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 Suspend isse ultrices hendrerit nunc vitae vel a sodales. Ac lectus vel risus suscipit venenatis.

Amazing home presentations Creating and building brands

Projects Gallery

Search

[인터뷰_침묵하지 않는 춤 ⑦] 춤추는허리(김미진, 서지원) – “머리카락 한 올마저도 나답게 추는 저항의 춤”



인터뷰 시리즈 
[침묵하지 않는 춤 – 페미니즘으로 본 춤의 세계]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페미니즘적 관점과 사유가 확장되고 있다. 퀴어/여성 서사에 주목하는 문학, 페미니즘 연극제, 여성주의로 읽는 미술사 등 위계와 차별에 맞선 창작과 기록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는 끝없이 이어진 문화예술계 미투, 성폭력과 가부장적 폐습을 지적하고 성찰을 요구해온 목소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몸이 주요한 매체이자, 곧 주체이기도 한 춤의 세계는 어떨까? 2021년부터 이어진 ‘페미니즘으로 본 춤의 세계’라는 부제를 단 이번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성별, 장애, 나이, 외모, 성 정체성,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등과 관계없이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지 않는 실천 윤리인 페미니즘을 중심에 두고 지금, 오늘의 춤을 살펴본다. ‘침묵하지 않는 춤’은 무용 담론에서 벌어져 왔던 위계와 배제의 구조를 확인하고, 수행적인 예술로서 춤추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예술하는 몸으로 한 개인이 춤추는 몸, 연극하는 몸, 강의하는 몸으로 살기 위해서는 곁에 의식있는 동료들의 몸이 함께 해야만 한다는 걸 안다.1

‘춤추는허리’는 계속 보여주는 몸에 관해 고민하지만 얼마나 스스로 고민하는가. 가끔 보여지는 자체로 관객에게 만족하라고 하진 않나. 때론 나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관객에게 더 유능함을 강요할 때는 없는가? 일부러 더 얼굴 근육을 일그러트리고 비틀어진 몸을 더 비틀고 있진 않은가? 때론 지적으로 보이려고 입을 꾹 다물고 흔들리는 몸을 가만히 있진 않은가? 질문을 피하려 착한 불구자가 되어 일찍 마치려고 하진 않는가?2


모두의 몸은 저마다 다르다.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채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믿음을 우리는 무대 위에서 얼마나 목격해왔을까. 저마다 다른 몸들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그 장면을 계기로 삶을 바꿔낸 경험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춤에 관한 오랜 규범은 ‘정상적’이라 불리지 않는 몸을 배제하고 폄하하며 그 자리를 지켜왔다. 비장애인 중심의 춤에 대한 관념은 고도의 테크닉을 수행할 수 있는 신체 구조와 체력, 이를 기반으로 구현된 움직임을 미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장애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작품 중 무용수나 퍼포머의 세계관보다는, 장애라는 요소만을 강하게 부각하는 사례도 여전히 적지 않다. 거기에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서사가 덕지덕지 붙으면 관람 의욕이 세차게 꺾이고 만다.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몸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무대라는 공간을 영유하는 다채로운 몸에 대한 상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던 찰나, 장애여성공감의 극단 ‘춤추는허리’를 알게 됐다. 곧 20주년을 앞둔 견실한 극단에서 활동해 온 무대 위의 퍼포머들은 각자의 몸을, 서로 다른 몸들을 어떻게 감각하고 있을까. ‘춤추는허리’의 활동가이자 배우로, 장애여성의 삶과 현실을 무대 위에 펼쳐온 김미진, 서지원 배우를 만났다. 대화는 사뭇 무용단의 이름을 연상하게 만드는 극단의 이름으로부터 출발했다.

서지원 이름이 정해지기까지 토론이 길었다고 들었다. 여러 신체 부위 중 ‘허리’였던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언급할 때 흔히 ‘에스 라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나. 그런데 우리의 허리는 휘어지고, 비틀어지고, 뚱뚱하기도 하고, 굽어 있기도 하다. 허리는 몸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해있다. ‘춤추는허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몸의 중심인 허리로 마음껏 춤추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이게 곧 우리의 목소리이자, 저항이라고 생각해왔다.

김미진  ‘춤추는허리’라는 이름은 장애를 수용함과 동시에 역설적인 느낌도 든다. 우리만의 움직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춤추는허리’라는 이름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형식이 아닐까 싶다. 춤은 슬퍼도 추고, 기뻐도 춘다. 무기력해도 출 수 있다. 눈을 깜박이는 것만으로도 춤이 될 수 있다. 칼군무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한편으로 저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움직임을 맞추는 게 과연 옳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각자의 움직임이 분명히 있으나, 마음껏 써보지는 못했을 테니까. 나는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나답게 만드는 것이 춤이라고 생각한다. 서지원 배우가 언급한 ‘저항’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서지원 배우는 현재 ‘춤추는허리’의 단장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집에만 있었다. 답답하던 시기, 우연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첫 외출이었다. 교회를 통해 알게 된 언니가 연극을 한다고 해서 보러 갔다. 난생처음 관람한 연극이 너무 “내 이야기!”였다. 토론 형식의 연극이었는데, 배우는 관객을 무대로 불렀다. 언어 장애로 망설이던 사이, 무대에 서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연극을 초대해 준 언니에게 말했다. “나도 그거 연극하고 싶어!” 그렇게 서지원 배우는 2004년, ‘춤추는허리’를 만났다.

서지원 2002년, 장애여성 난장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 패션쇼 퍼포먼스가 ‘춤추는허리’의 결성 계기가 되었다. 당시 장애 여성의 삶과 현실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은 이들에게 한글은 어렵고, 손에 장애를 지닌 이들에게 글과 그림이라는 표현 방식은 쉽지 않았다. 이런 고민 속에서 펼쳐진 게 난장이었다. 그냥 장애가 있는 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 우리의 자원인 몸을 활용하자! 그렇게 ‘춤추는허리’가 만들어졌다.

김미진  ‘춤추는허리’가 언니들의 수다로만 끝났다면 계속 연대하며 힘을 키워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들끼리 회포를 푸는 것에 그칠 수도 있었을 것 같고. 공식적인 자리를 찾고, 관객과 연대하며, 환대와 자극을 주고받는 환경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일상과 공식적인 공연 차이가 크다. 그 차이 속에서 힘을 얻는다. 무대는 우리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공간이다. 능동적으로 나의 몸을 보이기로 결정한 이후, 계속 무대로, 거리로, 광장으로 나갔다. 아주 치열하게 경쟁하고, 갈등하고, 조율해나가며 우리 안에서 꾸준히 내실을 쌓아왔다. 공통의 경험을 나누고 지속해온 시간, 그 역사가 ‘춤추는허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왔다.


김미진 배우는 마흔셋, 중년에 들어서 우울감을 느꼈다. 삶이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있던 찰나, 운명처럼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가가 김미진 배우의 위층으로 이사를 왔다. 새 이웃의 제안으로 운명처럼 장애여성공감을 만났다. 어느 날, ‘춤추는허리’의 한 배우가 개인 사정으로 공백이 생겨났고, 김미진 배우는 그 자리에 긴급 투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12년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나는 무대로 <따로 또 같이>라는 몸짓 공연을 꼽았다. 홀로 무대 위에서 춤추는 동안, 주체할 수 없는 격동적인 감정이 몸을 타고 흘렀다.

김미진  <따로 또 같이> 공연을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관객에게 대상화되는 느낌도 받았지만, 내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더욱 컸다. 그 과정이 기쁨보다 슬픔을 준 것 같기도 하고. 한편, 내가 무언가를 해내고 있구나, 가장 두려워했던 것을 해내고 있구나 하는 쾌감도 컸다. 그 모든 게 다 뒤섞여 있는 복잡한 눈물을 흘렸다. ‘춤추는허리’를 만나서 그동안 오십 해가 넘는 삶 속에서 가장 나다운 것을 찾은 느낌이다.

서지원 우리는 연극을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니다. 오직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 뿐. 무대를 통해 동시대의 사람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현재를 표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한국의 장애 예술계, 문화 예술계에서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더 풍성하게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춤추는허리’도 더욱 집요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고. 우리는 속도는 느리지만 함께 간다. 이런 지점이 곧 활동할 힘이고, 무기이다. 


‘춤추는허리’의 작품은 ‘장애여성이 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단순히 비장애인의 공연을 그럴듯하게 표현한다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의 장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2019년까지 정기공연 시리즈로 이어온 <불만폭주라디오>라는 작품에서는 ‘시도만으로 훌륭해서 무엇을, 어떻게, 왜, 표현하는지 보이지 않는 그런 공연만을 해 온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장애여성의 세계와 예술관에 방점을 찍지 않은 채, 기존의 편협한 관점을 고민 없이 수용해 온 관객 태도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회초리 같은 문장이다. 당시의 질문은 현재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김미진  나는 경증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그동안 굉장히 비장애인 중심의 삶을 살았다. 아름다움, 신체적 미의 기준 역시 비장애인의 신체를 중심으로 바라봐왔다. ‘춤추는허리’를 만나 공간이 달라지고, 관계 맺는 동료가 생기면서 달라졌다. 나의 몸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의 몸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 곁에 머물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서지원 배우님을 만났을 때 신체 접촉이 쉽지 않았던 경험이 기억난다. 편견도 작용했겠지만, 낯섦에 대한 몸의 반응에 훨씬 가까웠다. 12년 정도 함께 지낸 지금, 몸과 몸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익숙하게 느껴진다. 차별에 맞서는 감각은 이런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변한 것처럼 나와 다른 몸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더욱 주어진다면, 차별을 깨뜨리는 과정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춤은 절로 나올 것이다.

서지원 모두에게 필요한 경험이지만, 누구나 갖기 어려운 경험이기도 하다. 함께한 시간이 있기에 가능해졌지만, 누군가에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지 않나. 미의 기준은 고정될 수 없는 것인데, 하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몸을 비정상적인 몸이라 여기는 구조는 여전하니까. 한편으로 내용은 보이지 않고, 단순히 장애 있는 몸으로만 무대 위에서 비칠 때가 고민스럽다. 몇 개월에 걸쳐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하고 싶은지 부단히 고민해서 준비한 공연인데 그저 몸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공연이라는 형식을 통해 장애여성의 몸을 드러내는 행위에는 다층적인 의미가 얽혀있다. 한국 사회에서 몸은 차별의 근거이자, 아름다움의 근거로 작동한다. 장애/비장애,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는 훌륭한 공연을 관람했다고 해서 단숨에 허물어지지 않는다. ‘춤추는허리’는 이분법의 위계를 뒤흔든다. 다양한 정체성이 무대 위에서 경합을 벌인다. 관객은 자신에게 익숙한 차별과, 전혀 감지해본 적 없는 차별을 동시에 경험한다. 차별을 받았던 경험과 차별을 가했던 경험 또한 나란히 스친다.

서지원 무대를 경험하며 나 역시 많이 바뀐 것 같다. 과거의 나는 장애가 있는 몸에 대해 말할 때 차별받는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왔다.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활동을 계속하면서 많이 깨졌다. 장애여성공감은 나에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공간이자, 무기이다.

김미진  장애와 여성도 교차하고, 그 밖에도 교차하는 관계들이 너무나 많지 않나. 같은 장애인이어도 서로를 대상화하기도 한다. 장애/비장애를 떠나서 우리에게는 타인을 어느 정도 대상화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핵심인데, 나는 동료애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춤추는허리’는 차별에 저항하는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 합의하고 동의하는 과정을 이 안에서 연습하게 된다. 자연스레 기회와 권리에 대해 책임지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동료는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 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실패하더라도, 그걸 충분히 커버하고 싶은 마음, 서로 성장할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서지원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육아도, 연극도, 실패하면 절대 안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어 장애가 있다 보니 많은 순간 “과연 당신이 그런 몸으로 공연하고, 대사를 한단 말이야?” 하는 의심을 마주하게 된다. 대사를 잊어버리면 누군가는 “거봐, 기억하는 데 실패할 줄 알았어”라고 말하지만, 장애여성공감은 “괜찮다, 인간은 실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패할 권리가 중요한 것이다.


무대 위 퍼포머의 실패를 단지 한 개인의 역량 차원의 실패라 볼 수 있을까. 성패를 가르는 기준 속에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편협한 가치관이 전제되어 있다면, 누구도 무엇을 함부로 실패라 말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목격해야 하는 실패는 어떤 장면일까. 그동안 공연 예술 환경에서 장애는 관객 접근성 중심으로 논의가 한정되어 왔다. 장애를 가진 몸이 무대에 서기 위해, 백스테이지에 머물기 위해, 음향과 조명을 조정하고, 연출적 실험을 도모하기 위해 극장이라는 공간은 고민을 충분히 한 적이 있나.

서지원 2015년부터 연출을 해왔다. 연출가로서 고민은 공연의 전반적인 과정을 보기가 매번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연출할 거라고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음향, 조명 등이 2층에 있는 극장이 대다수인데, 2층에 기기가 위치한 공간은 출입구가 협소해 휠체어로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적합한 극장을 구하기가 매번 어려웠다.

김미진  예술 교육 과정에서도 장애인을 만나기 어렵다. 연출이든, 배우든. 관련 학과에 장애인이 입학했다는 소식은 거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오래도록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단절된 사회이다 보니, 어느 날 극장에서 마주치면 장애인이 연출가일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춤추는허리’의 최근작은 2021년 토론 형식을 취한 <연극연습4. 관객연습>이다. 관객의 참여가 극의 구성 중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잘 알지 못하는 몸들을 무대 위로 초대했다. 관객이 어떻게 움직이고 말할지 전혀 예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춤추는허리’의 배우들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반응은 본능적이었고 전문적이었다. 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머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과 움직임을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관찰하고 훈련해 왔기 때문이다.

김미진  발달장애, 뇌변병장애, 지체장애, 정신장애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이 있고, 실패에 대한 기호도 다르다. 대사, 몸짓, 소리, 움직임 등 여러 영역에서 최대한 한 사람의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부풀리지 않고. 소리가 적은 사람을 위해 마이크를 준비하거나, 소리를 몸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은 암기가 가장 어렵기에 많이 쓰고 반복해서 말하고. 암기도, 소리내기도 어렵다면 소리 없이 사물을 연기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도 하고. 누워서 연기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자신의 방에서 연기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본의 위치와 조력의 정도를 맞춰서 세팅한다.

서지원 연출가로서는 각자에게 편한 과정을 계속 찾게 한다. 계속 대사 암기의 어려움을 겪다가, 자신에게 익숙한 입말로 대사를 바꿨을 때 1분 만에 전부 외워버린 경우도 있다. 그렇게 각자가 지닌 고유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찾아간다. 어디까지 호흡하고, 어떻게 대사하고, 어디까지 움직일지 다 계산되어 있는 게 무대 위에 나온다.


장애와 여성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장면을 근거로 삼아 ‘춤추는허리’는 다시 객석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에게 생경한 몸이, 그저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세계가 과연 정당한가? 이때 우리는 어떤 몸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

김미진  좀 더 유려한 동작을 수행할 때 미적 기준을 충족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퍼포먼스는 상상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몸짓과 소리 안에서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열어준다. 장애를 가진 동료 배우를 보면, 각기 고유한 동작이 있다. 최근 서지원 배우님과 몸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마사지와 움직임으로 몸을 점검하고 새로운 운동법을 찾는 자리에 동행했다. 한 사람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본 모든 움직임이 춤과 같았고 너무 아름다웠다.

서지원 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마음이 있다. 내 일상과 연결되는 몸이 되고 싶고, 자신감 있어 보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고민이 깊어진다. 현재 활동 지원을 받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보조받기 수월한 몸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내가 무겁진 않을까?’, ‘이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한 번 더 가게 되지 않을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내 몸을 살피고 눈치를 보게 된다. 활동지원사분이 여성인데, 나를 지원한 후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다고 하더라. 나도 활동하고 퇴근하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비슷하다. 살림 노동, 돌봄 노동을 사회가 여성에게만 요구할 때 발생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미진  무대에 오르기 위해 배우는 자신의 몸을 더 챙겨야 한다. 그래서 활동지원사를 요청한 것인데, 정작 활동지원사의 상황을 이해하느라 몸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챙기지 못하는 현실 구조가 이중적이다. 그렇다고 활동지원사의 상황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앞으로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조력하는 사람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무대 위의 두려움과 긴장, 도전과 실패는 장애를 지닌 몸이 사회에서, 일상에서 겪는 경험과 맞닿아 있다. 각자의 고유성을 온전히 간직하고 드러내며 살아갈 수 없는 세계에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다른 몸들을 화두로 삼았지만, 이들과의 대화는 궁극적으로 ‘관계’와 ‘저항’을 말하고 있었다. ‘춤추는허리’가 무대 위에서 녹진하게 쌓아온 예술과 삶의 태도에 귀 기울이며 서로 다른 몸이 만나고 부딪치고 흩어지고 연결될 춤을 상상해본다.





1 춤추는허리 기록집 <장애여성 배우 몸 쓰기>, 김미진 글,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발행, 2021, 278p
2 춤추는허리 기록집 <장애여성 배우 몸 쓰기>, 서지원 글,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발행, 2021, 340p




진행|보코, 소영
기록|보코



No Comments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