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 Suspend isse ultrices hendrerit nunc vitae vel a sodales. Ac lectus vel risus suscipit venenatis.

Amazing home presentations Creating and building brands

Projects Gallery

Search

28화. 몸과 의식의 연결에 관해 –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자발적인 의지로 배우기 시작한 영역 중 가장 오랫동안 마음을 빼앗긴 두 세계가 있다. 이 코너에서 언급하기에 한 가지는 너무 뻔한가도 싶지만. 바로 요가와 춤이다. 남은 평생 삶의 중심에 가까이 두고 싶은 세계이기도 하다. 멀고도 가까운 두 세계를 부단히 오가다 보면 전과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쓰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척추를 곧게 세우고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몇 년 전 요가 수련을 시작한 이래 가급적 빼먹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다. 온몸의 긴장을 풀고 눈을 가만히 감는다. 지금, 이 순간 흐르는 호흡에 귀를 기울여 본다. 몸은 아무런 미동이 없는 가운데, 생각은 빛과 같은 속도로 쏜살같이 흐른다. 오늘따라 어깨가 왜 이리 뻐근하지. 이따 점심은 뭐 먹을까. 아, 맞다. 어제 엄마한테 전화한다는 걸 까먹었네. 몸의 관찰에서 시작해 소소한 일상의 이슈가 지나간다.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일들이 참참이 떠오를 때도 있다. 만화책을 처음 빌려줬던 그 애 이름이 뭐였더라. 얼굴이 희고 고운 애였는데. 간밤에 꾼 꿈은 무거웠어. 어딘가를 헤맸던 것 같은데 그곳이 어디였을까. 의식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맥락 없이 흐른다. 만약 의식이 몸의 속도대로만 흘러 준다면 내면의 평화는 아마 손쉽게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따위의 헛된 상상을 하다 보면 10분이 지나가 있다. 명상하는 동안 침묵하는 몸과 소란스럽던 의식의 관계를 더듬거린다.

아침의 명상을 빼먹은 날에는 상추와 콩나물을 씻다 말고, 책상 앞에 거북이처럼 목을 쭈욱 빼고 타다다다 타자를 치다 말고, 불현듯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중요한 걸 잊은 사람처럼 아차차 하면서. 잠시 바르게 서서, 혹은 앉은 자세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는다. 가만히 있는데도 손가락과 팔과 다리와 눈꺼풀과 척추가 꿈틀거린다. 몸을 본격적으로 움직이거나 이동하기도 전에 생각이 끼어든다. 이걸 먼저 할까, 저기에 먼저 갈까. 판단이라는 것은 도통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식과 의식 사이로 습자지처럼 흠뻑 젖은 무의식이 자리한다. 어떤 기운을 감지하며 오늘의 취향을 정한다. 선뜻 몸이 먼저 나서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춤추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5월의 어느날 열린 만딩고 춤 워크숍에는 새로운 참여자가 많았다. 엠마 안무가는 처음 춤을 추는 이들을 위해 시작하기 전 만딩고 춤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했다. 나도 덩달아 초심자의 마음으로 함께 되새겨본다. 가슴과 골반과 척추의 움직임을 많이 쓰는 춤. 가슴은 활짝 열고, 골반의 바운스를 기억하며, 척추는 부드러운 뱀처럼 움직이기. 골반의 움직임이 만딩고 문화에서 기쁨(joy)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있자니 요가를 공부하며 배웠던 것도 떠오른다. 

요가에서는 골반과 가까운 꼬리뼈 근처에 ‘스와디스타나’라는 차크라가 위치해있다. 차크라는 신체 내부에 위치한 정묘한 에너지의 소용돌이로 알려져 있는데, 몹시 거칠게 요약하자면 일종의 신체와 영혼을 이어주는 에너지 연결점 역할을 한다. 전통적인 체계에서 보자면 차크라는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 척추를 따라 존재한다.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감각적 기쁨, 성적 에너지와 관련이 깊다. 신체 내부의 즐거움, 무의식 속 기쁨을 살피는 작업 모두 골반을 지난다는 공통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춤이 시작되면 또렷하던 생각과 의식은 슬금슬금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한다.

가벼운 움직임으로 몸을 데울 때만 하더라도, 여전히 생각과 판단이 몸에 장착되어 있다. 부드럽게 유영하는 듯한 춤, 빠른 리듬을 끌어당기는 춤, 어떤 열망을 추동하는 춤, 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표현해내는 몸, 그 몸의 가슴과 척추와 골반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을 관찰하고 몸에 담기 위해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춤만 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춤 뿐이라서, 풍덩 하고 춤 안에 나를 던진다. 리듬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안무를 반복적으로 익히다보면, 몸과 의식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것들이 빠져나간다. 도통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슬며시. 몸과 의식이 같은 무게가 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그 찰나를 춤추고 난 직후 잠깐 맛 본다. 아, 산뜻해. 

요가와 춤은 어딘가 닮아 있는데 닮은 만큼 서로의 거리가 먼 세계 같다. 요가를 수련하는 동안 몸은 한 가지 자세 안에 머무른다. 의식은 역동적으로 흐른다. 에너지는 미세하게 달라진다. 춤을 추는 동안 몸은 끝없이 움직인다. 의식은 무한대로 흐른다. 에너지는 빠른 속도로 변모한다. 두 과정 모두 몸과 의식의 연결을 가장 밀도 높은 방식으로, 온몸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작 그 과정 안에서 몸과 의식은 무엇도 자각하지 못한다. 그저 머물다가 흐른다. 모든 것을 마치고 나면, 조금 달라져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글 | 보코

No Comments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