해도 이주원이라는 개인의 고유성은 드러난다는 것이다. 

할미탈을 쓴다고 다 똑같은 할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다른 움직임이 나오고, 연희가 달라진다. 이주원 탈춤꾼은 전통 탈춤과 창작 탈춤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춤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전통춤을 추면서는 붓으로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면서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마음이 된다. 계속 같은 걸 반복하면서 점점 선명해지는 느낌. 춤이 나에게 들어오도록 선명하게 붓질을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반면 창작 춤을 출 때는 훨씬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하고,  붓질은 하지 않게 된다. 어떤 춤을 추든 이주원은 결국 사라지지 않는다. 내 호흡과 내 몸이 가진 맛이 어디 안 간다. 한 춤꾼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무대 위에서 춤출 때 나는 사라지고 춤만 남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이 말씀이 내가 춤추며 생각하는 이상과 가까운 것 같다. 왜 산을 걷다 보면 걷기에 집중하느라 내가 사라질 때가 있지 않나. 힘든지도 모르고 걷지. 춤출 때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탈 뒤에 숨어도 탈춤꾼의 고유성까지는 감출 수 없는 이면을 가진 탈춤. 이 춤은 본래 마을에서 액운을 몰아내는 ‘벽사 의식’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탈춤은 마을이나 공동체에 생긴 문제를 공론화하고 마을의 화합을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 탈이라는 게 결국은 벗기 위해 쓰는 것이다. 화합을 이뤄내면 자연스럽게 벗게 되는 것. 

이주원 탈춤꾼이 이수한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말 그대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굿인 ‘별신굿’이었다. 한쪽에서 무당이 굿을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탈 광대들이 탈 판을 열었다. 별신굿 안에 탈놀이가 있으며 동시에 이 자체가 굿이기도 했다. 마을에 문제가 끊이지 않거나 민심이 흉흉해지면 양반들은 굿을 열었다. 안동 하회 마을은 계급이 확실히 나뉘는 지역이었다. 굿이 열릴 때가 아니면 꽹과리 소리가 일절 들리면 안 된다는 말도 전해진다.

대신 놀 때 확실하게 놀게 해준 거지. 양반들이 ‘나 욕해도 돼’ 이런 마음으로 잔치에 돈도 대고. 그러니 사람들이 재미나게 놀았다.  광대가 될 사람들을 뽑아서 합숙하며 먼저 했던 사람들에게 춤 사위를 배우고. 마을에 벌어진 일을 둘러싸고 누구 욕을 할지 함께 정하고. 통치하는 방법으로서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양반들이 머리가 좋구나 싶고(웃음). 움직임 자체에 있어서 풍물도 그렇고 탈춤도 그렇고 우리 춤은 오금을 쓰는 게 기본이다. 내 생각에는 신을 받을 때 뛰던 동작이 응축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전통춤은 굿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되어 왔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탈춤’은 실은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황해도는 봉산탈춤, 하고 ‘탈춤’이라 칭하지만,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는 산대놀이, 하고 ‘놀이’라고 불렀다. 부산에서는 ‘야류(野遊, 야유의 속음화)’라고 해서 ‘들 놀이’라 불렀고, 안동에서는 하회별신굿 ‘탈놀이’라 불렀다. 경남 지역에는 통양의 ‘오광대놀이’가 있고, 강릉에서는 ‘관노가면극’이 있다.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려온 탈춤은 환경과 시대상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모해왔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장단과 춤사위가 다 다르다. 황해도는 뛰는 춤사위가 많고, 경기는 깨끼춤이라고 해서 오밀조밀하다. 경남 지역은 춤이 느리고 크게 움직이며 유여하다. 황해도의 탈춤은 상업과 관계가 깊었다. 황해도의 봉산, 강령 지역 같은 곳은 중국과 교류할 때 사신이 머무는 도시였다. 자연스레 큰 장이 열리며 탈춤이 발달한 것이다. 송파산대놀이의 경우, 장이 서는 나루터에 열렸다. 자연스레 놀이로 자리 잡았다. 탈춤이 없는 지역도 있다. 전라도다. 봉기로 해소해서 그런가 봐. 조선 시대 때 경상도 지역이 관직을 많이 맡았다면 전라도는 주로 유배지였지 않나. 

탈춤은 생활 속의 춤이었다. 얼굴을 드러내고 할 수 없는 이야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탈을 쓰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 다루었다. 익명을 필요로 하는 정치적 결합이나 저항 의식, 마음을 묶고 풀어내는 작업이 탈춤을 통해 가능했다. 그랬기에 그 중심에 있는 탈이라는 도구는 신성시되어 왔다. 

보통 마을에서 탈춤을 추고 난 후에는 탈을 모두 소각했다. 춤을 추는 동안 액이 묻는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탈을 만든 후 탈 고사를 지내는 지역도 있다. 신을 받는다고 한다. 신이 내려오면 탈춤이 시작되고, 끝난 후 소각하는 대신 잘 씻고 옻칠을 하고 한지를 먹여서 다음 별신굿이 내릴 때까지 보관하는 지역도 있다. 

결국 무사히 잘 벗기 위해 쓰는 탈. 마스크를 벗기 위해 마스크를 잘 써야 하는 현재의 풍경과 겹쳐진다. 과거 탈춤은 돌림병이나 역병이 돌 때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추는 춤이기도 했다. 천하제일 공작소는 <탈춤으로 탈, 탈, 탈>이라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탈 나면 탈 춰서 탈잡자’라는 말과 함께. 

우리 탈이 가지고 있는 액막이 기능으로 또 다른 차원의 방역이라고 해야 하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요즘 드는 생각은 지역(로컬)이 되게 중요하구나 싶다. 작은 공동체가 단단해야 탈춤이 가지고 있는 색깔과 예술이 나오는 것 아닐까.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 의식주가 자급자족 되어야 더 건강한 사회가 될 것 같은데 지금은 기본 단위부터 해체되니까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우리 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탈춤은 축제의 요소가 크다. 과거에는 3박 4일 내리 탈춤을 추기도 했다. 탈춤꾼과 관객의 경계가 사라지는 판이 열리는 것이다. 

그 시간을 만들려면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가 있어야 관객과 공연자가 대등해지기 때문이다. 공연자도 유연하고, 관객도 열려 있다. 전문적인 연희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내 곁의 삶을 함께 살다가 공연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관객이 ‘이 정도는 나도 추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테니까. 들락날락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판이야말로 탈춤의 매력이다. 

이주원이 아닌 이매의 탈을 쓸 때 더 자유롭고 용기를 느낀다는 탈춤꾼. 이런 상황에 이매라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코로나19 시대를 함께 통과하고 있는 동료 시민에게. 이주원 탈춤꾼은 이매의 입술로 마지막 말을 전했다. 

“다 어디가부렀노. 극장이 텅 비었다. ‘코로 나’오는지 입으로 나오는지 뭐가 자꾸 나와 가지고 사람들 병을 옮긴단다. 별 꼬라지 다 본다.”

진행 ㅣ 보코, 소영
기록 ㅣ 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