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코로나 19와 춤추는 풍경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21화. 코로나 19와 춤추는 풍경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춤추는 풍경 역시 급속도로 변했다. 매주 같은 요일, 열댓 명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다가 시작되곤 했던 춤 워크샵에 이제는 다섯 손가락을 겨우 접을 만한 수의 사람들이 모인다. 코로나 19를 우려해 나오지 않는 이도 있고, 경제적 이유로 쉽게 마음을 낼 수 없는 이도 생겼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소수의 인원만 모일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이를 적극적으로 초대할 수 없는 조심스러움도 한몫했다. 물론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던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각자의 사정으로 잠시 춤의 세계와 멀어지면, 그 누군가의 자리는 이제 막 춤에 접속하고 싶어 하는 낯선 얼굴로 채워지곤 했다. 지금은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만이 모여 춤을 추고 있다.
공간이 북적거릴 적에는 타인의 움직임을 아주 가까이에서 감지했다. 손을 뻗을 때 가닿지 않을 만큼의 간격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일 때 저곳에서 이곳으로 움직이려는 이와 부딪치지 않도록 날쌔게 움직였다. 그런데도 서로의 몸이 스치거나, 아슬아슬하게 부딪침을 피하며 눈웃음을 나누는 건 예삿일이었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간격을 벌려 서로의 거리를 유지한다. 춤추기 전 안녕, 춤추고 난 후 잘 가, 인사하며 나누던 포옹은 그 옛날 옛적 사람들은 그랬다 카더라 통신처럼 과거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듯 하다.
소음과 접촉이 끌어 올리던 세차고 빠른 에너지가 휘발된 자리에서 다시 춤을 시작한다. 늘 그랬듯 둥글게 모여 서로를 마주한 채로.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스크로 인해 모두의 표정을 온전히 살피고 나눌 수 없다는 점. 처음에는 마스크를 쓴 채 호흡을 일정 속도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후-하.
계속 이렇게 춤을 출 수 있을까?
싶었던 게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흐르자 어느덧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습관적으로 춤추는 이의 마스크 너머 표정을 상상하곤 했는데, 날이 거듭될수록 씰룩씰룩 움직이는 눈썹과 눈꼬리의 모양만으로 알아차리는 요령이 생겼다. 아, 지금은 크게 웃고 있구나. 신이 났구나. 뭔가 잘 안 돼서 어렵구나. 답답하구나. 살짝 무안했구나.
일상의 활동 반경이 제약되고 타인과의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서, 춤추는 시간은 나를 다시 만나고 타인과 만남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어딘가로 뻗어 나가기보단 안으로 응축되고 침전되었던 기운을 살펴본다. 연습 공간의 문을 열고 오는 이들 역시 비슷한 기운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둥글게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억지로 기운을 끌어 올리려 애쓰진 않는다. 대신 기운을 바꾼다. 아주 느리고 천천히 고르게 헤아리면서.
춤추는 동안 서서히 공간에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른다. 훌쩍 가볍게 뛰는 동안 응어리진 무거운 바위 같은 것,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돌덩이가 잘게 부서진다. 빠르게 몸을 흔들며 부서진 파편을 털어 낸다. 나의 기운을 바꾸는 동안 주변의 기운도 미세하게 달라져 있다. 각자의 작은 떨림이 서로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느끼며 또 다른 모양의 떨림으로 바꾸어낸다.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판 위를 달리듯 땅을 미끄러져 내달린다. 용암에 데인 듯 발바닥이 뜨겁게 타오른다. 몸의 표면이 아닌 깊숙한 곳의 움직임과 힘과 속도를 찾아본다. 내 옆에 춤추는 이가 자신의 깊숙한 곳을 발견해 내는 과정을 목도한다. 함께 같은 박자로, 다른 몸짓으로, 공중을 유영하듯 가로지른다.
땀을 한 바가지 실컷 흘린 후 다시 마주 보고 둥글게 앉는다. 간격을 띄워 서로의 거리를 일정 수준 유지한 채로. 스트레칭을 이끌던 안무가가 갑작스레 자신의 정면에 있는 이와 눈을 맞춰 보라고 했다. 그리고선 두 팔을 뻗어 포옹하듯 안아보라고 넌지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와 나 사이에는 텅 빈 동그라미 모양의 공간이 있었는데, 일순간 동그라미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두 팔을 벌리고 나는 그를 꼬옥 안았다. 멀찌감치 앉아 서로를 만지는 대신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두 팔을 서로를 향해 간절히 뻗으면서. 눈동자 포옹. 별것 아닌 단순한 동작이 마음을 툭 건드린다. 마음속 오래 품고 있던 풍선이 아슬아슬 터질락 말락. 흔들리는 눈동자에 울음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더 힘을 줘 본다.
함께 춤을 추는 동안 서로의 일부분을 내어준다. 동시에 받는다. 연결되었다는 감각이 주는 안정감, 누군가와의 접촉과 그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보고 살피는 행위. 크고도 참 크다. 춤추기 전 안녕, 춤추고 난 후 잘 가, 인사하며 나누는 깊은 포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글 |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