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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춤을 추기 위해 갖춰야 하는 것 –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23화. 춤을 추기 위해 갖춰야 하는 것


춤을 추기 위해 갖춰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튼튼한 몸과 건강한 정신? 타고난 끼와 자질? 부단히 단련하려는 의지와 포기하지 않으려는 끈기?

몸과 정신이 사시사철 아무 탈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지구인이 갖는 평생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바람이 꿈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지구에 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주 넘어지고 다치고 아프고 늙는다. 그저 덜 고통스럽고 더 완만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잊을 만 할 때쯤 살펴볼 뿐이다. 게다가 대체 튼튼함과 건강함의 기준이 무엇이란 말인가. 연약한 몸과 나약한 정신 상태로는 춤을 출 수 없을까? 춤이 더 필요한 건 아니고?

누군가 타고난 끼와 자질을 갖춘 자만 춤을 출 수 있다고 믿는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사실 이 생각은 유년 시절부터 오래도록 내 안 깊숙이 방치되어 있었다. 막상 매주 춤추는 몸으로 몇 년 살아보니… 오, 역시 타고난 끼와 자질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차이는 선명하다. 근사해 보이는 그들이 멀리까지 빠른 속도로 질주하듯 나아갈 수 있다면, 나는 나만의 속도로 어딘가를 유영하듯 더듬더듬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막연히 짐작했던 것과 달리 수월했고 부드러웠고 어떤 면에서는 짜릿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유년 시절의 나와 비슷한 믿음을 가진 이들을 만나면 무턱대고 춤을 권하기도 한다. 춤은 좀 타고나야 출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나는 좀… 이라고 말하는 이의 눈빛에 호기심이 번쩍 스치면 나는 그것을 놓칠세라 몸을 들썩이며 부추긴다. 정말 그럴까요? 일단 한번 춤을 춰 보시면…

부단히 단련하려는 의지와 포기하지 않으려는 끈기 같은 요소는 사실 어떤 일이든 애정을 쏟고 싶다면 단 한 번은 거쳐야 하는 태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제에서 오늘로, 이 점에서 저 점으로 도약하기란 불가능하니까.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몸과 마음은 성장과 노화를 번갈아 경험하며 하루하루 달라지고, 타고난 끼와 자질은 넉넉하지 않지만 나만의 리듬을 찾고 싶고, 의지와 끈기라는 태도를 훈련하며 계속 춤을 추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춤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꼭 반드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 안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 수학자의 삶을 상상했고, 글을 쓰는 동안 작가의 삶을 욕망했다. 학교 밖에서 새로운 세계의 문법을 배우는 동안에도 그 세계에서 불릴 나의 이름을 찾는 데 열중했다. 목공소에서 나무 깎는 법을 배울 때는 ‘목수’를, 카메라를 들고 타인의 삶을 촬영하면서 ‘감독’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나를 지금 바로 이 순간, 현재의 시공간이 아닌 아직 가 본 적 없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미지의 미래로 번쩍 들어 올려 놓고선 그걸 이루지 못하면 부질없는 삶을 산 것이 아닌가, 하며 미리부터 허망해하는 식이었다. 주변에서 나는 ‘애어른’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춤을 추는 동안 만큼은 미지의 미래로 떠날 수가 없었다. 나의 육신은 지금 이곳에 있고, 딱 지금의 내가 갖춘 것만 가지고 춤을 춰야 하므로. 자연스레 어느 날부터 무언가가 되어야겠다는 욕구가 희미해졌고, 무언가를 하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춤추는 나, 글 쓰는 나, 충실한 나, 게으른 나. 

누군가 춤을 추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단 한 가지를 묻는다면,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열망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 열망은 나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속한 세계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몸의 움직임, 움직임을 통해 분출되는 감정과 에너지 상태를 꾸준히 관찰하고 느끼고 싶다는 열망. 더 나아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 세계에 대한 이해,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하는 가치를 찾고 싶다는 열망. 그 열망이 샘솟으면 갑자기 오늘부터 춤추기를 시작할 수도 있고, 혹은 오늘에 이어 춤추는 내일로 건너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글 |보코 


Comments: 2

  • 야야
    2 years ago

    글 잘 읽었습니다. 춤추는 사람의 정체성을 갖게 된 후로 전 그냥 그 자체가 좋은건데, 춤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해야 할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압박)이 저를 괴롭혔어요. 지금 제게 ‘막연한’ 나와 비슷한 결로 춤추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어요. 그런데 글을 읽으니 계속 너 하고 싶은 춤을 추라고 다독여주는 지지를 받았어요. 춤추는 것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내게 충만감을 주는 것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춤추고 싶어지는 글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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