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의식의 4단계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보코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5화. 의식의 4단계
유난히 동작과 움직임이 버겁게 느껴지던 어느 날, 나는 짝꿍을 붙잡고 쫑알쫑알 변명 같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지난번 안무는 못 해도 엄청나게 신났거든? 근데 이번에 배운 건 나랑은 잘 안 맞는 옷 같아. 좀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하면서도 그 느낌이 몸으로는 왜 안 살아날까?”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춤추러 가던 나를 수개월 지켜보던 짝꿍은 말했다.
“넌 1단계가 지난 게 분명해. 곧 2단계에 접어들 거야.”
친구들과 결성한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던 (현)짝꿍은 나의 (구)우쿨렐레 선생님이었다.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 아저씨가~’로 시작하는 동요를 겨우 한 소절 더듬거리며 연주하던 나에게 완곡의 맛을 선사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연주할 수 있는 플레이 리스트가 늘어나면서 마냥 신이 났다. 하지만 점차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비슷한 구간에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흥미가 급속도로 떨어지는 나를 보며 짝꿍은 악기 연주에는 4단계가 있다고 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처음 1단계에서는 악기가 마치 새롭고 즐거운 놀이처럼 여겨진다. 연주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2단계에 진입한다. 자신이 뭘 못하는지 알게 된다. 일정 수준 이상 기술을 연마하고 나면 3단계에 넘어간다. 아는 기술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자신의 연주에 대해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마지막 4단계에 이르러서야 모든 것을 직감으로 느끼고 즐긴다. 생각과 판단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짝꿍은 이쯤에서 질문을 던졌다.?
“어느 단계가 행복할까?”?
“글쎄… 당연히 4단계? 근데 거긴 살아생전에 갈 수 있긴 한 걸까. 어휴.”
“행복한 상태는 두 단계밖에 없데. 제일 처음과 제일 마지막. 그러니까 행복하게 음악을 하려면 일단 시작한 이상 마지막 단계까지 가는 수밖에 없어.”
놀라운 발견이었다. 열심히 구글링해 본 결과 엔서니 웰링턴Anthony Wellington이라는 유명한 베이시스트의 강연 내용이었다. 엔서니 웰링턴은 연주하면서 ‘의식awareness’에 대해 생각했고, 이를 기준으로 연주자의 의식을 4단계를 나눴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를 각각 무의식적 무지(Unconscious Not Knowing), 의식적 무지(Conscious Now Knowing), 의식적 지식(Conscious Knowing), 무의식적 지식(Unconscious Knowing)이라 칭했다.?
막 춤의 세계에 진입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내가 뭘 출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던 그때. 그저 리듬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생전 안 하던 움직임을 만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흥겹고 신기했던 시간. 이제는 유쾌한 상태에 머물고 싶다는 가벼운 욕구를 넘어서, 내가 가진 에너지와 가능성을 질문해 본다. 내 춤은 지금 어떤 걸 전달하고 있는지.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질문할수록 고달프다. 당분간은 답을 찾지 못한 채 질문만 던지는 사람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몸과 더 빠른 속도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정신 사이에는 오묘한 힘의 균형이 있다. 아주 잠깐 그 균형을 맛보고 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외려 그 균형을 매 순간 품고 싶다는 강박감이 몸의 움직임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슬슬 2단계, 의식적 무지의 압박이 느껴진다. 악기 연주뿐 아니라 모든 일의 단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단 한 가지 일이라도 다음 단계로 도약해보면 인생이 크게 바뀔 텐데.?
엔서니 웰링턴은 이 의식 4단계를 방에 비유했다. 4개의 방이 있는 집이 있다. 하지만 방과 방 사이에는 벽이 없다. 옆방을 쳐다보는 것도 가능하고,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넘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을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용기 내는 한 주와 우물쭈물 망설이는 한 주를 넘나들면서 일단 춤추기를 멈추지 않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