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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거두어 한곳에 모으다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18화. 거두어 한곳에 모으다


춤에 관한 글을 쓰는 동안, 문장이 흩어지다가 영영 가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나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럴 땐 내가 지었지만 참 코너 이름 한번 기똥차게 지었구나 싶다.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가만히 있으면 모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섬주섬 줍듯 모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모은’ 문장들의 모음. ‘그러모으다’의 사전적 정의는 ‘거두어 한곳에 모으다’ 이다. 그러니까 춤을 추다 떠오른 인상, 장면, 감각, 고민 등을 일단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몿진>의 지면 중 한 곳에 가지런히 모으기 위해서는. 

조바심의 근원에는 혹여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공연을 앞둔 지난가을, 발목을 크게 삐-끗한 이후로 나는 춤추지 못한/않는 사람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그 생각을 좀처럼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이 코너는 춤 세계의 뒤안길로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게 사라지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면 좀 나아졌다. 

발목 재활 운동을 시작한 후,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무리가 없어지자 두려움은 점차 구체적인 모양을 갖췄다. 춤추는 나 자신을 그려보면 춤출 때의 활기나 기쁨 같은 것보단, 발목을 삐-끗하던 순간 찌릿하고 세계의 문이 닫히는 듯했던 고통이 먼저 떠올랐다. 춤추며 땅을 구르고 멀리 뛰어오르던 나의 발은 해방감이나 자유로움 같은 추상적 감각은 제쳐두고, 어긋난 방향으로 꺾였을 때의 통증을 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꾸만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던 중, 인터뷰로 이어진 인연으로 어느 춤 워크샵에 초대받게 되었다. 오래전 참여해 본 적 있는 워크샵이었다. 워크샵을 이끄는 무용수나 연주자 중 눈에 익은 얼굴들도 있었다. 반면, 참여자는 모두 새로운 이들이었고, 함께 연습하게 될 춤 역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친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분위기. 발목에 대한 걱정, 춤에 관한 고민, 달라진 몸에 대한 미련 따위를 떨쳐 버리고 다시 시작하기에 적당해 보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그동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한 번에 싸악 날려 버릴 새로운 복병을 만나게 되는데… 거기에는… 거울이 있었다! 

그렇다. 지난 1년간 춤을 연습해 오던 작은 지하 스튜디오에는 거울이 없었다. 이전 공간에는 있었는데 독립해 스튜디오를 꾸리면서 예산 부족으로 거울을 달지 못했다는 풍문도 있고, 부러 거울을 달지 않은 거라는 후문도 있었다. 거울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춤을 연습하다가, 처음으로 이 지하 스튜디오에서 춤추던 날을 기억한다. 의지할 곳이 사라진 시선은 꽤 오랫동안 허둥댔다. 몇 주가 흐른 뒤, 나는 춤을 안내하는 안무가의 몸이나 함께 춤추던 이들 특유의 움직임을 전보다 빠르게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춤을 추는 내 몸을 바라보지 않게 되자, 그 여백은 다른 상상으로 채워졌다. 춤을 추는 동안 나는 춤추는 내가 아니라 저 멀리 가본 적 없는 곳에서 해본 적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차츰차츰 흰 바탕에 아무런 무늬도 없는 벽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더는 거울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난 1년여간 춤을 배우거나 연습하면서 나는 춤추는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거울 앞에서 춤추는 일은 몹시 어색했다. 겨우 거울 대신 타인이나 허공이나 상상 속 존재에게 시선을 내맡기는 것이 익숙해졌는데, 눈을 뜨니 갑자기 눈앞에 내가 있었다. 무용수와 연주자와 참여자의 움직임을 쫓으면서도 힐끔힐끔 거울에 비친 내 움직임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 시선이 허둥댔다. 새로운 안무를 배울 때는 동작을 소개하는 무용수의 몸을 바라볼지, 거울에 비친 무용수의 몸을 바라볼지, 그걸 버둥버둥 따라 하는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볼지 정하지 못해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내가 오랫동안 상상해온 나 자신과 달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몸은 훨씬 굳어 있었고 때때로 발목의 움직임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거기에는 춤추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다시 춤추는 나를 바라보기로 한다. 바지런히 거두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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