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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작 – 만데 전래동화집

어렸을 때부터 동화와 신화를 좋아했다. 붉은 양장에 금색 글씨로 세계 곳곳의 이름이 새겨진 동화집이 집에 있었는데, 지금 떠올려봐도 아주 떨린다. 그 시절 가장 좋아하는 책들이었다. 침을 꼴깍 삼켜가며 다음 장을 넘기던 기억이 날만큼. 북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인도와 일본까지 모두 아주 다른 나라 이야기 같으면서도, 동시에 모두 비슷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숲 속의 호수에는 밤마다 요정들이 장난을 치고, 욕심 많은 왕은 도깨비에게 혼쭐이 나고, 아주 갖은 고생 끝에 자유의 몸이 되는 소녀의 이야기도 있었다. 동화책에서 발견한 마법의 세계는 분명 지금 내가 사는 세상과 달랐지만, 그렇다고 아주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 내 눈엔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꼭 펼쳐지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나라의 동화들을 만났지만, 아프리카 동화는 참 드물었다. 이 동화집을 시작하게 된건 내가 먼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서아프리카 만딩고 춤에 대해 공부하면서, 춤만큼 다양한 노래들을 알게 되었다. 오래된 노래들의 특징일까, 또는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비슷한 걸까. 불볕 같은 태양 아래 모래가 흩날리는 사막에서 ‘어디선가 꼭 있을법한’ 마법의 세계들, 용기와 사랑, 믿음과 우정을 불러일으키는 지혜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펼쳐진다.

이 만데 동화집에서 주로 살피려고 하는 건 ‘젤리’ 또는 ‘그리오’라 불리는 이들이 만든 노래와 이야기다. 이들의 음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특별하게 여겨졌다. 당시의 나라, ‘만데(Mand?)’에서는 자연의 불가사의한 힘을 ‘냐마(Nyama)’라 불렀다. ‘냐마’는 모든 것을 파괴할 힘과, 또 다시 새롭게 탄생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 힘을 이해하고, 인간 세상에 필요한 것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이들을 ‘냐마칼라(Nyamakala)’라고 불렀다. 여기엔 대장장이 ‘누무(Numu)’, 가죽장인 ‘가랑케(Garanke)’, 언어와 음악을 다루는 장인 ‘젤리(Jeli)’, 이슬람 경전 꾸란을 설파하는 연설자 ‘피네(Fune)’가 속했다. 젤리의 ‘음악’은 자연의 힘을 다뤄 만든 창조물이었다. 그리고 그 음악에는 인간과 세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무궁무진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이 나라에는 계급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왕과 농민이 속한 자유민 계급의 ‘오롱(Horon)’, 그리고 장인계급의 ‘냐마칼라’로 나뉘었다. 전통적으로 ‘젤리’는 냐마칼라로서 왕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하고, 옛 선조들의 역사를 그에게 전하거나, 왕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왕은 그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옷, 집을 주었는데, 그렇다고 왕이 위에 있고, 젤리가 아래에 있는 위계의 관계는 아니었다. 한 쪽이 없으면 다른 쪽이 존재하지 않는, 젤리가 없으면 왕 또한 힘을 잃는 그런 관계였다. 그래서 젤리의 음악에 ‘대가를 바치는 것’이지, ‘지불하는 것’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젤리는 왕 뿐만 아니라 ‘오롱’에 속하는 모든 보통 사람들의 잔치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하고, 역사를 이야기했다. 성년식,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은 인간이 태어나 겪는 가장 중요한 날들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우연히 마주치면, 젤리는 대뜸 경이로운 칭찬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말들과 이야기와 노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젤리들이 발견한 신비로운 세계, 현실과 자연 사이의 균형적인 관계는 무엇일까? 그들은 이 음악과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했을까?

젤리가 불러온 가장 오래되고 여전히 살아있는 노래들, 노래와 이야기를 오가는, 사랑과 용기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앞으로 들려드리려 한다. 이번 호의 제목은 ‘만데 전래동화집’인데, 앞서 만딩고 춤 안내서에도 밝혔지만, 여기 문화를 지칭하는 말은 지역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만데, 만뎅, 만딩고, 말링케, 만딩카 모두 맞는 말이다. 오직 한 가지만 옳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문화라고 말한 댄서가 떠오른다. 세상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그 다양함 자체가 진실이라고. 이 동화집에 가장 어울리는 말은 바로 젤리의 노래가 시작된 나라의 이름, 가장 오래된 이름인 ‘만데(Mand?)’일 것이다.

다음호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얼굴과 입이 아주 큰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다. 얼굴이 아주 커서 불의에 고개 숙이지 않고, 입이 아주 커서 진실을 말하기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 기대해주시라!

글 | 소영
그림 | 보코

Comments: 2

  • 먼지
    3 years ago

    만데 전래동화집이라니…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야금야금 읽고 싶어지는 글이에요!!! 냐마칼라 계급에는 몸을 쓰고, 음악과 언어를 다루고, 진리를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군요! 왕과 농민 그리고 장인계급으로 나뉜다니. 와 다음 이야기도 엄청 기다리고 있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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