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현 ‘나를 확 내려 놓을 수 있는 시간’
나를 확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
일정 정도 규모의 사람들이 모이면, 단숨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부류가 어디에든 꼭 있다. 이들은 대체로 넘쳐 흐르는 장난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쉴 틈 없이 주변 사람들을 웃긴다. 유년 시절 학급마다 그런 애들이 꼭 하나씩 있지 않나. 크게 노력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로 옆 사람을 까르르 배꼽 잡고 넘어가게 만드는 사람. 쿨레칸 에스쁘아에서 만난 종현은 딱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얇은 눈꼬리는 아래를 향한 반달 모양이고,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위를 향한 반달 모양이다. 두 반달을 얼굴 속에 잘 감춰두었다가, 시시 때때로 꺼내서 주변의 긴장을 스르륵 녹여버리는 사람.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요즘 종현이 춤추러 못 나오고 있는데, 웃음의 빈자리가 어쩐지 크게 느껴져서 만남을 청했다.
마침 종현은 서울에 출장 올 일이 있다고 했다. 종현은 평소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춤추러 오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춤 워크샵이 끝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옷을 갈아 입고 나선다. 갈 길이 먼 걸 아니까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붙잡지 못한다. 종현의 직장은 충북 진천에 있는데, 주 3일은 판교로 출근한다고 했다. 현재 개발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대학원은 수원에 있고, 거주지는 용인 죽전이다. 지난주에는 필리핀에 있었고, 내일은 일본으로 출국한다고 했다. 글로벌하게 도시 사이를 가로지르며 사는 종현과 간신히 운 좋게 을지로의 작은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았다. 본격적인 인터뷰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종현이 먼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입을 뗐다.
근데 몿진 이거 왜 해? 춤 웹진의 목적이 뭐야?
어…그게.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시작하게 될 줄이야. 한 방 먹었다. 깜빡 잊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며 장난치기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평소에 관찰력이 얼마나 좋은지를. 아직 목적이 명확하진 않다, 만들어 가는 중이다, 구성원 4명이 춤을 매개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실험 중이다, 나는 정돈되지 못한 문장들로 주절주절 간신히 답했다. 초반부터 간파당한 것 같았다. 싸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종현이 좀 더 명확한 문장으로 코멘트를 남겼다.
역시. 내가 봤을 때 뭔가 구체적인 타겟이 있거나, 정확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근데 또 이렇게 순수한 즐거움이나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게 쿨레칸스럽다고 생각했어.
맞다. 우리 즐겁자고 하는 일이었지. 새삼스럽게 머릿속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다. 뭔가를 들킨 것 같은 마음도 진정된다. 멀리서 춤추러 오는 종현에게도 춤추는 행위는 선명한 기쁨의 종류였던 걸까.
친구가 나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해줘서 시작하게 되었어. 2016년엔가. 그때는 직장은 서울이었는데 칼퇴가 어려울 때는 춤이 너무 재미있어서 밥 먹고 춤추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새벽까지 일한 적도 있어. 이후에 진천으로 이직했는데. 진천에서 연습실이 있는 홍대랑 편도로만 2시간 20분 정도 걸려. 시작 시각을 못 맞추고 오는 날엔 정작 춤 연습은 1시간 정도밖에 못 하고 다시 집에 돌아가면 자정이 될 때도 있고. 다들 나한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이렇게 하는 게 가치가 없다면 하지 않았겠지. 가치가 있거든.
바로 그거다. 오늘의 인터뷰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 종현에게는 대체 이 가치가 뭐길래 고작 일주일에 1시간 남짓한 시간 춤을 추기 위해 먼 거리를 힘내서 달려왔던 걸까.
나는 평소에 재미있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춤을 추면서는 그런 눈치가 보이지 않더라고. 고함 지르니까 흥도 나고. 다른 사람들도 소리 지르긴 하는데 내가 좀 크게 지르지(웃음). 춤을 출 때는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나는 춤을 못 춘다. 몸치이고 박치. 그치만 이걸 못해도 되는 거고, 여기 잘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내 느낌 내 마음대로 해도 되고 무조건 따라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1:1로 추는 시간이 제일 좋아. 확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 연습실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 벗을 때부터 생각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이 시간만큼은 나를 내려놓자.
와. 나랑 반대다. 춤의 세계에 처음 진입했을 때 나는 무조건 따라 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힘들었다. 더 힘든 건 무조건 열심히 따라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버벅대는 것이 부끄럽게만 느껴지는 시절을 통과한 나로서는 종현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난 관심 받는 걸 좋아해.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신나고. 예전에 아프리카의 춤을 춘다고 언론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기사가 사내 게시판에 올라간거야. 식당에서 사람들이 막 나를 알아보는데 주목 받으니까 좋더라고. 그리고 만딩고 댄스 고유의 특징들이 있잖아. 만딩고 리듬이랑 춤의 원초적인 분위기나 자기 느낌대로 하는 즉흥성 같은 것들. 이런 게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예를 들어 유혹하는 춤을 배우면, 내가 동작을 완벽하게 하진 못해도 어떻게 유혹할 수 있지, 이런 걸 떠올리며 내 맘대로 해보는 거지. 나는 놀러 가는 거다. 이런 생각으로 춤추러 가니까.
웃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 같은 걸까. 주목 받는 것을 어느 정도 즐긴다는 점. 같은 춤을 겪어도 이렇게나 다르다. 만딩고 댄스 특유의 것들이 너무 좋으면서도 나는 그 즉흥성과 ‘못해도 괜찮다’는 알을 깨고 나오는데 종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했다. 종현은 자신을 몸치이자 박치라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계속 즐겁게 춤출 수 있을까.
나는 느려. 남들은 쉽게 기억하는 걸 난 잘 못 해. 일 할 때도 공부할 때도 남들보다 두 세배는 더 걸리는 듯. 춤도 마찬가지로 몸이 기억해야잖아. 그래서 스트레스가 물론 없을 순 없겠지만 그냥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버려. 나보고 사람들이 춤을 더 잘 춰 볼 마음이 없어 보인다고 얘기하는데. 맞아. 나는 잘할 생각은 없어. 스트레스받으면 춤을 안 추고 싶어질 것 같거든.
이렇게 말했지만 종현은 <나 춤춘다! JE DANSE COMME JE SUIS> 거리 퍼포먼스에서 솔로 안무도 맡았다. 양복을 쫙 빼입고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웃음과 허탈함의 미묘한 경계를 오가는 종현의 퍼포먼스는 당시 직장인의 애환을 표현한 안무라며 거리의 직장인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근데 공연 준비할 때는 조금 스트레스받긴 하더라. 나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내가 잘못하면 민폐니까. 그 솔로 부분을 준비하던 날도 갑자기 해보라고 시켜서 한 건데. 실은 그날 회사에서 엄청 힘들었거든. 내 상태가 딱 그랬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 잘한다의 고민이 없었으니까 가능했던 것도 있는 것 같아. 그냥 나는 춤출 때는 내려놓는 사람이라서.
일순 웃음으로 주변의 공기를 가볍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다운 답변이었다. 나를 내려놓는 것. 가끔 더 멀리 나아가고 싶은 욕심은 나를 현재에 너무 꽉 붙들어 매기도 한다. 인터뷰 내내 평소랑 달리 웃음기 쏙 빼고 답하던 종현은 마지막까지 진지하게 덧붙였다.
내가 왜 에스쁘아에서 춤을 추고 싶은지. 인터뷰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여태 춤을 잘 출 생각이 없다고 했으면서도…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아예 없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네. 그래도 여기에서는 내가 엄청 잘 안 해도 함께할 수 있는 느낌. 나를 끼워줘서 고맙고 좋았어. 다시 빨리 복귀해서 춤을 춰야겠다. ‘그냥’ 말고 ‘자~알’.
누군가에게 춤 연습 후 어둠 속에서 엠마가 읽어주는 시가 평온한 시간을 선사했다면(진솔 인터뷰), 다른 누군가는 그 시간에 시를 읽는 엠마의 목소리와 어투를 관찰한다. 잘 기억해두었다가 모두에게 웃음이 필요한 순간 재빠르게 흉내 낸다. 종현의 웃음 덕분에 바짝 빳빳하게 힘이 들어간 몸이 부드러워진다. 그의 빈자리를 재촉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진행 | 보코 만세
기록 | 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