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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머리만 쓰던 사람의 몸 쓰는 이야기 – 보코의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보코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6화. 머리만 쓰던 사람의 몸 쓰는 이야기



최근 몸을 쓰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었다.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책이다. 축구를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작가가 여자 축구 동호회를 찾아가고, 맨몸으로 축구를 경험하며 수집한 이야기들이 생동감 넘치게 펼쳐져 있었다. 평소 축구 커녕 웬만한 스포츠의 문법에도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몸을 쓰기 위해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 여자의 놀람과 환호와 절망의 문장들을 마치 내 이야기처럼 구구절절 공감하며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다 나는 지금 몸을 쓰며 살고 있는가.

20년이 넘는 공교육 시기 동안, 나는 철저히 정숙하고 조신하고 수동적인, 사회가 부여한 여성성을 온몸으로 습득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몸을 쓰는 일, 정확히는 움직임을 통해 배움을 얻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애초에 운동 신경이 타고난 이들만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여겨왔다. 감히 넘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20년 넘게 머리만 쓰며 사는 사람이 되었는데, 머리만 자꾸 굴리다 보니 어느 날 한계선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휘청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감정과 의식이 몸의 용량보다 과부하 된 상태에서 스스로를 몰아치는 날들이 당시의 내 삶이었다. 빠른 속도로 눈앞에 벌어진 일을 처리하며 사는 동안 몸을 자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무척 놀라웠다. 내 안의 불안과 무기력과 조급함을 감당하는 게 몸의 몫이었는데도 말이다. 잠시 멈춰서 머리보다 몸 쓰는 나날을 늘려보는 건 어떨까. 몸을 쓰며 사는 삶은 절대 내 것이 될 리 없다고 맹신했던 나는 우연히 만난 춤과 요가의 세계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하지만 머리만 쓰던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그래서 춤을 추다가도 요가를 하다가도 매일 질문한다.?

나는 왜 춤을 출까? 춤 연습을 하러 가는 매주 수요일 저녁, 퇴근 시간 어김없이 꽉 막혀 있을 버스를 기다리며 묻는다. 전문적인 댄서나 안무가가 되고 싶은 야망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다고 춤추는 순간만이 인생의 전부다, 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말하기엔 아직 낯부끄럽다. 여전히 새로운 움직임을 배우거나 즉흥적인 몸짓을 연습하는 날에는 아직도 내 몸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왜 요가를 할까? 요가 수련을 하러 가는 길,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묻는다. 흔히들 절대적인 고요이자 신성한 에너지와의 합일이 요가의 목표라고 말하곤 한다. 과연 그 상태를 이번 생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오리무중이다. 배운 만큼 나눠야 한다는 뜻에 따라 종종 요가 안내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요가 강사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는 없다. 여전히 몸을 쓰는 일은 나에게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그런데도 매주 규칙적으로 몇 년째 지속하는 나를 보며 주변의 다정한 친구들은 화살 같은 말을 쏘아붙였다.?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갑자기 안 하던 짓을 꾸준히 하며 살다 보니 출처도 알 수 없는 이 문장이 어떻게 몇 세대에 걸쳐 전해지는지 알 것도 같다. 몸을 안 쓰던 사람이 몸을 쓰면 일단 힘들다. 작은 움직임에도 숨이 가쁘고 바들바들 떨려서 자꾸만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짧은 구간을 잘 넘기면 또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특히 나처럼 머리만 썼던 사람일수록 그 쾌감은 배가 된다.?

몸과 호흡에 집중하는 일은 외부로 향해 있던 시선을 손쉽게 내 안으로 돌리게 한다. 잠깐이나마 정신이 맑게 갠다. 생각과 생각 사이 작은 여백이 생긴다. 막혀있던 일상의 흐름과 원기를 되찾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움직임을 통해 창조성을 발산하고 싶은 욕망 혹은 미세한 에너지와 진동을 발견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의식의 확장은 자연스레 뒤따른다.?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 풍문으로 떠도는 이 말은 아마 갑작스레 확장된 의식을 현실 세계의 자아가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말은 아닐까.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 이상, 우리는 이전의 나로 결코 돌아갈 수는 없으므로. 하나의 세계가 저물었다는 일종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안 하던 짓을 꾸준히 하면서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맛에 빠진 나는 이 문장을 다르게 기억하기로 한다.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일단 살짝 신이 난다던데.?

(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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