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춤추러 가야 하는데 –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27화. 춤추러 가야 하는데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이라는 연재는 많은 것에 기대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몿진’이라는 춤 웹진과는 운명 공동체적 성격을 가진 코너로, 만약 ‘몿진’이 폐간된다면 한순간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다. (늘 사려깊은 동료에게… 이 자리를 빌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보코라는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 평생에 걸쳐 춤을 탐험하고 그 여정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보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간혹 춤을 기록하기 위해 연재를 하는 것인지, 이 코너를 유지하기 위해 춤을 추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긴 하지만.
춤과 나의 관계는 한방향으로 흐른다. 춤은 나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몸의 상태는 어떠한지,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일절 궁금해하지 않는다. 춤은 내가 누구든 무심하다. 관심이 솟구치고 안달나는 쪽은 언제나 내 쪽이다. 나에 관해서도, 춤에 관해서도. 나는 어떤 존재인지, 몸의 상태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욕망의 안테나가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아차리고 싶어 닳고 닳는다.
닳는 이의 마음은 길지 않은 시간 홀로 간직해 온 짝사랑과 닮았다. 평생을 모르고 살다가 우연히 마주쳐 짝-하고 마음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혼자 화들짝 놀라고 동동 쩔쩔매다가 나도 모르는 새에 뭉근하게 빠져들었다. 마음을 쏟는 동안, 짝사랑의 상대는 어떤 심산인지 알 길이 없다. 내 것이 아니니까 당연하지. 나에게 어디까지 얼마나 보여줄까. 오늘은 또 얼마나 새롭고 떨릴까. 예측 불허한 전개 속에서 마음은 바짝 졸인 건포도처럼 새까매진다. 사랑에 빠졌다는 걸 인정한 직후엔 분명 산뜻하고 선명하고 날아갈 것 같았는데, 어떤 날은 에라 모르겠다 싶더니, 이제 더는 마음을 한곳에 오래두기 어렵다. 이쯤에서 그만할까 싶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짧은 여름 춤 방학에 이어 긴 겨울 춤 방학을 가졌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생일 선물로 짝꿍에게 피아노 교습소 수강권을 선물 받았다. 무려 4회차! 몇 년 전 우연히 듣게 되어 마음 한 켠을 내어 준 연주곡이 있었는데, 마침 독학의 한계를 부닥친 터였다. 총 13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곡인데, 1번 곡 하나를 손가락이 기억하게 만드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렸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가는 피아노 교습소로 향하는 길은 새롭고 떨렸다. 새로운 짝사랑을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처음 만난 피아노 교습소 선생님은 다정한 눈빛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하시고 나는 약간 낯을 가리며 이런저런 대답을 했는데,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피아노가 갑자기 콧잔등 앞으로 둥 하고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럼 한 번 쳐 볼까요?” 나는 얼떨결에 손가락을 덜덜 떨며 건반 위에 올렸다. 큰 숨을 마시고 후-우 길게 내뱉은 후 더듬더듬 건반을 눌렀다. 두 번째 날에 선생님은 건반 위를 자유롭게 노니는 자신의 손 위에 나의 손을 포갰다. “여기에서 저기로 갈 땐 이런 느낌이에요.” 세 번째 날, 선생님은 나의 어깨 위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나는 비로소 손가락의 힘을 풀 수 있었다. 네 번째 날에 선생님은 “그동안 잘 몰라서 그랬지, 마음에 음악이 있네요.” 했다. 마음이 크게 일렁였다. 커다란 파도가 한 번 다녀갔고, 멀리서 온 바람에 파르르 콩밭이 흔들리는 사이 새로운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춤추러 갈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의 안내에 귀 기울이며 피아노 연주를 연습하는 동안 내 마음은 온통 콩밭에 있었던 것이다. 춤을 배우러 가던 첫날의 발걸음, 이 춤에서 저 춤으로 건너가던 날, ‘힘 빼고’라는 말을 수차례 듣던 날(‘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20화 참고), 내 안에 있던 춤을 처음으로 발견하던 날, 그날들로 돌아가 있었다.
어쩌면 이런 시간에 대해 누군가는 권태기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너무 사랑해서 어쩔 수 없어서 그러다 자연스레 멀어지는 마음. 권태기를 극복할 힘을 내 안에서 찾지 못해 나는 한 눈을 팔기로 했던 것이다. 조건도 맞았겠다, 준비도 되었겠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더욱 진지한 태도로 피아노 연습에 임했다. 피아노곡에 마음을 빼앗긴 것 역시 춤에 마음을 빼앗겼던 순간과 다르지 않았다. 춤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연습해봤던 터라, 나는 평생에 걸쳐 느리더라도 꾸준히 연마해 13곡을 완성하기로 마음 먹었다. 뒤늦게 발견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속수무책 되어버린다. 단기간 고효율을 목표로 삼았다가는 고꾸라진다는 걸 반복적으로 경험했기에, 긴 호흡의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아름다운 순간을 오래 지속하고 생에 가까이 두기 위해. 그리하여 춤추는 할머니와 요가하는 할머니와 타로보는 할머니에 더해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미래의 풍경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던 그 때, 옛 사랑이 떠오르고 만 것이다. 아아, 옛 사랑을 원없이 사랑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없구나!
자체 춤 방학을 마치고 돌아간 스튜디오에는 새로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춤추기 위해 매주 올라오는 사람도 있었고, 춤추러 잠시 멀리 떠난 애인을 떠올리며 춤추는 사람도 있었고, 제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듯 춤추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춤 방학 전 연습하던 만쟈니 리듬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춤추는 게 지겨웠던 것은 아니다. 춤에 관한 기록에 지친 것도 아니었고. 탐구하고 궁리하고 고심해 볼 만한 것들이 춤의 세계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거나, 누군가 먼저 발견한 것이 온전히 주목받지 못했거나, 혹은 각자가 발견한 것을 작게 접고 쫙 펼치고 뭉쳐 굴리는 중일 뿐. 두 계절의 춤 방학 동안 나를 지나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기력도, 과부하도, 매너리즘도 아닌 어떤 것. 짝-사랑하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마음처럼 명명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것.
‘춤을 춰야겠다’는 생각이나 ‘춤을 추고 싶다’는 욕구가 앞장서기 전에, 리듬이 먼저 나를 추동한다. 리듬이 울리자 몸이 절로 들썩인다. 그래, 이거였지! 거리 두는 동안 잊고 있던 감각, 어느새 내 몸에 베어 있던 감각이 새롭게 깨어난다. 춤에 대한 내 사랑도 변함없이 여기 있었다. 첫 마음 그대로. 그나저나 짝-사랑은 무엇으로 유지되는 것일까. 아시는 분은 연락바랍니다.
글 |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