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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우리 모두 나무 아래 함께 있다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지난 두 계절 동안 나무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어떤 날은 스스로 나무가 되기도 했다. 봄과 여름, 두 계절을 통과하면서 나무는 조금씩 자라났다. 어제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싹이 돋아나기도 하고, 어린아이 손가락만 한 통통한 잔가지가 몸통 한쪽에서 비쭉 솟아나기도 했다. 분명 상상 속 나는 이제 막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 내려가는 묘목이었는데, 어느새 부드럽게 솔솔 부는 바람에 작은 잎들을 흐슬부슬 흩날리는 웃자란 줄기가 되어 있었다. 

하늘이 뻥 뚫린 것 마냥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장마 기간, 나무는 거센 비와 바람에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밤을 여러 날 보냈다. 마침내 어둡고 축축한 시간이 지나가자, 다시 내리쬐는 태양 볕은 여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 그저 영롱하기만 했다. 나무는 고여있던 물방울을 사뿐히 털어내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막막함이 나뭇가지 사이마다 내려앉았다. 

나무를 둘러싼 환경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었다. 화창하고 푸르른 날은 점점 짧아지고 우중충하고 무거운 기운이 외부에 도사리기 시작했다는 걸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숨구멍을 틔우는 일조차 벅차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무기력 속 기력을 되찾고 싶을 때면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 근처로 여린 존재들이 잠깐씩 머물러 갔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작은 인기척을 내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들. 끓어오르는 생기와 활력을 어쩔 줄 몰라 빚어지는 소란스러움, 두런두런 저들끼리의 말소리, 제풀에 지쳐 주저앉은 이의 한숨 소리, 마주치지 못한 존재들이 내지르는 고함이 들린다. 자신에게 걸맞은 옷을 찾느라 분주한 이들과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느라 고뇌하는 이들의 고요한 비명이 교차한다. 누군가 서서히 제 리듬을 찾으며 타인을 향해 손을 뻗자 일순 주변의 진동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도 들린다. 탄생과 성장과 반목과 화해와 죽음이 지나가는 풍경을 온몸에 가만히 담는다. 한 자리에 서서 시간의 속도를 묵묵히 응시하며. 

지난 두 계절 동안 ‘이리바Yiriba’라는 공연을 준비했다. 가을 문턱에서 공연을 두 번 무대 위에 올렸다. 마스크를 쓴 관객들과 허허벌판 같은 공간에서 거리를 유지한 채 춤을 추던 야외 공연과, 밀폐된 지하 무대의 쨍한 조명 아래 관객 없이 카메라 앞에서 촬영한 온라인 공연은 각각 미묘하게 과거의 시간과 어긋나 있었다. 동시에 각기 다른 모양을 띠어 극적으로 대비되기도 했다. 만남이 없는 만남에 관해서, 모니터 너머로 전하는 에너지와 눈을 마주치고 있어도 잡을 수 없는 손에 관해서, 할 말이 많은 줄 알았는데 막상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아직 정리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줄라 어로 ‘이리yiri’는 ‘나무’, ‘바ba’는 ‘커다랗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줄라 민족에게 커다란 나무는 지혜로운 노인을 상징했다고 한다. 이들은 나이 든 사람의 죽음을 공동체를 지지해주던 기둥의 상실로 여겼다. 마치 고목이 죽은 뒤, 작은 새들이 쉬어갈 공간을 잃게 되는 것처럼. 공연을 마치고 나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거리의 나뭇잎들은 초록빛 표정을 거두고 하나둘 저마다의 색을 띠기 시작했다. 거뭇한 붉은색, 오래된 구리 같은 빛깔의 주황색, 쿰쿰한 노란색, 새파랗게 질린 적록색. 주춤주춤 춤에 가닿는 시간이 지나고 흐른 뒤, 나는 나무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췄다. 나는 나무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나무 곁에 웅숭그리고 있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기도 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단 한 가지 사실은 ‘우리 모두 나무 아래 함께 있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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