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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쓰다 – 춤추며 탐구한 문장들

유년 시절의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아이였다. 놀이터와 운동장, 골목 사이를 너른 산과 들 삼아 질주하곤 했다. 동네 아이들과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하고, 그마저도 지겨우면 새로운 놀이를 발명해냈다. 술래가 되지 않으려고 용쓰는 동안은 다른 애들이 어떻게 몸을 쓰는지 관찰하고 따라 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저기로 넘어갈 적에는 다리를 화살처럼 곧게 뻗어야 한다거나, 금을 밟지 않기 위해선 부들부들 온몸이 떨려도 한 발로 버틸 수 있다는 감각 같은 것.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는 게 가장 큰 사명이었던 어린이에게 ‘몸을 쓴다’라는 자각 같은 건 없었다. 

몸 일부분을 움직일 때 ‘몸을 쓴다’고 말한다. 직업적으로 육체 활동이 강조되는 분야에서는 흔히 ‘몸 쓰는 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춤을 처음 배우러 가던 날, 나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몸을 쓰리라 다짐했다. 망아지처럼 뛰어놀던 어린이는 언젠가부터 날뛰면 날뛸수록 꾸지람을 받았다. 여자애가 칠칠치 못하게. 다리는 오므리고 얌전히 앉아야지. 주의와 핀잔이 적립 포인트처럼 착실하게 몸에 쌓였다. 어디에 쓸 데도 없는 포인트를 누적하며 어린이는 조신하고 차분한 행동을 바람직한 옷차림처럼 몸 위에 새겼다. 책상 앞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지적 소양을 기르는 것 역시 이리저리 날뛰며 몸 쓰는 법을 익히는 것보다 우월한 일로 여겨지던 것도 그즈음이다. 

그러니 춤을 배우던 초창기, 주변 지인에게 돌아온 한결같은 반응도 이해가 간다. 매주 춤을 추기 시작했다는 소식 앞에 지인들은 눈알을 빙그르르 굴리며 “갑자기 웬 춤?” 하고 반문했다. 물음표 뒤에는 “정말?”, “네가?” 같은 말들이 생략되어 있었다. 예의를 지키느라 미처 묻지 못한 말들.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했다. “그동안 머리만 써왔으니까. 이제는 몸을 써보려고.”

‘쓰다’는 동사는 다각도로 ‘쓰인다’. 먼저, 몸의 자리에 몸 대신 신체의 한 부분이 들어갈 수 있다. ‘머리를 쓰다’. 머리만 쓰던 과거의 나는 ‘이모저모 생각해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일을 더 중요하게 대해왔다. ‘손쓰다’는 표현은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뜻이다. 의미가 다소 뾰족해진다. 머리와 손처럼 눈에 보이는 신체 기관뿐 아니라, 내장 기관도 들어갈 수 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애쓰다’에서 ‘애’는 창자, 간, 쓸개의 옛말이라고 한다. 내장의 특정 기관에서 점차 몸 전체를 칭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마음과 힘을 다할 때 우리는 몸의 전부를 ‘쓴다’.

몸의 일부분 대신, 기운이나 에너지가 ‘쓰다’는 동사 앞에 등장하기도 한다.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용쓰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용쓰다’에서 ‘용’은 ‘한꺼번에 모아서 내는 센 힘’을 뜻한다. 어떤 일에 관심을 기울일 때는 ‘마음’을 ‘쓴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기를 다할 때 ‘악쓴다’고 표현한다. ‘악쓰다’의 ‘악’은 ‘있는 힘을 다하여 모질게 마구 쓰는 기운’을 의미한다. 센 힘, 관심, 모진 기운 모두 몸으로 ‘쓴다’. 

인간이 사용하는 말과 언어 역시 ‘쓰인다’. 지금 나는 ‘춤추며 탐구한 문장들’이라는 코너에서 대망의 1편을 ‘쓰고’ 있다. 원고도, 계약서도, 곡도 모두 ‘쓰인다’. 추상적인 개념에도 적용된다. 몇 해에 걸쳐 춤을 추고 기록하는 일에 나는 이렇게 ‘시간을 써왔다’. 죽음 이후의 시간에도 사용된다. 시체를 묻고 무덤의 자리를 만드는 일을 두고 ‘묏자리를 쓴다’고 표현한다. 결국, ‘쓰다’라는 동사 앞에는 인간의 몸과 마음, 관심과 힘, 기운과 에너지, 인간이 감지하는 개념과 행위가 전부 등장한다.

춤을 추는 동안 용쓰고 애쓴다. 근육이 타오를 것 같은 감각이나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움직임 앞에 나도 모르게 악을 쓰기도 한다. 허허벌판 같은 널찍한 연습 공간에서 나는 몸을 쓰고, 잘 기억해 뒀다가 머리를 쓰며 이렇게 글을 쓴다. 머리를 쓰고 몸을 쓰는 일상의 균형을 다잡기 위해 매일같이 시간을 쓴다. ‘몸을 쓰다’라는 표현에는 일부를 움직인다는 의미 외에도 ‘몸을 제대로 놀린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춤추는 일은 몸을 쓰는 일. 몸을 제대로 놀린다는 본래의 의미에 조금도 틀리거나 어긋남 없이 딱 맞게 부합하는 말이 아닐까. 망아지에서 멈춰 있던 유년 시절의 나를 불러내 몸 쓰는 즐거움을 부지런히 익히고 싶다. 



글|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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