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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한 순간의 무장해제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몸소 경험한 춤의 첫인상은 자유, 활력, 기쁨과 같이 밝고 힘 있는 단어들과 가깝다. 누구나 자신만의 춤을 찾고 출수 있다는 믿음이 서려 있는 분위기. 둥글게 모여 서로의 눈빛과 몸짓을 살피며 에너지를 나누는 시간.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깨우는 동작들. 20년 넘게 춤이랑은 일절 교집합 없는 삶을 살았던 나로서는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전까지 나에겐 ‘춤은 아무나 출 수 없는 것’이라는 납작한 선입견이 해묵은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으니까. 

마음껏 뛰어오르고 활짝 열어젖히는 움직임들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해방감 중 단연 첫손에 꼽혔다. 내 몸과 정서에 각인된 고정관념을 하나둘씩 부수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춤출 이유는 충분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지닌 세계의 한 부분을 감각하고 표현하는 것 또한 춤이 가진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나도 모르는 새에 춤이 계속 자유롭고, 활력 넘치고, 단순명료한 기쁨에만 머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허우적대는 몸을 붙잡고 그저 신나게 춤추며 일 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다. 춤 연습을 같이 해온 ‘쿨레칸 에스쁘아’ 팀이 어느 여름 락 페스티벌 퍼레이드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정과 여건이 가능한 이들을 중심으로 한 달 정도 준비를 시작한다는 알림도 함께. 우연의 연속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그 락 페스티벌은 일 년 전 내가 쿨레칸을 처음 보고 반해, 춤 연습을 시작하게 만든 바로 그곳이었다. 와우! 나의 지인들은 데뷔전으로 손색없을 만큼 절묘하다며 가볍게 눙쳤지만, 글쎄….

당시의 나는 설렘의 흥분보단, 심란한 마음이 저만치 앞섰다. 과연 내가 타인 앞에서 ‘춤’이라는 행위를 소화해낼 수 있을까. 만약 실수하면 어쩌지. 떨림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긴 한 걸까. 하지만 한편으로 약간의 호기심과 일말의 기대도 피어났다. 익숙한 관계와 공간에서 방심하고 추는 춤과 달리,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과 교감하며 추는 춤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터였다. 우물쭈물 망설이다 인생 종치고 만다는 평소 신념을 따라, 적당한 긴장감에 나를 내맡겨 보기로 했다. 

퍼레이드에서 추게 될 춤은 ‘구룬시’였다. 전사들의 춤으로 알려져 있으며, ‘강철로도 뚫을 수 없다’는 별명이 붙어 있는 춤. 구룬시의 안무를 절도 있고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공격성과 자기방어적 본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건 지금까지 겨우 몸에 붙여온 자유, 활력, 기쁨과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였다. 스스로에게는커녕 그 누구 앞에서도 몸으로 공격과 방어의 기운을 뿜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생경함에 자꾸만 몸이 멈칫했다. 한 달의 시간은 한달음에 흘렀다. 

그리고 대망의 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면서 그제야 나는 구룬시라는 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탁 트인 공간에서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자니 비로소 실감하게 된 것이다.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생존에 대한 공포, 나를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욕구, 온전하게 그저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는 무한한 열망까지. 구룬시는 존재의 두려움과 욕망을 온몸으로 분출하는 춤이었다. 몸과 감정의 이질감 없이 이 춤을 추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과 욕망을 피하지 않고 꼿꼿이 마주할 때만 가능했던 것이다.

춤의 밑바탕이 되는 힘은 단순히 자유롭고, 기쁘고, 기운찰 때만 솟구치는 게 아니었다. 때때로 분노, 화와 같은 감정과 연결되기도 하고 보호, 안전과 같은 열망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 감정과 욕망을 마주하고 표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퍼레이드가 끝나갈 무렵에야 나는 깨달았다.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 건강한 방식으로 내 안의 공포와 욕망이 표현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때 생기는 안도감이 다시 나를 살리는 힘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 앞에서 잔뜩 무장한 춤을 추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나는 무장해제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안의 충분한 힘을 감지한 순간, 굳이 그 힘을 과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어딘가 엉켜있던 실타래가 그제야 풀리는 듯했다. 춤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문이 아주 잠깐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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