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진솔 ‘오기와 끈기의 한 끗 차이’
오기와 끈기의 한 끗 차이
‘잘하고 싶은 사람이야, 나는’
새로운 것을 처음 배울 때 필요한 건 뭘까? 일단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게 아직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 알아가 보겠다는 마음가짐. 최초의 마음이 피어나면 배움에 드는 시간과 비용, 장소와 방법 등을 고려해본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지, 내 의지가 감당의 범위를 넘어설 수 있는지. 여기까지는 무엇을 배우든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춤을 처음 배울 때도 예외는 아니다.
첫 인터뷰이로 만난 진솔도 그랬다. 진솔의 의지는 ‘저질 체력’에서 피어났다. 20대 후반이었는데도 체력이 한참 떨어지는 걸 시시각각 실감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지하철 한 계단만 올라도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감정 기복도 심한 편이었다. 누군가 들은 말했다. 20대의 체력으로 30대를 산다더라. 이대로 살다간 조금만 일해도 쓰러지거나 사달이 나겠다 싶었다. 무슨 운동이든 살살 시작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페이스북을 하다가 쿨레칸 무용가 엠마누엘 사누(Emmanuel Sanou, 이하 엠마)의 워크샵 홍보물을 보게 됬다. 홍보 문구가 눈에 쏙 들어왔다.
‘비욘세Beyonc?의 안무는 서아프리카 댄스와 바로 이어져 있다!’
(당시에는 만딩고 댄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전으로, 아프리카 댄스라고 표현하던 시기이다)
비욘세의 안무가 제프리 페이지 Jeffery Page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수영이나 헬스 같은 운동만 찾아보던 참에 흥미가 생겼다. 밖에서 신명 나게 가무를 즐기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아무도 안 볼 때 막춤을 추거나 혼자 몸을 흔드는 건 좋아했다. 워크샵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춤을 배워본 경험은 없었지만, 체력을 기르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페이스북 홍보물에 ‘좋아요’를 누른 아는 언니랑 같이하기로 했다.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약간의 기대도 생겼다. 그런데 막상 갈 날이 가까워지자, 아는 언니는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체력을 기르는 게 시급했으므로 일단 혼자라도 갔다.
“첫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 그날 엠마한테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릴랙스 relax’야. 릴랙스해야 몸을 움직일 수 있고, 힘이 들어가면 뻣뻣해서 움직이기 힘들단 거지. 근데 어떻게 몸에 힘을 빼고 움직일 수 있어?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서 짜증이 났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스텝만 따라가기도 벅차고. 하필 그날 배운 것도 구룬시였어. 이제야 알게 됐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만딩고 댄스 중 가장 빡센 안무였던 거지. 집에 오자마자 뻗었는데 눈물이 또르르 흐르더라고. 같이 배운 사람 중 제일 못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나봐. 그 땐 체력도 더 안 좋을 때니까 감정도 복받치고. 울다 보니 잘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어.”
시작에서 머물지 않도록 끌고 가는 동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서, 누군가는 재미를 맛봐서, 누군가는 성장을 기대하며 자신만의 다음 단계를 만들어간다. 춤을 배우는데 있어, 진솔은 울다 보니 생긴 마음으로 다음 단계를 만들었다. ‘오기’를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바꿔냈다. 평일과 주말에 열리는 워크샵을 모두 참여했다. ‘나는 박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를 오가며 ‘적어도 여기서 제일 못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초반에는 박자 맞추기도 힘들고 그저 동작을 수행하는 느낌이었다. 춤이라기보단 운동 같았다. 3개월쯤 지나고 나니 평소에 잘 안 움직이던 근육을 쓰면서 기초가 다져졌다. 조금씩 춤의 감각에 가까워졌다.
“나는 나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닌 편이야. 남의 시선을 걱정하기도 하고. 엠마와 단둘이 춤을 출 때 처음에는 굉장히 소심하게 췄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봐 신경이 쓰였거든. 그게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건 커뮤니티의 사람들 덕분인 것 같아. 나는 이런데 정작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저렇게 해도 괜찮은가 보네, 싶기도 하고. 잘 추는 건 아닌데 본인이 신나하니까 보기가 좋더라고. 그러다 보니 내 마음도 천천히 풀어지고, 나 자신에게도 관대해지더라. 좀 못 춰도 어때? 재미있으면 되지, 이렇게 말이야. 나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즐기게 된 것 같아.”
진솔은 ‘조금씩 조금씩’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조금씩’이 쌓여 4년이 흘렀다. 중간에 한 달 이상 쉰 적이 없댔다. 육체적으로 힘들 땐 그 순간 짜증이 일렁일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습득할 수 있다는 걸 이제 몸이 기억한다. 하면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집에 가서 연습할 때도 있다.
“집에 가서 오늘은 이거 배웠다 하고 정식이(애인)한테 보여줄 때도 있어. 정식이는 내 춤을 보면서 깔깔거릴 때도 있고 좀 특이하다 싶으면 다시 춰보라고 주문하기도 하고. 그럼 나는 그냥 보여주는 거지. 워크샵 나올 땐 집이 한 시간 거리라 너무 귀찮고 하루만 빠질까 싶은 마음이 엄청나게 드는데, 집에 돌아갈 땐 역시 나오길 잘했다, 너무 시원하다, 이럴 때가 많았어. 그거 뭐야? 항상 다 나오면 주는 상? 맞다. 개근상. 나는 개근상 받아야 해”
귀찮음을 무릅쓰고 차곡차곡 춤의 근육과 호흡을 익혀나갔다. 어느 날 문득 성장의 모멘트가 찾아왔다. 새로운 동작을 배우던 참이었는데, 진솔이 참여자 중 가장 빨리 안무를 익혔다.
“나는 항상 뒤늦게 습득하고. 제일 못하고 그랬는데. 와. 내가 제일 먼저 잘하는 사람이 되는 날도 왔구나. 그때 좀 느꼈어. 이제 배우는 속도가 빨라졌구나. 이런 거구나.”
춤을 배운 첫날 결심한 ‘오기’가 싹을 틔운 순간이다. 꾸준함이라는 물과, 성실함이라는 퇴비를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새싹은 여전히 ‘잘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진솔에게 잘한다는 기준이란 뭘까.
“버벅대지 않고 동작이 매끄러운 것. 나는 엠마의 춤을 좋아해서 엠마의 안무와 최대한 똑같이 하려고 노력해. 자기 스타일대로 추는 게 좋다고들 하지만, 엠마를 따라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선이 생겨나는 거 아닐까. 약간 건강한 자존감은 아닐 수도 있는데 나는 항상 이 워크샵에서 상위권에는 있었으면 좋겠어. 오래 한 만큼 ‘잘 추네’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더 나아가 편하게 내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나의 목표고.”
매주 춤을 추며 지낸 4년 동안 달라진 건 몸뿐만이 아니다. 진솔의 안팎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 춤을 배우러 왔을 때는 아동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다 카페에서도 일하고 다시 아동 미술 일로도 돌아갔다가 현재는 타투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진솔이 체감하는 춤을 만나기 전과 후의 자신은 어떻게 다를까.
“이제 지하철 두세 계단쯤은 펄쩍펄쩍 잘 올라가지(웃음). 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인데 춤을 추면서 감정적인 걸 해소하게 됐고. 오히려 그림 작업은 잘 모르겠다. 나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 때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거든. 괴로운 욕구를 풀어내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춤을 추다 보니 정신이 건강해져서 그림을 안 그리게 되네…”
내심 그림 작업에도 영감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물었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진솔의 터치로 몸에 첫 그림을 새긴 커뮤니티 친구들이 꽤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쿨레칸 에스쁘아 커뮤니티도 진솔과 함께 4년여의 시간 동안 다양한 형태의 작업과 워크샵을 꾸리며 변화해갔다. 진솔은 기획자, 안무가, 소수의 댄서를 제외하고는 커뮤니티가 변모하는 과정을 가장 오래 지켜본 자일 것이다. 참여자이자 관찰자로서 진솔이 바라본 쿨레칸 에스쁘아 커뮤니티는 어떤 공간일까.
“나 같은 사람이 춤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고 있듯이, 커뮤니티의 공간도 참여자들이 편하게 이용하도록 바뀌고 있는 것 같아. 처음에 왔을 때는 커튼 뒤에서 옷을 갈아입었는데 이젠 독립적인 공간까지 생겼잖아. 나는 엠마의 춤 워크샵이 무척 좋고,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어. 나 혼자 듣기는 아깝거든. 여기가 다른 곳의 춤 워크샵과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방송 댄스 학원만 봐도 겉으로 엄청나게 멋있어 보이고, 보여지는 게 중요하잖아. 근데 이 커뮤니티의 특성은 그런 게 아닌 것처럼 느껴져.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다, 못 춰도 괜찮다, 이런 메시지가 중간중간에 늘 있으니까.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게 큰 장점이 아닐까. 그 방향을 버리지 않고 잘 유지하면서 가면 좋겠어. 한국의 만딩고 1세대 오리지널 클래스 이런 느낌으로.”
내가 몸소 겪은 변화와 기쁨을 누군가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건 그 만큼 타인에게도 시선을 둘 줄 안다는 소리다. 쿨레칸 에스쁘아를 만나 ‘오기’로 시작한 춤은 ‘재미’와 ‘사람’을 남겼다.
“약간 여기는 학교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아.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조절하게 되잖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덜 만난다든지 하는 식으로. 하지만 여기에서는 나랑 안 맞는 사람도 꾸준히 봐야 하더라고. 그건 괴롭잖아. 그럼 그 사람이 싫어지고. 누군가를 싫어하는 나 자신이 나쁜 사람인 것 같아서 그런 나 자신도 싫어지더라고. 그런데 계속 나오면서 혼자 조금 극복한 것 같기도 해. 어쩔 수 없이 섞여 있으면서 사람들을 전보다 더 받아들이게 된달까.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 하면서 여기 나오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재미있더라고. 내 생각에 여기 오는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거든. 비교적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 느낌도 있고 댄서로 자리 잡아가는 친구들을 보는 것도 신기했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멋스러움. 진솔이 경험한 춤은 단숨에 절대 터득할 수 없는 종류의 멋을 향해 있었다.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직 도달해보지 못한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완벽하지 않은 현재는 동시에 나아갈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솔에게 어느 날 불현듯 성장의 모멘트가 찾아왔던 것처럼 자신이 어딘가 새로운 곳에 다다랐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만큼 인생에 짜릿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진솔은 자신의 현재에 대해 힘을 주어 말했다.
“난 지금도 변하는 중이야. 즐기는 선에서 최고로 잘 추고 싶어.”
진솔을 처음 만난 장면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그 인상만큼은 또렷이 남아있다. 무표정한 얼굴에 붉은 입술이 선명했고 어쩐지 직접 떴을 것 같은 손뜨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한 번은 돌아보게 할 법한 옷차림을 보며 맵시를 낼 줄 아는 사람이구나 했다. 알고 보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고, 춤을 이야기할 때도 ‘선’을 자주 언급했다. 자신은 시각적인 사람이라 새로 꾸린 공간에도 ‘거울’이 꼭 필요하다며 웃음 지을 때도 진솔이 떠올리고 있을 ‘멋’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대화가 끝나고 쿨레칸 에스쁘아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개근상 수상 소감 같은 답이 돌아왔다.
“항상 좀 변덕스럽고 짜증을 많이 내는 나에게 다정하게 다가와 주고 뜨거운 에너지로 항상 감싸줘서 고마워. 저는 이 공간에서 마음의 안정을 굉장히 많이 찾습니다.”
진행┃보코 만세
기록 | 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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