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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종관 감독 – 시선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매일같이 각종 영상이 쏟아진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액정, 쫙 펼친 책만 한 크기의 노트북 모니터, 한쪽 벽면을 차지한 스크린 위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를 응시한다. 만질 수는 없지만 느끼려고 애쓴다. 화면 너머에 머무는 서로의 존재를. 움직이고 소리 내는 상대방을 바라봄으로써 간신히 서로에게 가닿는다.?

코로나19는 공간과 접촉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동안 익숙했던 만남의 자리, 일의 자리, 배움의 자리, 공연의 자리, 생의 자리가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자리를 잃어버린 시간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모든 행위와 접촉이 비디오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경유해 이뤄졌다.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공간이 겨우 제 몫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소리소문없이 공중분해 되기도 했다.?

춤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큰 규모의 무용 축제부터 소규모 무용단의 프로젝트까지 모든 공연은 운 좋게 코로나19 확산세를 피했을 때만 겨우 열렸다. 그마저도 불가능할 땐 온라인 영상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 탓에 올해는 관객으로도, 참여자로도 생경한 경험이 많았다. 상반기에 온라인으로 관람한 공연을 하반기에 오프라인에서 다시 봤다. 분명 주요 핵심과 흐름을 알고 있었는데도, 소극장에서 본 공연은 스크린으로 본 공연과 다르게 느껴졌다. 암전된 무대, 한 자리 건너뛰고 앉아 있는 옆 관객의 존재, 무용수의 숨소리. 무엇보다 연주자에서 무용수로, 무용수에서 옆 관객으로, 은밀하게 이동하는 나의 눈동자에는 ‘시선의 자유로움’이 있었다. 무관중 무대 위에서 카메라와 촬영팀을 관객이라고 상상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나중에 편집된 영상은 공연의 기획 의도와 다소 어긋나있었다. 분명 하나의 작업이었는데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다.?

쏟아지는 영상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무엇은 어떻게 보이도록 의도되었는가? 누구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영상 작업이 다양하고 친숙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고 필수가 되어버린 지금, 움직이는 영상을 기반으로 창작 작업을 해온 백종관 감독을 만났다. 명함에는 필름 메이커(Filmmaker)와 비주얼 아티스트(Visual Artist)라는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나는 장면을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것보다 수집하는 것을 선호한다. 수집한 사운드와 이미지를 재맥락화 하는 작업을 해왔다. 연극, 건축 등 다양한 장르의 분들과 작업을 함께 해 왔고, 무용 공연을 촬영하고 그 푸티지를 다르게 활용하는 것도 그러한 작법의 하나이다. 현재는 무용 학교에서, 코로나19 시대에 무용 교육이 어떠한 형태로 가능한지를 묻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현재 작업 중인 무용 다큐 스틸컷 ⓒ백종관


백종관 감독의 작업은 거칠게는 다큐멘터리, 나아가서는 실험 영화라고 분류되어 왔다. 백종관 감독의 홈페이지 소개 글 중 ‘영화의 확장 그리고 몸의 확장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확장’이라는 단어로 연결된 영화와 몸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실험영화 필드에서는 1960년대부터 ‘확장’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 되기 시작했고 70년대에는 ‘확장 영화’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 영화가 내러티브의 전달에만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다양한 소재와 매체를 통해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용적 측면의 확장뿐 아니라, 영화의 상영과 관람 방식 등 전체적인 시스템을 다르게 바꿔보는 것도 그 확장에 속한다.



백종관 감독은 2011년까지 회사에 다니다가 퇴사했다. 영화 작업을 하고 싶은 동기가 컸지만, 야근과 스트레스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빨리 몸을 회복하고 싶어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우연히 정영두 안무가가 진행하는 댄스 워크샵을 만났다. 워크샵은 단순 교육으로 끝나지 않고 공연으로 이어졌다. 워크샵을 수료한 이들 중 일부는 <먼저 생각하는 자-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는 무용 작품의 트라이아웃 형식의 공연에 참여했다. 무용 훈련은 굉장히 힘들었지만 3~4개월간 집중하면서 몸의 확장을 경험했다.

퇴사할 즈음에는 말 그래도 몸이 썩은 것 같았다. 몸을 정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다. 프로페셔널한 공연의 트라이아웃에 참여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기획의 공연이었던 것 같다. 경험이 없는 일반인을 그렇게 큰 무대에 세우다니.


<먼저 생각하는 자- 프로메테우스의 불> 무용 작품 중


무용 공연을 이전에도 가끔 보긴 했지만 직접 움직임을 경험해보고 무대에서 서보니 인식의 폭이 달라졌다. 보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대상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보여지는 대상으로.

확장을 여러 포인트에 대입 시켜 볼 수 있는데, 무용을 했을 때 경험했던 확장은 나의 몸이 키, 무게, 이런 것에 갇혀 있지 않고 그 이상 뻗어 나가는 느낌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안무를 제대로 수행하면, 일종의 기운이 형성되고. 그 자체로도 좋지만 여럿이 함께 춤출 때는 서로가 그 기운을 느끼게 된다. 그게 공간 안에서 확장되고, 다시 서로의 몸이 확장되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몸을 움직이는 공연이나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담을 때도,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흐름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은 감각의 확장이기도 하다. 이 경험을 화면을 뚫고 영상으로 기록된 춤이 전달할 수 있을까? 한 번 시현되고 나면 두 번 다시 동일하게 반복할 수 없는 움직임과 이미 공중으로 사라져버린 안무를 움직이는 이미지, 즉 영상으로 포착해 영원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기록하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무용하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틀 테면 조형 예술을 떠올려보자. 조각은 계속 여기에 있다. 물질성을 가진 채로. 영상 혹은 영화 역시 조형 예술에 비하면 물질성을 이야기하기 애매한 면이 있다. 물론 반복해서 재생할 수는 있지만, 제2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영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그나마 지지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던 물실성은 더 약화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영상이나 영화 자체도 휘발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공연 예술, 무용 예술의 운명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떤 환경에서 상영하는가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그게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인터뷰 중


춤과 영상은 휘발되는 움직임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얼핏 동질감이 느껴지지만, 전혀 다른 장르의 예술이기도 하다. 안무가의 언어와 영상 창작자의 언어는 분명 다를 터. 영상의 언어에 방점을 찍고 작업해온 백종관 감독은 휘발되는 두 세계를 어떻게 오가고 있을까.

근원적으로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계속해서 발견하려고 한다. 일반적인 기록물이라면 쓰지 않을 앵글, 샷 사이즈, 테이크 길이 등을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일 때가 있다. 가급적 인위적 연출을 하지 않는다. 억지로 중간에 ‘이렇게 움직여 주세요’는 안 한다. 오롯이 하나의 현상, 공연, 사건 안에 더 무한한 세부와 아름다운 유형이 넘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걸 내가 포착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 그래서 조금 더 오래 보고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려고 한다.



확장되는 세계 속, 물리적 거리는 좁아지고 있는 요즘. 디지털이라는 무대는 이미 존재했지만, 팬데믹 이후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듯 하다. 이전부터 무용 공연을 촬영한 영상, 춤을 소재로 한 영상 등은 많았지만 이제 우리는 영상 연출자의 시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를 통과 중이다.

예를 들어 댄스 필름을 만든다고 하면 단순히 공연을 기록하는 것과는 다르다. 공연장에서 무용을 보면 볼 수 있는 게 굉장히 다양하다. 어딘가에 집중해서 볼 수도 있고, 순간적으로 전체를 볼 수도 있고. 근데 영상 작품일 경우에는 프레임 안에 보여지는 것만 볼 수 있다. 관객이 영상을 보기 전 이미 많은 부분이 디렉팅 된 것들이다. 안무가의 주제 의식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 공연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빛의 방향, 클로즈업, 연결을 어떻게 할지 완전히 다르게 사유해야 한다.



반면, 공연장에서는 감각할 수 없었던 시공간을 영상 작품은 새로운 시선으로 주목하게 하기도 한다. 백종관 감독의 <극장전개(Unfold the Theater), 2014>라는 작품은 무대의 최상부 공간인 그리드, 객석 상부의 기계실 등 관객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극장의 내밀한 공간을 무용수와 함께 꺼내 놓는다. ‘춤이 시작되면 프레임들이 켜켜이 쌓이고 영화도 몸을 갖춘다’라는 작품 설명의 마지막 문장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라는 처음의 질문으로 나를 되돌려 놓는다.

백종관 감독의 <극장전개(Unfold the Theater), 2014>

작년에 했던 개인전 제목이 <파리대왕독본>, 영어로는 Fly on the Eye 였다. 관찰자적 다큐멘터리 양식을 일컫는 FLY-ON-THE-WALL DOCUMENTARY라는 용어에서 착안한 면도 있다. 벽에 붙어 가만히 대상을 바라보는 파리처럼 나를 위치시킨 적이 있다. 파리의 시선은 무엇을 향할까? 그 파리는 또 누군가에게 바라봄의 대상이 된다. 파리는 어디에 붙어 있는가. 관찰자는 어디에 있고, 시선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무엇을 보는지, 그것을 어떤 태도로 보는지, 그런 질문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바라보는 위치의 이동. 바라보던 자가 바라봄의 대상이 되었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백종관 감독의 몸에 쌓여 있는 듯했다.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다 잠시 멈춰서 화면 속 움직이는 존재의 몸에 관한 아주 구체적인 상상을 떠올려본다. 만약 모니터 안의 당신이, 한 편의 공연을 만들고 있는 당신이, 몸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당신이, 나처럼 잠시 멈춰서 눈을 아주 동그랗게 뜨고 화면 바깥의 나를 바라본다면. 한순간, 주체였던 내가 대상이 된다면 우리의 관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진행|보코, 소영
기록|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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