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강 약 중간 약 –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22화. 강 약 중간 약 


나의 춤은 어딘가에 도착했다. 도착했나? 아무튼 머물고 있다. 마냥 낯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능숙하지도 않고,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새로운 어딘가에. 아닌가? 그건 과연 ‘나의 춤’이라고 불릴만한 무엇일까? 처음 시작할 때는 그곳이 어디든 가닿기만 한다면, 눈도 밝아지고 손도 익어서 모든 게 자연스러워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눈부시고 서툴다.

‘나’라는 단어와 ‘춤’이라는 단어가 나란히 놓였을 때 일어나는 파장은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내 안에는 몸이 달아 들뜬 나와 수줍고 침착한 내가 뒤범벅이다. 파동은 위로 높게 솟구친 마루와 밑으로 깊게 침잠한 골을 지난다. 파동이 지나는 길이 요즘은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상태이다. 상태에 머무는 걸 도착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은 지난 한 달간 몸과 마음을 다해 춤을 추지 못했다. 몸과 마음은 춤의 세계 대신 자주 나락으로 빠졌다. 위로 높게 솟구친 마루를 춤이라 보면, 깊게 침잠한 골은 반복적으로 헝클어지고 어긋나는 일상의 어느 곳이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춤추기 위해서는 기운이 필요하다. 기운을 내는 것은 몸을 습관적으로 단련하는 일에 가깝다. 단련을 위한 준비 운동은 이런 것들이다. 충분한 양의 햇빛을 쐬며 걷기. 주어진 일을 미루지 않고 하기. 할 수 있는 한 서두르지 않고 하루분의 식사를 챙기기. 잠깐이라도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의식을 숨에 집중하기. 이 중 한두 가지가 소홀해지면 나머지 역시 도미노처럼 와르르 눈 깜짝할 새에 무너지고 만다. 일으켜 세우는데에도 기운이 필요하기에, 한동안 몸과 마음은 어둡고 무겁고 무력한 것에 기운다.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는데, 무사히 건져 올려지면 다시 춤을 추러 나선다. 

평소에 가던 연습 시간과 다른 시간대의 워크숍에 참여했다. 몇 주째 춤추지 못했다는 찜찜함과 답답함으로 조각난 마음을 기워서 힘찬 발걸음으로 겨우 바꿔낸 날이었다. 새로운 낯빛의 이들이 연하고 맑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날의 연습은 악센트가 돋보이는 춤이었다. 악센트. 음절이 아닌 춤에도 높낮이와 세기가 있다. 강세를 두는 곳을 포착하는 건 어렵다. 박자가 단조롭고 익숙할 때만 겨우 늦지 않게 도달한다. 예를 들면 딱, 딱, 딱, 딱, 정박자로 떨어지거나 우리 민족에게 익숙한 강 약 중간 약이라던가. 제때 도달하면 짜릿함은 증폭된다. 하지만 딱, 딱, 딱, 딱은 춤을 처음 배우거나 새로운 안무를 익힐 때 사용되는 신호일 뿐 춤이란 것은 본래 딱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분절적이지 않고 연속적인 장르다. 딱 따닥 다다다다닥 닥딱 일 때도 있고 가아아아아아강강이거나 강앙아아앙강앙강앙 일 때도 있다. 이게 다 무슨 말인고 하는 박자를 세는 일이 춤추는 데 있어서 하나도 보람차지 않은 행위라는 의미이다. 강세를 포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박자를 잘 헤아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박자를 비롯한 높낮이와 강약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춤은 확실히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이 받아들이는 예술이라는 걸 실감한다. 높고 낮음, 강하고 약함이 몸으로 표현될 때 여태껏 만나본 적 없는 높낮이와 세기를 접한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낮음이 있고 뭉툭하고 무거운 높음도 있다. 순두부처럼 몽실몽실 부드럽고 매끈한 강함도 있고, 거대한 바위같이 거칠고 웅장하고 딱딱한 약함도 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높낮이와 세기가 혼합된 춤에 온전히 몸과 마음을 다하는 동안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하던 의식은 잠시 멈춘다. 나락에서 나를 길어 올리기 위해 떠올리던 잡다한 생각들. 집에 소금이 떨어졌던가. 빨래를 오늘 돌렸어야 하는데. 아 맞다, 그 책은 내일까지 반납이지.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에 기울어져 있던  생각과 생각에 꼬리를 물던 생각들이 일시 정지되고, 그 빈 자리에는 내가 있다. 전에 없던 강과 약을 마주한 내가. 부드럽고 매끈한 강함과 거칠고 웅장한 약함을 몸으로 익힌 후, 일상으로 맞이할 준비를 한다. 매일 같이 늘 그렇듯 눈부시고 서툰 몸짓으로. 


글 ｜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