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14화. 나를 보는 당신의 눈으로 나를 보았다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공연을 앞두고 있다. 준비 기간은 길었다. 올해 2월 공연 준비를 위한 춤 연습을 처음 시작했다. 나의 부분은 공연의 매우 작은 영역이었지만, 자신이 없었으므로 오로지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매주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춤 워크샵 외에 연습하는 요일을 하루 늘렸다. 장애를 주제로 한 행사와 탈시설 이후 새 공간을 마련한 이들을 축하하는 자리의 공연이었다. 두 공연은 각각 3월과 4월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이미 경험했듯이, 코로나 19로 결국 취소되었다. 취소가 결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한 차례 연기, 두 차례 연기, 무한정 연기. 연기와 연기 사이에도 다시 열린다는 소식이 언제 들려올지 모르므로 춤 연습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봄이 흘러가 버렸다. 쨍한 여름 볕과 끈적한 장마의 습기를 견디며 지금도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다가올 가을의 초입, 새로운 공연이 잡혔기 때문이다. 드디어 올해의 첫 공연이기도 하다.

두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물! 론!)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작은 안도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관객, 더 정확히는 타인 앞에서 춤을 출 때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왜일까? 무용을 본격적으로 전공하지 않아서? (반드시 전공자만 잘 추라는 법도 없는데) 내가 기대한 만큼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막상 관객이나 동료는 나에게 크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데 스스로에 대한 기대만 너무 높은 건 아닐까) 함께 공연을 준비한 이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 봐? (긴장과 부담을 조절하는 것도 춤 공연의 한 과정일 텐데, 이게 어렵다면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세 가지 의문 모두 부분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압도적이지는 않다.

공연을 위한 춤 연습을 하러 가는 날. 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확실히 매주 참여하는 춤 워크샵보다는 마음이 무겁다. 워크샵에서 춤을 출 때는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몸의 컨디션에 따라 감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감각의 변화로 인해 감정은 어디로 이동하는지. 몰입도가 높을수록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의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펄떡이는 생명력 자체에 몰두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날은 높고 밝고 맑은 종류의 에너지를 충분히 흡수한 기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종류의 기운을 공연 준비를 위해 춤을 출 때는 감지하기 어렵다. 아직은 내 수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안무가의 의도에 맞춰 내가 과연 제대로 춤을 추고 있는지 생각하느라 쩔쩔맨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안무는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고, 잘 직조된 한 벌의 옷 같기도 하다. 거기에서 내가 삐끗 잘못 그려진 선이나, 비죽 삐져나온 실밥이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내 몸뿐만 아니라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춤추는 이들의 몸에 내가 가진 집중력의 일부를 내어 준다. 그들의 기운이 어디로 뻗어가고 있는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맞추어 나의 리듬과 움직임을 가다듬는다.

무엇보다 몸으로 해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렵다. 춤은 한 번 추면 끝이다. 번복될 수 없다.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해명할 기회도 없다. 춤을 추기 시작하는 순간, 내 안에 깃든 에너지를 감출 수 없어진다. 더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도 없고, 아닌 척 의뭉스럽게 뭉갤 수도 없다.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의 움직임과 호흡을 통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공간의 에너지를 확인받고 확인하게 된다. 

조금 더 무겁게 혹은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느리게 혹은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부드럽게 혹은 조금 더 날렵하게. 조금 더 뭉툭하게 혹은 조금 더 날카롭게. 조금 더 비워내고 혹은 조금 더 채우고. 조금 더. 조금만 더.

아주 미세한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것을 전하기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내가 추는 춤이, 춤이라 불릴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 하나의 완결된 안무로 읽히기 위해서, 무엇이 전달되고 무엇이 빠져 있는지 헤아린다. 참 이상하지. 나는 분명 춤을 추고 있는데 내 앞의 관객을 상상하는 순간, 나의 춤은 오롯이 나만의 것도, 온전히 타인의 것도 아닌 게 된다. 내 몸에 들러붙어 있는 시선은 타인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나의 눈이기도 하다. 간혹 시선을 뛰어넘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나의 춤이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시각이 아닌 미각이나 촉각 혹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다른 감각으로 가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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