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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영 ‘풍요로운 토양에서 춤을 만나길’

인터뷰
소영 “풍요로운 토양에서 춤을 만나길”

춤을 추러 가면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모두를 반겨주는 이가 있다. 현재 안무가 엠마누엘 사누Emmanuel Sanou(이하 엠마)가 만든 무용 단체인 쿨레칸에서 기획자로 활동하며, 창작 공간인 봉쿠라지Bon Courage를 운영하고 있는 소영이다. 몿진에서는 <아프리카 만딩고 춤 안내서>를 연재하고 있다. 유난히 피곤한 날, 스트레스가 빽빽하게 쌓이는 날, 와르르 하루가 무너지는 것 같은 날이 한 번쯤은 있을 법도 한데 내가 만난 소영은 몇 년째 마주칠 때마다 싱글벙글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아무리 긍정적인 성정을 타고나도 그렇지).
불행의 화살이 소영만 비껴가는 걸까 (그럴 리가, 그렇다면 비법 좀).
춤추러 온 사람들 포기하지 말라는 기획자의 큰 그림인걸까 (이게 애쓴다고 과연 되는 일인가).

맑고 투명한 기운의 근원지를 이번에는 기필코 탐구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소영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대뜸 ‘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다짜고짜 시작할 순 없으니, 일단 춤과의 인연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쿨레칸의 창대한 출발 이야기가 등장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영은 멕시코 여행기를 꺼냈다.?

우연히 멕시코를 한 달 정도 여행할 기회가 있었어. 그게 내 삶을 확 바꾼 계기야. 여행 전 대학교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난 상담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었거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 연애 상담해주면서 기른 능력이랄까. 하하. 친구들도 내가 당연히 대학원 갈 거라고 말했고, 나도 스스로를 얌전하고 평범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겼지.



대체 멕시코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일단 여행 전까지 나는 반바지 입는 걸 무척 싫어했었다. 사람들이 악의 없이 장난친다고들 하지만, 남의 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잖아. 나도 내 다리가 코끼리 다리 같고 그게 못나 보였거든. 그러다가 여행에서 만난 친구가 무릎까지 길게 내려온 내 바지를 보더니, 할머니 같다고 놀리면서 핫팬츠를 선물해주는 거야. 난생처음 입어봤는데 이게 뭐지? 다 벗은 느낌인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 또 하나는 멕시코의 작은 도시에서 만난 내 또래의 친구 말인데. 광장에 살사 음악이 들리니까 나에게 춤을 알려줬어. 되게 잘 춘다고 했더니, 할머니랑 이모한테 배웠다는 거야. 그 한마디가 오래 남더라고.



멕시코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소영의 시선을 바꿔 놓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거울을 봤다. 여전히 자신의 몸은 별반 달라진 게 없었지만, 코끼리 다리는 더 이상 뚱뚱하게 보이지 않았다. 소영은 그게 ‘신기하고 감사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거리로 나갔다. 아스팔트나 휴대폰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들의 표정,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온통 회색빛 같았다. 상담을 통한 개인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좀 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사 춤을 추던 아이의 말을 기억하며, 축제를 키워드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음악 페스티벌 기획단 활동을 시작으로 진도에서는 강강술래를 전수 받아서 놀이 문화로 바꾸는 공연에 참여했어. 낯선 사람들이랑 노는 건데도 춤을 추는 사람들끼리 끈끈해지고. 맺고 푸는 과정이 너무 즐겁더라. 그러다가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팀을  만나게 됐지. 



마침 음악 페스티벌 일에 대한 회의감도 있던 터였다. 거대한 축제의 장이 점차 소비적으로 변모하고, 상상했던 축제와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우연히 초대 받아 간 춘천마임축제에서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팀을 만났고, 함께 새벽까지 실컷 춤을 췄다.? ?

날을 꼴딱 새고 함께 춤춘 사람들과 소양강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잘 놀면 한 해 잘 살 수 있겠구나. 크게 노는 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구나.



에스꼴라 알레그리아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 아티스트도 만나게 되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무용수 마리아Maria Agnes였다. 마리아는 당시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경제적으로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에스꼴라 알레그리아에서 마리아의 빈 시간에 춤 워크샵을 열었어. 나는 홍보물을 만들고 참여자를 모집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워크샵에도 참여했었는데.  워크샵에도 참여했었는데. 춤을 추다 보니 내 몸이 홍학이 되기도 하고 호랑이처럼 움직이기도 하는거야. 어디선가 ‘인간은 동물인 걸 거부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춤추면서 느낀 동물적인 움직임이 나에겐 큰 해방감으로 다가오더라.




워크샵에는 참여자가 많지 않았다. 박물관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다른 곳에서 수업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공개적으로 홍보를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마리아가 무릎을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리아 대신 엠마가 워크샵을 진행하기로 했다. 엠마의 춤은 마리아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부드럽고 편안했다. 소영과 엠마의 인연도 부드럽게 이어져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워크샵은 오래가지 못했다. 참관하고 싶다며 워크샵을 찾아온 중년 남성 둘이 워크샵 장면을 촬영해 간 직후의 일이다.?

어느 여름날이었는데 엠마 얼굴이 너무 안 좋은 거야. 점점 마르고 피곤해보이고. 엠마를 통해서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사태를 더 자세히 알게 되기 시작했어.



엠마 역시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에 고용된 상태였고, 매일 천 명이 넘는 방문자들을 위해 기계처럼 공연을 반복한다고 했다. 어느 날 박물관으로부터 자기네 사람들 데려가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다. 소영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그럼 당신네도 돈 똑바로 주라고.’

당시 포천 사태를 겪는 동안 가까운 사람들 아니면 엠마와 연인 관계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았어.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며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무수하게 얽혀있는 나만의 동기와 욕구가 분명 있는데. 단순히 여자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 일이 러브스토리로 곡해되는 게 싫었거든. 처음에는 기획 자체보다는 매니지먼트의 역할이 더 컸어. 매니저 일의 특성상 수동적인 역할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과 겹치면서 열 받는 순간들도 많았고.



아티스트가 드러나는 직업이라면, 기획자는 뒤에서 보이지 않는 모든 일을 한다.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지만, 사적 관계를 언급하는 순간 맥락이 자주 삭제되었다.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사태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전, 소영은 페미니즘 공부를 하던 중이었고 여성 단체의 활동가 삶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페미니즘은 멕시코 여행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힘이 되었으니까.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사태는 연인 관계였던 엠마의 일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구체적인 실천을 고민하던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소영의 일이기도 했다.?

포천 사태는 나의 첫 번째 투쟁이야. 엠마의 상황도 있었지만 정작 불씨를 지폈던 건 나의 첫 번째 춤 선생님인 마리아였어. 무릎 부상 소식 후 연락 두절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어. 전화 온 곳으로 달려가 보니 어두컴컴하고 허름한 집에 마리아 혼자 있더라고. 무릎이 다쳐서 춤을 못추는 마리아에게 박물관은 악기를 연주하라고 시켰다가, 나중엔 아프리카인 조각상 옆에서 살아 있는 거북이를 들고 조각처럼 종일 있으라고 했데. 



그런 마리아를 보고 박물관에 온 한 아이가 말했다. “와, 살아있는 아프리카 사람이다.” 마리아는 더 여기 있겠다가는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물관을 뛰쳐나왔다. 그 이야기를 듣던 소영은 치가 떨렸다.

한다고 나름 열심히 공부도 했지만, 내 시선 역시 남성주도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 나의 시선도 백인의 눈에 가까웠던 건 거지. 마리아가 겪은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과연 정말 그 사람의 입장에서 서 있을 수 있을까. 스스로 의구심을 던지게 된 사건이기도 해.



소영은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종횡무진 뛰었다. 그동안 문화 기획 일을 하면서 곁다리로 배웠다고 생각한 것들이 도움이 됐다. 활동가들과 함께 언론에 대응하고, 통역을 맡고, 홍보물을 만들었다. 부르키나파소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정한 엠마, 뮤지션 아미두와 함께 쿨레칸을 꾸렸다. 소영에게 춤은 점차 특별한 것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

춤 출 때 이런 표정 어때요


그전까지 춤은 공연이나, 클럽, 이렇게 정해진 장소에서만 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 느낌 있잖아. 아무 데서나 막 춤추는 사람들은 자유로움을 너무 과시하는 것 같고. 오버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도 들고. 엠마는 늘 춤추는 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누구나 출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난 그 말을 당시에는 레토릭처럼 받아들였어. 그래, 그 문화에서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내가 나고 자란 문화는 아니었으니까. 보통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저렇게 말하는 걸까. 약간 의아한 마음으로 그래도 일단 성실히 통역은 했는데. 전달하면서도 내가 백프로 느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기도 있었어. 



엠마의 말이 진심인 건 알았지만, 그 말이 소영의 것이 되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춤을 추는 사람들 속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자리를 열기 위해 고민하면서, 소영은 추상적이었던 문장들이 몸속에 새겨지길 기다렸다.

어느 날 우연히 좀 다른 말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바람에 거리의 나무가 흔들렸거든. 그 움직임에 내가 발을 맞춰서 걷는데, 세상의 리듬이 느껴지더라고. 엠마가 말한 것처럼. 아, 모든 움직임이 춤이 될 수 있구나. 



계속 멈추지 않고 질문하는 힘을 가진 이만이 목도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춤이 소영의 삶으로 들어왔다. 할머니와 이모에게 춤을 배웠다던 멕시코 아이, 즐거운 놀이 같았던 소양강에서의 강강술래,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다고 믿는 엠마와 부르키나파소의 문화. 그동안의 경험이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꿰어져 소영만의 춤의 계보가 되었다. 쿨레칸이라는 구심점을 통해 동심원을 부드럽게 넓혀나가고 싶어졌다. 처음 만났을 때 엠마의 춤이 그랬듯이.?

위계 없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이 춤을 추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어. 내가 그랬듯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좀 더 풍요로운 토양에서 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해. 춤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일이 무용 적인 고민으로도 이어지고. 나는 과연 만딩고 댄스를 어떻게 설명하고 알릴 것인가. 이국적인 색깔이 전부가 아니라, 이 춤과 문화 안에 있는 정신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박물관에 박제 되어 있던 아프리카인의 춤이 아닌, 동등한 사람이자 예술가로서 존재감을 갖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분명 이 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녹여 있고, 이걸 잘 알리고 싶은 게 엠마뿐 아니라 나의 욕망이기도 하니까.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소비되는 것을 경계하게 돼. 그래서 마케팅은 늘 실패하는 것 같지만.



좋은 기획은 기획자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할 때 가장 빛을 발한다. 춤 워크샵 때마다 소영이 활짝 웃을 수 있는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춤을 밖에서 지켜볼 때와 안에서 함께 움직일 때 변하는 에너지를 포착할 수 있는 위치. 그 누구보다 세상 신나 보이는 참여자이자, 동시에 고민을 멈추지 않는 기획자의 자리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사람. 기획자로서 소영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기획은 되게 넓잖아. 큰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도, 소소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도, 임기응변을 잘 하는 것도 기획의 테두리 안에 있고. 문화 기획 일을 하던 초반에 기획자의 ‘장인 정신’에 대해 배운 것도 도움이 됐어. 절반은 정보, 절반은 직감으로 움직이는데, 기획자가 자신의 느낌과 통찰을 키우고 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사실 아티스트라는 말에 어느 정도 거품이 있기도 하잖아. 하나의 공연은 수많은 사람의 공동협업이기도 한데, 천재 아티스트만 부각될 때는 공연 판의 일정 정도 위계도 느껴져. 기획자는 가끔은 칭송받고 또 가끔은 말단에 있기도 한 사람 같아. 근데 엠마와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연주가와 일할 때는 뻥카를 날릴  필요가 없어서 좋더라고. 하하. 진짜였으니까. 



이쯤에서 애독자의 질문을 던졌다. 소영과 가까이에서 일하는 동료이자 절친인 소라의 질문이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애독자의 질문은 늘 열려있다. 춤을 추거나 고민하는 이라면 누구든 인터뷰를 청할 계획이다. 많은 관심과 질문을 환영한다).?

Q. 소영은 아프리카의 문화와 춤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속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소영에게 묻기 전 나는 소라에게 되물었다. 

Q. 소라는 쌈바와 바투카타를 기반으로 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속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소라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에서 나오는 힘. 이미 너무 친해져 버려서 당연히 찾게 되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소영의 대답도 비슷했다.?

너무 삶과 가까워졌기 때문 아닐까. 아프리카 사람처럼 추려고 이 춤을 추는 게 아니니까. 만딩고 춤을 추면서 더 깊은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어. 부르키나파소의 문화가 아프리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보다 자유로운 정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이에 대한 존중, 이런 것들이 나는 이 춤에 있다고 믿어. 누구든 자신을 깊게 이해할수록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테니까. 


나를 이해하는 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적인 정보도 몇 가지 있다. 소영과 엠마는 10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고, 그래서 요즘 몹시 바쁘고, 오래전부터 소영은 아이를 원했다는 것.?

나의 개인적인 욕망과도 연결되지만, 앞으로 더 잘하고 싶은 일은 컬러 프라이드 같은 활동이야.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로, 아이를 원하는 게 맞는 걸까. 한국 사회에서 뻔히 어느 정도는 차별받을 걸 아는데, 너무 힘든 삶을 주는 건 아닐까. 고민도 많이 됐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계속 지금처럼만 살 순 없잖아? 포천 사태를 겪으면서 내가 가진 아주 작은 능력이 모여 해결에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나의 욕망이 사회에 좀 더 좋은 영향을 주길 바라. 



컬러 프라이드는 다문화 배경의 가족이 많은 지역인 이태원의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춤과 퍼레이드 워크샵이다. 당장 차별이 사라지긴 어렵겠지만, 축제의 힘을 믿으며 기획했다. 아이들은 직접 퍼레이드 의상과 노래를 만들고, 춤을 추며 학교 주변을 행진했다. 부모와 이웃의 다정한 지지를 받으면서. 이렇게 크게 외치면서.

Love My Body! 난 세상에서 하나야!



본질적인 힘을 전달하고 싶다는 소영. 인터뷰 말미에 어쩌면 본인은 기획자가 아니라 연구자가 더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던 소영. 춤과, 일과, 관계가 한 자리에 놓여 있는 소영.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구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초반에는 일과 삶을 분리하고 싶었고, 안무가와 남자친구를 분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나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내가 엠마와 사적인 관계로 그저 옹호한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긴밀하게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관계적인 게 분명 컸지. 이제는 결혼하게 되니까, 그럴 바에는 좀 더 적극적인 엠마의 대변인이 되기로 했어. 나와 엠마는 서로의 예술관과 춤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이라고 믿으니까. 지금은 복합적인 삶 속에서 질문을 이어나가며 지내게 되네. 당분간은 이렇게 뭉게뭉게 나아갈 것 같아. 여전히 아프리카의 예술을 한국에 더 많이 소개하고 싶고. 페미니즘이 나에게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힘을 알려줬던 것처럼,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그런 힘을 전하고 싶어. 



소영의 해사한 웃음을 보며 맑은 기운의 종착지를 상상해본다. 춤의 씨앗이 파종된 드넓은 꽃밭에서 많은 이들이 소영과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 웃음 덕분에 의심 많고 매사에 비관적인 현대인이 되어버린 나도 잠시 기대어본다. 그들과 함께 너울너울 덩실덩실 자유로운 몸짓으로 춤을 추면서.?

진행 ㅣ 보코
기록 ㅣ 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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