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 Suspend isse ultrices hendrerit nunc vitae vel a sodales. Ac lectus vel risus suscipit venenatis.

Amazing home presentations Creating and building brands

Projects Gallery

Search

12화. 춤추기와 글쓰기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춤추다 말고 가끔 이 원고를 생각할 때가 있다. 마감을 독촉하는 편집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악플을 미친 듯이 다는 독자도 없지만, 다음 호 발행일이 다가올수록 어쩐지 초조해지는 것이다. 

과연 이번 달에는 춤추며 어떤 문장을 그러모을 수 있으려나.

이삭 줍는 여인의 심경으로 춤추던 내 모습을 복기해본다. 그럴 땐 춤 연습 하던 공간이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 같다. 들판을 향해 팔을 뻗어 본다. 들판을 넘어 세상의 끄트머리에 닿을락 말락 할 것 같은 상상을 하며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쭈-욱. 팔을 따라 몸이 들판 위로 널따랗게 펼쳐진다. 그렇게 뻗은 팔로 허공을 가르며 핑그르르 돈다. 이쯤에서, 와 춤은 정말 엄청난 거구나! 이런 명쾌한 깨달음과 희열을 느끼면 좋겠지만, 실상은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위태롭게 흔들리다 흐트러지고 만다. 

계속 춤을 추기 위해서는 여기가 중요한 단계다. 마음속으로 크게 심호흡하며 ‘다시 한번 더’를 홀로 외치는 일. “아, 역시 못하겠다, 춤추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부끄럽고 자신 없고 잘 못 하겠어.” 이런 생각들은 꾸덕꾸덕한 늪지대 같아서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나는 그걸 몇 년에 걸쳐서 겨우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어진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애를 써보는 일 뿐이다.

그렇게 끝없이 같은 동작 혹은 비슷한 감각을 연습하다 보면 아주 가끔 광활한 들판을 텅 빈 몸으로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왼팔 다음이 오른팔이었는지, 골반의 회전각이 30도였는지 60도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몸은 에너지로 꽉 차 있는데 머릿속은 텅 빈 상태.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함과 기묘함이 몸과 의식을 넘나든다. 이런 날은 아주 드물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꼭 메모해 둬야지 일단 다짐을 하고선, 다시 찾아올 그 상쾌함과 기묘함을 기다리며 계속 연습을 한다. 

그런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귀갓길 아무런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왜 하필 이 코너 이름을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이라고 지었을까 스스로를 탓하며 뭐라도 건져보려 용을 써보지만, 그 어떤 문장도 당시 내가 느낀 것을 충분히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춤을 기록하는 일은 어렵다. 춤을 추는 찰나, 춤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시공간, 다시 말해 춤추고 있는 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자 사이의 공기, 냄새, 소리, 빛깔, 마음 상태에 따라 느껴지는 감각과 진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표현과 동시에 휘발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춤을 온전히 기록해 글로 남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춤과 달리 글은 평생에 걸쳐 남는다. 심지어 글쓴이가 죽어도 시대의 흐름과 해석에 따라 후세대에 걸쳐 길이길이 회자되기도 한다. 이렇게나 다른 특성을 가진 장르를 오가는 나는 자주 조바심이 난다. 기껏해야 내가 경험한 춤의 단상이나 춤이 펼쳐낸 풍경은 작고 단편적인데 그마저도 오롯이 기록하지 못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힌다. 글쓰기와 춤추기, 그 경계를 오가는 일은 늘 위태롭다. 어느 쪽으로도 완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필연적 결말 앞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좌절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뿐이다. 오늘 춤출 때 마음 속으로 외친 것처럼 ‘다시 한번 더’. 

문자와 몸이라는, 긴밀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의 질료를 가진 두 언어는 매혹적이고, 아름답고, 그래서 어렵다. 나에게 글쓰기가 더 잘 해내고 싶기 때문에 애가 타는 장르라면, 춤추기는 잘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애를 쓰는 장르다. 매일 두 장르를 균형 잡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No Comments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