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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다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보코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7화.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다



집 화장실 문에는 포스터가 한 장 붙어있다. 2017년 가을에 인상 깊게 본 공연의 포스터이다. 어쩌다 보니 널찍한 화장실 문에 붙여둬서 쉬야 하러 갈 때도 보고 똥 누러 갈 때도 보고 씻으러 갈 때도 본다. 포스터 오른쪽에는 한 무용수가 안무의 한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그의 팔은 포스터 안쪽을 향해 곧게 뻗어 있고 그의 눈빛은 포스터 밖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손끝을 따라가다 보면 검은색 바탕에 핑크빛 글씨로 적힌 작품의 제목을 만난다.?

‘DEGESBE 데게베’?

부르키파소의 민족어로 ‘무엇을 찾고 있는가?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라는 뜻이란다. 덕분에 괄약근에 힘 줄 때도 몸을 빡빡 씻다가도 불현듯 안무가의 몸짓을 떠올리며 읊조리게 된다. 데.게.베.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2018년 가을에는 우연한 기회로 이 공연에 일부분 참여하게 되었다. 무대극을 거리극으로 옮기면서 만들어진 기획이다. 공연을 주최하고 무용수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몇 년 전부터 춤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이다.?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실은 세세하게 알지 못한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지난주에는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무엇이 그들을 생의 한복판으로 이끌고 있는지, 지금 각자의 삶은 위태로운지 혹은 충만한지에 대하여. 하지만 이런 것들을 알면 나는 과감하게 그들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노을 앞에서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지만, 대신 나는 그들의 몸을 아주 조금 알고 있다. 꾸준히 목격해왔기 때문에 조심스레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허리를 돌릴 때 꿀렁이는 뱃살의 모양새, 엉덩이로 두둠칫 박자를 탈 때 허공을 가르는 몸의 곡선, 두 팔을 뻗고 다리를 크게 들어 올릴 때 따라 올라가는 입꼬리. 팔과 허벅지에 두둑이 쌓여가는 작은 근육들. 한국 사회에서 말이 아닌 몸으로 첫인상을 형성하고 정기적인 만남을 유지하는 일은 흔치 않음으로 이들과의 관계는 늘 특별하고 생동감 넘치게 느껴진다.?

거리극으로 변모한 관객 참여형 ‘데게베’를 위한 사전 워크샵에 참여했다. 움직임의 시작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참여자는 침묵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며 걷는다. 비슷한 속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길을 걷다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불특정 다수의 이동과 닮아있다. 무덤덤하고 건조한 표정마저. 계속 걷다 보면 누군가가 나의 어깨 위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채 헤아리기도 전에 어깨 위의 감촉은 사라지고 없다. 짧은 접촉의 온기를 기억해내려 애쓰며 다시 걷는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이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본다. 분명 무슨 의미를 담고 싶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몇 차례의 어깨 접촉은 어느새 눈빛 교환으로 바뀌어 있다. 걷다가 누군가 내 앞에 선다. 미동 없이 나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본다. 누군가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봤던 적이 언제였더라? 눈동자 너머의 타인을 상상해본다. 내가 잘 모르는 이의 커다란 우주에 대해. 생경한 감각을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내 앞의 타인은 사라지고 없다. 나는 다시 정처 없이 걷는다. 걷다가 내 앞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 앞에 잠시 멈춰 선다. 내가 방금 전 느낀 낯선 에너지를 이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 눈을 맞춰보려 하는데, 갑자기 내 앞의 사람은 몸을 획 돌린다. 눈동자 대신 뒷모습을 남겨두고 나에게서 멀어진다. 잠시 나의 세계가 멈춘다.?

이런 일련의 행위를 반복했다. 어깨 위에 손을 얹는 작은 접촉은 모두 동일했지만, 눈빛은 바라보거나 바라보지 않음을 선택해도 된다고 했다. 일정치 않은 방향으로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 수 없는 걸음을 옮기다 누군가를 만난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도 나를 모른다. 이해해보려 애쓰기로 한다. 눈을 맞춘다. 무언가 열릴 것 같지만 충분치 않다. 다시.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난다. 이번에도 이해해보기를 선택한다.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저 등을 보인 것뿐인데 타인의 움직임에서 외면을 읽는다. 나는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기 힘들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했을 때보다 호흡이 빠른 속도로 가빠진다. 침착해. 이건 워크샵일 뿐이야. 큰 숨을 마셔보기로 한다. 목구멍에 작은 이물감이 걸린다.??

데게베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방인으로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하여. 워크샵을 마치고 나는 조금 울었다. 아까 나의 눈빛을 선택하지 않은 이의 눈시울도 조금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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