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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꼬리 ‘춤을 추는 나는 엎질러진 물이다’

 

춤을 추는 나는 엎질러진 물이다

 

꼬리는 어느날 혜성처럼 나타났다. ‘혜성처럼’이라는 수식어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춤을 추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언젠가부터 꼬리가 옆에서 춤추고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쓰고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수식어는 꼬리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 꼬리와 내가 춤추다 만난 공간인 ‘쿨레칸 에스쁘아’라는 춤 커뮤니티의 분위기이자 특성도 한몫했다. 일단 초면에 서로의 본명이나, 나이나, 직업을 굳이 묻지 않는다. 그러기로 꼭꼭 약속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대신 각자가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서로를 칭한다. 매주 모여서 춤을 추거나 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안무는 어떤 의미인지, 이 동작은 왜 더 힘든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몇 개월 동안 꼬리와 나는 함께 춤을 춰왔다. 아무것도 묻거나 답하지 않은채로. 묻지 않으니 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웹진 <몿>의 인터뷰 코너를 기획하면서부터이다. 인터뷰를 빌미 삼아 그동안 꼬리에게 묻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같은 공간에서 춤을 추던 꼬리도 나랑 비슷한 느낌의 시간을 보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쿨레칸 에스쁘아를 소개할 때마다 항상 하는 얘기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춤추는 법도 배우지만, 춤출 때 태도나 마음을 잘 돌보는 게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경쟁하기 위한 곳도 아니고. 정상을 찍기 위해 나를 두드려 팰 필요도 없으니까. 춤을 배우는 공간은 맞는데 학원은 아닌거지. 근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이해를 잘 못 하더라고.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가 매주 만나 춤을 추는 이유는 단순하다. 춤을 추고 싶었고, 춤을 출 수 있었으니까. 꼬리가 본격적으로 춤추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 장면이 궁금해졌다.


2016년 레인보우 페스티벌에서 쿨레칸을 처음 봤는데 너무 신나는 거야. 그래서 막 뛰쳐나가서 춤추고 그랬어. 사람들이랑 마주 보고 추는 것도 너무 좋았고. 실은 어릴 때 6년 정도 발레를 배워본 적이 있긴 한데 그땐 되려 몹시 치열한 느낌이었거든. 얼마나 ‘완벽한가’가 ‘잘한다’의 기준이 되니까. 근데 페스티벌에서는 자신의 몸에 맞춰서 춤을 추는 거야. 그게 너무 좋더라고.

 

그렇게 쿨레칸을 만난 후 꼬리는 아프로현대무용 워크샵을 찾았다. 막상 제대로 배워보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어쩐지 그때부터 몸은 마음처럼 순조롭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사실이 처음에 너무너무(강조) 충격적이었어. 이건 진짜 춤을 춰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충격 같아. 워크샵에서 안무가인 엠마가 ‘적어도 자신의 발이 어디를 딛고 서 있고, 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말을 했었는데, 여태까지 내가 그걸 모르고 살았다는 게 놀라웠어. 평소에 몸을 안 쓰던 사람이라 더 힘들었던 것도 물론 있었을 테지만. 사람들은 소리 내고 환호성도 치면서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잘 안 되는 거야. 내 몸이 위축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도 같이 온 거지.

 

충격을 받은 꼬리는 잠시 ‘쿨레칸 에스쁘아’와 거리를 두었다.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났던 것처럼 자취 없이 조용하게. 뒤늦게야 물어보니 머리만 쓰던 사람으로서 몸을 쓰면서 발견하게 되는 부족함을 체감했고, 시간을 다지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포기나 체념보단 더 잘 가까워지기 위해 자의로 선택한 임시 거리 두기 같은 것. 때때로 삶에서는 지금이 내가 원하는 바로 그 타이밍이 아님을 인정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땐 일단 지금 당장은 춤출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다시 춤추러 꼭 오겠다는 마음을 먹고 일상으로 돌아 갔지. 요가도 매일 꾸준히 하고 기초 체력을 기르려고 애썼어. 나는 평소에 운동해야겠다는 마음을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야(웃음). 춤추기 위해서 난생 처음 몸 키우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니까.

 

거리를 좁힐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꼬리는 진짜로 돌아왔다. 마침 쿨레칸 에스쁘아 팀은 <나 춤춘다! JE DANSE COMME JE SUIS>라는 제목으로 거리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각자 자기 자신이 되어보는 것,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춤추는 것이 퍼포먼스의 주요 테마였다.


공연 준비 맨 첫 시간에 각자 솔로 안무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가 있었어. 숙제를 듣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들한테 전화했지. ‘얘들아 나 어떡해? 춤 배우러 온 사람한테 춤을 짜오래?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하고 도망갈까?’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결국 처음 선보이는 날, 동작은 못 하고 말로만 설명했어. 근데 각자 고민해 온 안무를 보여주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말로만 겨우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실력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보여주고 있구나. 진짜 부끄러운 건 춤을 못 추는 게 아니라 자신감 있게 나를 보여주지 못한 거구나.

 

가운데 연두색 옷을 입고 군무를 연습중인 꼬리

이런 고민 끝에 발전된 꼬리의 솔로 안무 주제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꼬리의 동작을 보면서 서툴고 느릿한 몸짓이 공간과 속도를 획득하면 얼마나 무한히 커질 수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춤을 춘다는 건 공간이 이전과 다르게 확장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공감각은 꼬리 일상의 모양새도 바꿔놓았다.


평소 일기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쓰고 그리는 건 모두 탁자만큼의 공간, 딱 그만큼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거잖아. 의자에 앉아서 이 만큼만의 공간을 쓰면서. 춤을 추면서 표현할 수 있는 게 넓어진다는 걸 깨달았어. 덕분에 그림 그리는 공간도 넓어지고, 캔버스도 커지고, 과감한 붓질에 대한 욕구도 생기고.

 

일기 쓰고 그림 그리고 춤추는 것 말고도 꼬리의 일상은 다양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이수한 이후 갈등 중재 프로그램의 핫라인, 불꽃페미액션, 프로젝트 캠프의 성평등 위원회 등의 공간에서 활동하고 쉬는 날에는 알바를 하러 간다. 페미니스트 드로잉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작업실도 구했다.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수집하고 창작하는 <모난돌 프로젝트>도 꾸리고 있다.

 

나는 비건이자, 퀴어이자, 페미니스트인데… 이것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해 활동하면서 얘기하고 싶었어. 예를 들면 비인간 동물이 당하고 있는 여성성 착취에 관한 것이라든지. 그런 고민을 하다가 <모난돌 프로젝트>라는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고. 이렇게 평소에 사회 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하다 보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 지금까지는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에너지를 채우는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춤은 정말 다른 것 같아. 체력은 더 많이 쓰는데 다 추고 나면 에너지가 오히려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무기력하거나 침체될 때마다 춤추는 시간이 나를 다시 위로 올려주는 것만 같아.

 

인터뷰 당일, 꼬리는 ‘동물해방물결’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꼬리의 고민을 듣다 보니 언젠가 리허설 준비 날, 꼬리가 싸 온 도시락을 맛본 날이 생각났다. 나도 비육식을 하고 있어서 채소로만 간소하게 이루어진 꼬리의 반찬들이 퍽 반갑게 느껴졌더랬다. 내가 생각한 대로 사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삶을 시작하는 것. 말은 진부할 정도로 쉽지만, 실천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현생의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춤을 추기 위해 잠시 춤을 멈추고 몸을 돌보고 돌아온 꼬리. 이제 춤을 추는 자신을 스스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춤을 추는 나는 엎질러진 물 같아. 지금 질문을 받고 그냥 떠오른 거긴 한데(웃음). 어떤 틀이나 모양에 맞춰야 한다는 것보단 정제되지 않는 동작들, 아직까진 그런 게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져. 자기 긍정일 수도 있지만.

 

꼬리의 이름을 부르고 질문을 던지다 보니 꼬리가 연결해 온 삶의 접점들이 두루뭉술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모든 질문에 꼬리는 신중히 생각을 정리하고 약간 수줍은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말을 고르는 꼬리의 머릿속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듯 생각이 지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자취를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는 꼬리. 태양계를 구성하는 천체 중 하나인 실제 혜성에도 꼬리가 있다고 한다. ‘나 자신’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으로 활동과 의식의 공간을 확장하고 있는 꼬리의 다음 꼬리가 궁금해질 때쯤 인터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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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의 그림 ‘엎질러진 물’



 

진행 | 보코 만세
기록 | 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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