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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손 내밀기 – 우리 몸 관찰 일기

3화. 손 내밀기

세상에 태어나 모든 것이 처음인 아기는 언제부터 재미라는 걸 느낄까. 먹고 자는 것이 전부였던 상태를 지나, 어느덧 호기심과 두려움을 오가며 경험을 하나둘 쌓더니, 꽤 재밌어하는 행동들이 여러 개 생겼다. 눈은 반짝반짝, 입은 헤벌쭉, 팔과 다리는 신이 나서 파닥파닥! 손 내밀기, 물건 떨어뜨리기, 가방 속 물건 꺼내기가 이번 달에 가장 재미 붙이며 하는 행동이다. 그중 내가 재밌게 바라본 아이의 행동은 바로 ‘손 내밀기’다.  

손바닥을 활짝 편 채 상체를 숙이며 앞으로 팔을 쭉 내민다.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만나서 반갑다고 안녕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고, 활짝 핀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쭉 내민 손에 뭔가를 쥐여주기도 한다. 때로 아기는 자신의 손을 내밀며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되려 관찰하는 듯 흥미로운 표정으로 기다리기도 한다.  

길거리를 지날 땐 사람들을 쓱 그저 쳐다보고 마는데, 신기하게 버스나 지하철, 기차를 타면 앞사람 뒷사람 옆사람에게 곧장 손을 쭉쭉 내민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아기에겐 그야말로 만남의 광장이 열리는 듯하다. 아기가 먼저 손을 흔들고 눈을 맞추면서 엄마 아빠도 덩달아 다른 승객들과 웃음을 짓고, 안녕하세요 잘가세요 인사를 한다. 

아기가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에게도 이 상황이 조금씩 재밌어졌다. 그동안 지하철과 버스는 주변에 주의를 최대한 거두고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제 갈 길을 가는 도시의 풍경이었는데, 요즘엔 아주 작고 일시적인 커뮤니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의자 사이로 뒷좌석 승객과 눈을 맞추며 까꿍 놀이도 하고, 지하철 옆에 앉은 승객의 손목을 툭 잡는다. 기분이 좋을 땐 높은음으로 ‘응?’하며 물어보듯 웃기도 한다. 상대방이 쳐다보지 않으면 허리를 요리조리 꺾고,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어찌나 쳐다보는지. 아기에겐 이 모든 만남이 어쩌면 놀이일 것이다.  

처음에 아기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그야말로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서면서 아이의 반응부터 주변의 시선까지 내 몸을 콕콕 찌르는 듯했다. 아기의 손짓에 무관심보단 웃음으로 화답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며 우리도 편안해졌다. 특히 중년, 노년 여성들의 공감대는 대단했다. 진짜 가족들처럼 웃어주고 장난치고 짐을 들어주고 아기를 대신 안아 주었다. 불쑥 내미는 손과 함께 여럿 도움을 받으며, 내가 두른 경계의 벽도 서서히 유연해졌다.  

연일 후덥지근해지는 날씨에 만일의 사태(기저귀 갈다 옷을 버린다거나, 먹다가 토하거나, 이동 중에 밥시간이 오거나 등)를 대비한 묵직한 가방을 메고 서로의 배를 착 맞댄 채 올 여름 정말 팥죽같이 땀 흘리며 걸었다. 점점 아기가 무거워지며, 유아차를 끌고 아기 띠를 예비로 매고 집을 나서는 날이 늘었다. 하지만 혼자 유아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참 부담스럽다. 엘리베이터로 지하철역 환승하기는 돌고 돌고 또 도는 비효율적 동선이 많다. 지하철과 승강장의 틈이 커 바퀴가 빠질 것 같은 곳도 있고, 여차하면 유아차와 아기를 모두 안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버스는 아직 시도도 못 해봤다. 휠체어와 유아차 로고가 찍힌 저상버스는 매일 보는데, 도로와 버스의 틈을 이어주는 리프트가 내려오는 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교통약자임을 매일 실감하지만, 시간이 돈이고 칼인 이 서울에서 눈총받는 게 부담스러워 유아차를 이용할 땐 버스는 항상 예외다. 올해부터 지원된다는 임산부 교통비 대신 마음 편히 버스의 리프트를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는 교통약자의 권리가 지원되면 좋겠다.  

엘리베이터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아기를 데리고 있거나 수동이나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 장을 가득 봐 꽉 찬 구루마를 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다. 대부분 홀로 이동하고, 바퀴와 장치들이 내 몸처럼 가볍지도 잘 움직이지도 않아 많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모두가 빨리 스쳐 가는 가운데 바쁘게 내 갈 길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각자도생의 태도가 공기 같은 이 메가시티에서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이 컸다. 뭉게뭉게 불어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 대신 지금 연두색 새잎처럼 불쑥 내민 아기의 손을 더 바라보아야겠다. 낯선 이들과 순간순간 피어났던 인사와 안부, 주고받은 고마움 등이 떠오른다. 잠깐의 따뜻한 접촉이 지금 우리 몸에 어떻게 남아있는지도. 불쑥 내민 손이 열어 낼 미래의 공간에서 계속해서 온기를 마주할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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