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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몸짓 – 춤추며 탐구한 문장들



2화. 몸짓


자꾸만 잊는다. 춤은 몸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로운 동작과 안무를 연습할 때마다 버벅대는 몸 앞에서 이 몸으로 얼마나 많은 쓸모를 만들어왔는지 상기한다. 눈을 뜬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상체를 세워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불을 반듯하게 접어 한쪽에 개어 둔다. 컵에 물을 따라 꼭꼭 씹듯 천천히 삼킨다. 해가 잘 드는 창가 앞에 앉는다.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감는다. 의식을 잠시 미간이나 코끝에 두어 본다. 이제 겨우 아침을 맞이했다. 다시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몸을 놀려 하루를 짓는다.

몸을 놀리는 모양을 일컬어 ‘몸짓’이라 한다. 우리는 시종일관 어떤 몸짓을 한다.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이나 돌봄 노동부터, 타인을 향해 무언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즐거움에 탐닉하는 행위까지. 눈을 뜨고 팔을 뻗고 몸을 일으켜 세운 후, 다시 누울 때까지 일련의 몸짓이 이어진다. 몸짓이라는 말은 춤의 정의를 설명하거나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일상의 몸짓이고 어디서부터는 춤을 위한 몸짓이 되는 걸까? 

‘몸짓’은 ‘몸’과 ‘짓’이 합쳐진 형태의 말이다. 따로 떼어 살펴보자면, 일단 ‘몸’은 우리가 아는 그 몸이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나 동물의 물리적 실체’. 하지만 비단 이게 전부일까? 

‘몸’의 어원은 몯> 몰> 몰옴> 모옴> 몸으로 변해왔다고 한다.1 발음과 뜻이 ‘모으다’의 명사형인 ‘모음’과 유사하다. 마치 인간의 생애와 닮아있다. 인간은 무언가를 모음으로써 삶을 열어젖힌다. 일단 젖이든 물이든 무언가를 빨아 몸속에 모으며 날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기 위해  언어와 행동을 모으고,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지혜와 사랑과 용기도 모은다. 잠시 스쳐 가는 영롱한 태양 빛과 맑은 바람도 모은다. 원치 않는 것도 모인다. 갈등과 상처, 절망과 슬픔, 회한과 부끄러움이 비슷한 무게로 모인다. 폭풍우의 세찬 바람과 모든 것을 휩쓸고 간 재난의 흔적도 모인다. 살아가는 평생에 걸쳐 모은 것을 멈춤으로써 이번 생은 끝이 난다. 이때 우리의 몸은 단순히 뼈와 살로 구성된 물리적 실체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몸의 의미는 몸이 쓰이는 표현에서 더욱 넓어진다. 곤란하고 난처할 때 우리는 ‘몸 둘 바를 모른다’. 문자 그대로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온갖 정열을 다하여 어떤 일에 열중’할 때 우리는 ‘몸을 던진다’. 화장실이 다급할 때 몸이 베베 꼬이지만 ‘부끄럼을 타거나 교태를 부릴’ 때에도 ‘몸을 꼰다’고 표현한다. 아이를 낳은 직후의 산모는 ‘몸을 푼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몸’이라는 단어가 가진 또 다른 의미로는 ‘월경으로 나오는 피’도 있다. 과거 월경혈은 ‘몸엣것’이라 불렸고, 줄여서 ‘몸’이라 불리기도 했다. 

‘몸짓’의 ‘짓’은 ‘몸을 놀려 움직이는 동작’을 뜻하는데, 주로 좋지 않은 행위나 행동에 쓰인다. 예를 들어 나쁜 짓, 어리석은 짓, 미운 짓처럼 말이다. 그런데 짓 앞에 몸이 붙으면 다소 중립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왜일까? 짓이 등장하는 관용구를 살펴보다가 실마리를 발견했다.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니지만 ‘짓을 내다’라는 말이 있다. ‘흥에 겨워 마음껏 멋을 내다’라는 뜻이다. ‘짓이 나다’라고도 쓰이는데 이때는 ‘흥겹거나 익숙하여져서 하는 행동에 절로 멋이’ 난다. 짓을 내 거나 짓이 절로 날 때 흥이 발산된다. 

몸과 짓이 만나면 물리적 실체이자 우리 생의 전부인 몸에 흥이 깃드는 것이다. 다시, 춤은 몸으로 춘다. 몸이 매개가 된다. 몸은 매개이자 주체이다. 춤추는 몸은 곧 나이기도 하다. 춤출 때 몸과 몸은 만난다. 춤추는 이의 몸과 또 다른 춤추는 이의 몸. 춤추는 이의 몸과 그 춤을 지켜보는 이의 몸. 이때도 몸이 매개가 된다. 각자가 주체이자 서로의 객체이다. 타인이라는 우주를 몸으로 만날 때 가장 강렬하고도 직관적인 접촉이 이루어진다. 몸과 짓으로 둘러싸인 세계를 헤매다 보니 춤이라는 몸짓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몸에 깃든 흥이 다른 우주와 마주할 때, 그때의 몸짓이 춤이 되는 것 아닐까. 



1 서정범, 국어어원사전

 

글|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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