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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삐-끗하고 세상이 짧게 닫힐 때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왕왕 겪어온 일이다. 삐와 끗 사이는 몹시 짧은데 한순간에 세상 끝 벼랑에 몰리는 기분이다. 너무 참혹해서 외마디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이다. 뒤늦게 밭은 숨을 몰아쉬어 보지만 세상은 그대로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흐른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몸이 둥글게 말려 있다. 한 손으로는 삐-끗한 발목을 부여잡은 채로. 

발목을 접질리는 일은 이번 생에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것 중 하나다. 지난해에 다친 곳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살면서 대체 몇 번이나 접질렸는지, 반깁스를 한 쪽과 통깁스를 한 쪽이 각각 어느 쪽이었는지, 헤아리는 것도 지쳐서 그만뒀다. 자주 겪으면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발목을 삐는 순간 매번 다른 농도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이번에 세상이 순식간에 닫힐 때는 머릿속에 한 단어가 섬광처럼 빠르게 스쳤다. 춤! 다치는 찰나, 무언가가 떠오른 건 처음이었다.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고 발목을 주무르면서도 생각했다. 공연 어쩌지?

퉁퉁 붓고 멍든 발을 절뚝이며 병원에 갔다. 진찰실에 들어가기 전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았다. 나도 모르게 아주 다소곳했다. 이럴 때만 신을 찾는 내가 간사하게 느껴졌지만, 별수 없었다. 설마 또 뼈에 금이 간 건 아니겠죠? 제발 석고 깁스만큼은 피하게 해주세요. 그럼 소염제도 잘 먹고 식전 와인이나 식후 맥주도 당분간 마시지 않고 외출도 금하고 회복에만 전념하겠습니다. 무사히 공연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다행히 금이 간 건 아니었지만 붓기와 염증, 그리고 오래전 부상의 후유증이 심해 반깁스 당첨. 최소 3주간 꼼짝없이 머물수록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일상생활은 깁스한 채로 가능하지만 격렬한 움직임이나 운동은 금지. 선생님, 저기… 춤은요?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불과 몇 분 전 두 손 모아 기도하던 간사한 내가 떠올라서. 

그렇게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이 시국에 참으로 적합하게도 ‘자가 격리’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자연스레 춤과도, 춤추며 만나던 이들과도 잠시 멀어졌다. 올해 들어 이렇게 오랜 기간 춤을 추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그래 봤자 몇 주지만). 다이어리를 펼쳐 노란색 동그라미를 세어봤다. 춤 연습 가는 날을 표시해 둔 작은 동그라미는 총 마흔 개였다. 마흔 개. 여덟 달을 모아 보니 한 달을 채우고도 남는 날들. 마흔 개의 노란 동그라미가 일시에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이런 칠칠치 못한 것. 부주의하고 조심성 없는 것 같으니라고. 일주일에 많아야 이틀, 한 번에 2시간 내지 3시간 남짓 추는 춤이었는데도 어딘가 텅 빈 것 같고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조바심이 한바탕 마음을 휩쓸고 가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용암처럼 들끓었다가 싸늘하게 식는다. 이제 겨우 몸에 익힌 동작이 있는데. 진짜 오랫동안 갈고 닦은 움직임도 있는데. 과거의 나를 탓하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함께 춤추며 공연 준비를 해온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라 미안함이 차올랐다가,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싶다가. 

방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춤출 때의 감각을 꺼내 본다. 눈을 감고 춤추던 내 모습을 그려본다. 연습하던 안무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작에 실려있던 호흡과 리듬을 가만히 세어본다. 어둠 속의 내가 춤을 추고 있다. 미동도 없이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서. 그동안 춤을 추며 잃어버리지 않고 싶었던, 잘 간직하고 전달하고 싶었던 에너지를 되새긴다. 춤추며 그러모을 문장들이 조금씩 다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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