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외국인과 거주자 – 재난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춤
지난 4월 16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외국인 예술인 비자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 다녀왔다. 특히 코로나로 공연의 기회가 급감한 상황에서, 예술인 비자로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각종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고, ‘예술가’로서 받을 수 있는 지원도 없다. 소속된 회사의 결정에 따라 체류 자체가 좌지우지되기 쉬운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은 현재 어떤 상황을 보내고 있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겪어온 문제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까지 비자 문제는 이주노동자 또는 노동문제 관련 기관에서 주로 다뤄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문화예술 중심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다루게 됐다. ‘이제서야’ 열렸지만 ‘지금이라도’ 열리게 되어 다행이었다. 외국인 예술가의 체류 자격 문제부터 창작 환경과 기반까지 외국인 예술인 당사자와 관련 전문가들의 경험과 의견을 폭넓게 모으고, 법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자리였다.
기존 일반적인 고용계약과 달리 프리랜서 계약이 많고, 최저임금의 규정에 들어맞지 않는 일이 많은 ‘예술 노동’은 ‘예술’이라는 일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다루기 어려운 문제였다. 또, 연극, 무용, 음악 등 기초예술 분야는 단순히 시장 가치로만 판단하지 않고 사회 통합이나 문화 발전에 공적으로 기여하는 부분도 크기 때문에 공적 지원이 중요한 분야다. 그래서 더욱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참여가 중요했던 부분이다.
코로나로 직접 참석은 제한되고, 현장 공청회가 페이스북, 유튜브 라이브방송으로 송출되었다. 영어 동시통역이 이뤄진 유튜브 댓글 창이 가장 뜨거웠다. 배우, 교수, 모델, 시각 예술가 등 다양한 직업의 외국인 예술가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계약 문제부터 코로나 시대 속 복지 문제까지 지금까지 ‘말 못 했던’ 고충들이 쏟아져 나왔다. 댓글 창에서는 예고 없이 비자를 취소하고, 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도 있고, 비자 자격을 변경하려면 해외에 다녀와야 하는데, 코로나로 이동이 막히며 오도 가도 못 하는 이도 있었다. 예술 관련 일이 줄어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법적으론 불법에 해당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 듯 보였지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전반적으로 이들은 이렇게 안전하고 공개적으로 말할 공간이 없었다고 했다.
나도 약 7년간 외국인 예술가들과 가까이 일하며, 비자를 신청하고 연장하는 일들을 해왔다. 나 또한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익숙했다. 안정적인 고용계약서와 공연추천서가 있음에도 안심한 적은 없었다. 단순히 일을 할 수 있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느냐에 따라 이 사람이 이 나라에 있을 수 있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삶을 계획하고 꿈꾸기에 적합하지 않은 정책과 태도 앞에서 자신의 노동권과 인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보다, 비자 취소에 대한 두려움에 더 망설이게 되는 것이었다.
한 때, 지인 중 한 명이 억울하게 비자가 취소되어 이를 다시 원래 비자로 복구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가능한 많은 증거를 모으며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당시 출입국 실무자는 나와 해당 예술가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책상 앞에 앉혀놓고,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우리 둘에게 같은 질문을 서너 번씩 반복하며 우리가 주장하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취조’했다. 마치 내가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심문하는 고압적인 태도는 잊혀지지 않는다. 급기야 그날 오후 사무실에서 바로 이 예술가가 살고 있는 집과 일하는 회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 또한 영어가 유창하지도 않으면서, 통역 또한 부르지 않았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온 경우, 통역자가 따로 없다면 이 일들을 모두 혼자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소속 회사 없이 프리랜서로 합법적으로 수익 활동을 할 수 있는 외국인 예술가는 한국에 거의 없다. 관광비자로 수익 활동은 불법이며, 오직 ‘비영리’로 활동해야 하거나, 예술인 비자를 받기 위해선 6개월에서 2년 이하의 고용 계약과 공연 계약이 동시에 필요하다. 예술 노동이 대부분 단기계약, 프리랜서 계약임을 고려했을 때, 현재의 체류 자격 기준은 매우 좁다. 공청회 때 새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에서 4년 동안 예술 관련 학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 경우도 쉽게 예술인 비자를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2019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약 7천 명의 예술계 외국인 유학생 중 오직 14명만이 받았다고 한다.
창작지원에 관해서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자는 항상 지원기준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올해 4월부터 최초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지원사업에 드디어 외국인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자격 기준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활동증명을 마친 사람만 가능했다. 예술 활동증명 기준을 살펴보니, 오직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이거나 난민, 영주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예술인 비자로 한국에 들어와도 ‘예술가’로서 지원받지는 못하는 것이다.
공청회 방송 댓글에서 네덜란드에 거주했던 이는 비자 체류 자격없이 거주자라면 누구나 예술지원 자격이 주어진다고 사례를 말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독일은 국적에 상관없이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그에 맞는 지원을 제공했다. 아프리카 예술가를 지원하는 어느 재단은 아프리카 출신이라고 해도, 3년 이상 거주하고 있지 않다면 지원에서 제외된다. 이민의 역사가 오랜 외국과 직접적으로 법을 비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은 누가 보고, 누구에게 영향을 끼치는가? 바로 지금 여기 내 몸을 맞대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외국인과 있으며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언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냐? 라는 질문이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나라를 떠나 타국에 살고 있는 이에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법적으로 문제를 겪다 보면, 한국의 법 역시 외국인을 언제나 ‘다시 돌아가야 할’ 존재로 본다는 점이다.
유럽의 어느 공항에서 ‘방문자’와 ‘거주자’로 나누어진 입국심사대 이름을 보고, 작은 위안을 느꼈다는 어느 신문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은 거주 구분이 아닌 국적으로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분하고 있다. 안정적으로 거주하고 일할 수 있을 때의 활동과 태도는 내가 ‘영원한 방문자’일 때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2년마다 동네와 집을 바꿔야 하는 서울살이를 경험하며, 최소 5년이라도 길게 살 수 있는 집이 생긴다면 나는 그 동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과는 다른 애정과 책임이 싹트지 않을까. 자신의 첫 번째 관객은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나의 외국인 남편과 배우를 지망하며 대학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오래도록 그들의 예술을 여기에서 만나고 싶다.
글 | 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