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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처음의 마음 – 재난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춤

나에겐 줄곧 꿈꿔온 시간들이 있다. 집 앞 작은 골목에서 삼삼오오 모인 이들이 벌인 소소한 파티 또는 빈 터가 꽉 차도록 시끌벅적한 잔치의 모습이다. 한국어로는 ‘판’이라는 말이 제일 어울리겠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판’에서 내가 외지인이든 동네 사람이든 상관없이 구경하다 어느새 춤판에 끼기도 하고, 음식을 얻어먹기도 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 당연히 거기엔 티켓도 포스터도 없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이런 순간들을 계속 마주쳐오며, 나는 어느샌가 지금의 직업으로 흘러왔다.

처음의 마음. 올해 봄여름 동안 진행한 춤 수업의 학생들이 결정한 공연의 주제다. 코로나 시대 속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보자는 의도로 우리는 만딩고 춤 중에서도 일명 전사들의 춤이라 불리는 전통춤 ‘구룬시’를 가르쳤다. 단순히 전투를 묘사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공동체의 존엄성을 지키는 내용의 춤이었다.

7월 발표회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공연을 준비하며 학생들과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미래, 가족, 자존심 등의 이야기가 나오다 누군가 ‘초심을 지켜요’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 또는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처음 가졌던 마음을 모두가 골똘히 돌아봤다. 작은 시작이 요렇게 저렇게 굴러 굴러 제법 덩치가 생긴 마음도 있고, 그때와 다른 모양새가 된 마음도 있고, 오랫동안 생각해야 떠오를 만큼 까맣게 잊힌 마음도 있었다.

올해 우리의 공연은 꽤나 특이했다. 통합교육을 진행하는 학교인 터라, 학생들은 각기 다른 학습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전형적인 발표 형식은 우리에게 맞지 않았다. 정해진 안무를 모두 함께 춤추는 비중을 줄이고, 각자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솔로와 듀오, 그리고 마지막엔 게임으로 마무리했다. 리듬에 맞춰 점프하거나 도는 등 다양한 발재간으로 상대를 속이며 가위바위보처럼 이기고 지는 룰이 있는 부르키나파소의 전통놀이다. 가르치는 우리에겐 이것도 ‘춤’의 일종이었으나 학생들에겐 이건 매 수업 때마다 하자고 외치는 ‘재밌는 놀이’가 되었다. 집중력이 짧거나 안무 외우기가 어려운 학생들도 이 놀이를 하는 순간엔 모든 에너지들이 중심으로 모이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짜여진 각본 없이 룰만 있는 이 파트는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공연자들은 춤과는 또 다른 형태의 진한 몰입을 보여줬다. 공연 날, 학생들은 그 게임에 나와 엠마누엘, 그리고 수업을 함께 진행한 선생님을 초대했는데, 나조차도 소용돌이에 휩싸이듯 순식간에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걸 떠나, 모두가 쏘아 올리는 힘들이 동그라미 속에서 꿈틀꿈틀대는 걸 느끼며 아주 오랜만에 쾌감을 느꼈다. 잊고 있었던 나의 ‘처음의 마음’이 빼꼼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 주 주말엔 운 좋게 구한 티켓으로 극장에서 열리는 굿 공연을 보러 갔다. 만신과 사진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이 공연은 극장에서 열려 ‘공연’이라 말했지만 끝나고 보니 코로나 시대에 감사하게 만난 ‘굿판’이었다. 실제 전통적인 굿과는 다른 환경이었지만, 이날 모인 관객들의 축원을 빌어주고, 색색깔의 천을 함께 찢거나 쌀 한 톨 씩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행위 등이 이어지며 극장에 모인 이들이 너도 나도 함께 박수를 치며 이 푸근한 ‘판’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마지막 커튼콜이 끝나고 모든 공연자들이 인사하고 퇴장하는 사이, 공연을 진행한 만신 이해경 님은 들어가지 않고 곧장 무대 앞으로 다가와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순간 마음이 탁 풀렸다. 아, 이건 공연이 아니라 굿이었구나를 재차 깨닫는다. 그래서 참 좋았다. 

코로나가 시작된 일 년 반 동안 체념하고 적응해오며, 잊고 있었던 판의 감각이랄까. ‘보았다’에서 끝나지 않고, 나도 모르게 거대한 동그라미의 일부가 되는 경험. 당신이 누구든 복을 빌어주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 모이는 시공간. 항상 이 땅에 존재해온 거대한 산과 같은 문화. 멀리 가서 구하지 않아도 여기에 이미 이런 힘이 있었지, 여기에 내가 반했었지 하며 마음에 인 물결이 점점 커졌다.   

그날은 사실 우리 스튜디오에서 댄스 워크숍이 열리던 날이었는데, 나는 수업을 빼먹고 이 공연을 보러 간 것이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사람 중 한 명이 “여기 이미 매주 공연이 열리고 있는데”라고 엠마누엘에게 말했다. 하하 웃었지만, 오래 함께해서 잊고 있었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렇지. 이 워크숍도 모두에게 열린 판의 감각들이 쌓여있는 시간이었지. 서로 다른 몸들을 받아들인다는 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이미 경험하며 알게 되는 시간, 구분이 사라지는 경험 속에서 자유로움이 튀어나올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새롭게 보였다.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개인의 자유가 살아있는, 오랫동안 켜켜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여럿 ‘판’의 문화들을 나는 동경해왔다. 열린 공간에서 벌어지는 판을 일상처럼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돈으로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들을 몸속에 축적한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 나를 사랑하는 방법, 삶이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감각 등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배우고 나눌 수 있다. 내가 자라오며 만난 이런 힘들이 결국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 되었다는 걸 느낀다. ‘공연’, ‘예술’이란 말보다 훨씬 품이 널따란 이 ‘판’들이 계속 이어지고, 많아지면 좋겠다. 

작지만 분명하게 켜진 이 작은 불씨를 놓치고 싶지 않아 여기에 쓴다. 거센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눈으로 선명히 보이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각자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바람이 차츰 잦아들고 불씨들이 모여 벌일 판을 기다리며, 오늘을 기록한다.  

글 | 소영
사진 | 2009년 멕시코 와하카(Oaxaca) 어느 거리에서, 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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