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 Suspend isse ultrices hendrerit nunc vitae vel a sodales. Ac lectus vel risus suscipit venenatis.

Amazing home presentations Creating and building brands

Projects Gallery

Search

24화. 소녀와 소년의 춤, 그리고 봄 –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24화. 소녀와 소년의 춤, 그리고 봄

올해 봄은 일주일에 두 번씩 각기 다른 시간대에 다른 안무가에게 만뎅 춤을 배우며 보냈다. 수요일 저녁의 지하 스튜디오에서는 만쟈니(Mandiani) 리듬을 바탕으로 몸 탐구와 안무 연습이 진행됐고, 일요일 오후의 창이 큰 스튜디오에서는 소코(Sökö) 리듬을 기본에 둔 몸풀기와 춤을 배웠다. 춤춘 다음 날 근육통에 소스라치며 깨어나던 몸이 점차 부드러워질 때 쯤 다시 춤추러 가는 날이 이어졌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리듬 이름이 곧 춤의 이름이기도 하다. 만쟈니는 ‘기니 위 지역(Upper guinea)’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진 잔치의 춤이자, 소녀의 춤이다. ‘만딩고 춤 안내서’에 의하면 보름달이 뜰 때 언덕배기에서 소녀들이 모여 기쁨과 아름다움을 뽐내며 추는 춤이었다고 한다. (만쟈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만딩고 춤 안내서> 8화 참고) 반면, 소코는 소년들의 춤이다. 소코는 기니 파라나(Faranah) 지역의 말린케(Malinke), 코만코(Komank) 민족의 리듬으로 성인식과 관련된 춤이다. 성인식이 열리기 석 달 전, 결정된 날짜를 마을의 친척과 이웃에게 공유하며 추는 춤으로 알려져 있다. 

땅 위의 소녀와 소년은 에너지를 한창 발산 중일 테다. 그래서인지 만쟈니와 소코 모두 땅을 도움닫기 삼아 가볍게 공중으로 치솟거나  뛰기 같은 동작이 많다. 팔을 길게 쭉쭉 뻗고 빠르게 회전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움직임도 닮았다. 만쟈니와 소코를 추는 동안, 리듬과 춤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에너지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느껴진다. 솟구치고 타오르고 넘실거리는 쪽을 향해. 

소녀와 소년은 땅을 엉금엉금 기며 첫발을 내딛던 아기의 시절도, 땅 위를 요리조리 쏜살같이 내달리며 질주하던 어린이의 시절도 통과했다. 이제는 땅을 전보다 더 빠르게 구르다가도 부드럽게 멈출 줄도 안다. 아직 마주쳐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형형히 빛나는 눈동자를 감추지 않은 채로. 주변의 공기는 소녀와 소년 덕분에 두근거림으로 가득 찬다. 에너지는 마음껏 발산해도 끝없이 흐른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저 너머를 향해 금방이라도, 단숨에 하늘로 도약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소녀와 소년의 춤을 배우는 동안, 내가 통과한 소녀와 소년 시절의 에너지를 상기해본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은 모서리가 깎이고 베이고 무뎌져 둥그레졌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 없이 평평했단 내면의 한 축은 어느 날 불쑥 솟아올라 점점 뾰족해지고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사소하고 작은 사건에도 크게 감탄하거나 깊게 절망하던 나는 어디 있는가. 여전히 여기 있다. 잊고 있거나, 밑바닥에 가라앉거나, 의도치 않게 감추거나, 믿지 않았을 뿐. 그런 나를 꺼내 마주한다. 춤을 추면서. 

물론, 춤을 배우는 동안에는 이런 상상이 끼어들 겨를이 거의 없다. 이 동작 다음 저 동작, 이 동작의 디테일, 저 동작에 어울리는 기운과 표현을 찾기 위해 애쓰느라 분주하기 때문이다. 마스크 안이 땀방울과 거친 호흡으로 꽉 차고, 쿵쿵 뛰다 못해 쿵더러러러러러 날뛰는 심장 박동이 진정 될 때쯤 겨우 알아차린다. 아, 이런 에너지로 차 있었구나. 고개를 들어 옆 사람을 바라본다. 마스크에 가려진 표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리긴 어렵지만, 분명 눈빛만은 밝고 환하게 빛나고 있다. 


글 |보코 

No Comments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