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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미 활동가 “모두에게 자신만의 춤과 춤의 자리가 있다”


[인터뷰] 유미 활동가
“모두에게 자신만의 춤과 춤의 자리가 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삶의 풍경은 서서히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업은 휴교 되고, 일터는 사라지고, 공연장은 문을 닫았다. 도서관을 비롯한 체육, 문화, 교육 시설 등 공공 공간 역시 기약 없이 폐쇄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타인과 접촉을 최소화하며 ‘거리 두기’는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누군가가 삶의 일부분을 적당히 바꾸거나 대체하는 동안, 돌봄과 곁이 필요한 누군가의 삶은 임시 조치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 전락했다. 지난 4월 대구의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던 시기, 우리는 감염의 확산이 안겨주는 불안과 위험이 모두에게 같지 않음을 확인했다.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취약한 사회복지 시스템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들에게, 코로나19는 ‘우울감을 뛰어넘어 아무것도 없는 암흑지대’였다. 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는 이때의 감정을 ‘코로나 블루’가 아닌 ‘코로나 블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지금, 재난마저도 불평등하게 감각하고 있는 오늘, 방 한구석에 앉아 춤이 있던 자리를 돌아본다. 춤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내가 엿본 춤의 세계 중 더 여실히 목격하고 싶은 장면은 어떤 모습일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에 춤을 매개로 한 번 더 안부를 묻고 싶은 이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춤이 있던 자리, 축제와 투쟁이 뒤섞인 현장에서 마주친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의 활동가 유미 님이다. 인터뷰는 온라인 화상 채널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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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몿진> 잘 보고 있었는데 인터뷰 요청이 와서 놀랐다. 내가 뭘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부담되어서 준비를 잘해보려고 했는데. 며칠간 전화가 엄청 오고. 손님도 찾아오고 그래서…

화상회의사진


유미 활동가는 노들에서 춤 수업을 기획해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고, 소식지 ‘노들 바람’을 만들며 교사로 활동해왔다. 그러나 노들 역시 현재 임시 휴교 중이다. 수업이 없는 야학에 매일 출근하고 있다. 연기된 각종 행사와 수업에 대해 안내하고, 콜센터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전화를 받는다.

학생분들에게 전화가 오면 일단 최대한 집에 계시라고 한다. 너무 힘들어하시는 분이 있으면 한 번씩 찾아가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확인하기도 하고. 휴교 되었는데도 간혹 나오시는 분도 있다. 그럼 당분간은 집에 계셔 달라, 나오시면 위험하다고 말씀드리며 돌려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노들은 학생이 고립감을 느끼거나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무조건 나오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코로나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거리 두기가 굉장히 어려운, 혹은 불가능한 조건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 중증 지체 장애인 분들은 활동 지원사가 옆에서 밀착해 지원해야 일상이 가능한데 현재 공포감이 굉장히 높다. 장애인 당사자든, 활동 지원사든. 낮 수업에 참여하셨던 학생 중 일부는 시설에 거주하고 계신다. 집단생활을 하는 곳은 더 취약하다. 코로나가 확산되면 바로 봉쇄하다시피 하니까. 고립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제 ‘비대면’이 ‘뉴노멀’인 시대라고들 한다. 하지만 노들이 지금까지 펼쳐온 마주침과 활동의 방식은  새로운 표준으로 대체될 수 없었다. 

교육부에서는 학교에 원격 수업을 권고했다. 노들도 고민이 많았는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온라인 수업을 하려면 일단 컴퓨터나 기기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분들도 많고, 사용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많다. 발달 장애인이나 중증 장애인은 누군가 옆에서 장치를 세팅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조력을 해줘야지만 수업할 수 있기도 하고.



2020년 노들의 시간표에 유미 활동가의 이름은 ‘기초 사회’ 칸에 적혀 있었다. 이번 학기 계획했던 수업 내용은 휴대폰 사용법. 유튜브로 음악을 듣거나 메신저 앱을 사용하는 방법을 같이 공부할 예정이었다. 

노들의 곁에는 타인이 물리적으로 가까워야 삶이 가능한 분들이 많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 두기’ 보다는 ‘안전한 거리 갖기’, ‘물리적 거리 두기’를 계속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택이나 거리 두기를 하라는 말은 다시 고립으로 돌아가라는 말 같아서. 



코로나19 확산이 심해지기 전까지, 낮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쿨레칸의 엠마누엘 사누 안무가(이하 엠마)와 함께 춤 수업을 진행했다. 노들에는 일반 교과목 외에 권익 옹호, 영화, 노들음악대, 목공, 미술 등 특별 활동 수업이 있다. 춤은 그중 하나였다. 발달 장애인이 참여하는 낮 수업으로 2017년 5월에 시작했다. 춤 수업은 ‘천천히, 즐겁게, 함께’라는 긴 이름으로 불렸다. 

노들에는 이전까지 중증 지체 장애인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최근에는 발달 장애인 분들도 많아졌다. 집회나 행사를 같이하면서, 춤을 좋아한다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음악이 나오면 바로 몸으로 반응하고 그걸 감추지 않는다. 되게 솔직하다. 나라면 사람들 앞에서 엄청 신경 쓰일 텐데. 근데 노들 학생분들은 그런 부분이 나랑 달랐다.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벌떡 일어나 바로 춤을 추고. 음악을 따라서 춤을 자연스럽게 대하고. 



2017년 가을에 발행된 ‘노들 바람’에 실린 춤 수업과 관련한 글을 일부 소개 한다. 유미 활동가가 묘사한 ‘벌떡 일어나 바로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더위를 뚫고 도착한 교실은 웬일인지 눈물바다였다. 이유는 다 제각각이었다. 윗옷을 벗으려다 선생님한테 혼나서, 넘어져서, 그냥 슬퍼져서, 며칠 전 본 드라마에서 명성황후가 죽었는데 그 장면이 떠올라서… 그렇게 울음은 한 명에서 다른 한 명으로 전염되기 시작했고, 나는 과연 춤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우리의 젬베 폴라, 보섭이 눈물에 젖을 뻔한 흥을 깨우는 젬베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정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앉아서 통곡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더니 자연스레 스텝을 밟으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뚝뚝 떨어지던 눈물은 올라간 입꼬리 옆으로 둥글게 흐르기 시작했고…(중략)… 감정의 교류, 에너지 발산과 표현, 춤과 음악을 통한 몸의 대화는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내가 나이고, 네가 너인 상태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우리의 존재함을 끊임없이 표현한다. (2)


유미 활동가는 노들에서 활동하며 ‘기준’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뭘까? 춤을 잘 춘다는 것은 뭘까? 잘한다, 그런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 

세상에는 다양한 춤이 있는 것 같고, 나도 춤 앞에서 두려움 없이 검열하지 않는 상태가 되면 좋겠다. 노들 학생분들의 춤을 보면 나는 대체 무엇이 부끄럽단 말이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싶어서 나도 남몰래 연습도 했다. 이 춤 수업이 아니면 사실  춤추는 시공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춤의 공간이나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노들에는 지체 장애인 분들도 많은데 이들과 자기 나름의 춤도 만들어 보고 싶다. 모두에게 자신만의 춤과 춤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춤. 내가 출 수 있는 춤의 자리. 모두가 ‘자신만의 춤’을 찾고, 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대체 춤이 뭐길래. 

그러게. 춤이 뭘까(웃음). 음성 언어와는 확실히 다른 형태의 언어다. 한 나라의 말은 인류의 시간에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일 것 같고. 음성 언어 이전에 사용했던 언어가 춤이 아니었을까. 춤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엠마 선생님의 수업도 그렇지 않나. 



노들의 춤 수업을 이끄는 안무가 엠마는 부르키나파소에서 왔고,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다. 보통 춤 수업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진행하는데, 노들에는 영어가 익숙지 않은 학생도 많다. 그런데도 유미 활동가가 보기에 가끔은 한국 선생님들보다 더 원활하게 통하는 느낌이 든다. 

학생분들께 한국말로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반응이 오지 않거나 관심 없어 보일 때가 있는데. 엠마는 한국말로 짧게 얘기하거나 영어로 말하는데도 수업이 다 진행된다. 오케이, 가자, 그러면서 같이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말의 형태로 상세히 전달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 지금 사회에서 말이나 글이 굉장히 중요한 소통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전에는 다른 소통 방식이 있었을 테고. 여전히 그런 것이 편안한 언어로 사용되는 집단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춤 수업 시간에 많이 한다. 



매주 춤을 춘 지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두려움이 줄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돌발 상황도 많았지만 작은 것을 반복하면서 신뢰도 생겼다.

처음에는 학생도, 선생님도 낯설어서 실수도 있었지만. 이제 참여하는 학생도 이 공간 안에서 허용 가능한 활동과 사람들이 안 좋아하는 활동이 뭔지 서로 배우는 시간을 가진 것 같다. 물론 쉽진 않았지만. 함께 춤추면서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에너지를 느꼈고, 그런 유대감으로 각자 표현을 점점 펼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의 배움이 좋았기 때문에 이걸 다른 사람들도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자존과 독립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춤추기



춤을 가지고 뭔가를 잘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은 자연스럽게 다음 걸음을 고민하게 했다. 3년은 학교 안에서 춤을 공부하고 표현해봤으니, 이제는 바깥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단순히 춤이 취미나 여가에 그치지 않도록. 지금껏 노들이 펼쳐온 활동의 지향이기도 했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연결’ 되기 위해서. 노들이 만드는 최전선의 활동이 춤을 만났을 때, 이 접점에 대해 유미 활동가는 ‘공공 일자리’라는 정책으로 설명했다.

노들에서 중증 장애인, 발달 장애인의 일상과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고민해왔다. 학교를 떠나면 직업 활동을 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 속에서 장애인 가족의 부담도 크고. 장애인 당사자도 사회적 역할이 없는 상태로 20대 이후의 삶을 살 게 된다. 무얼 할 수 있을까 계속 찾으면서 서울시에 정책 제안을 했고, 그 중 중증 장애인 맞춤형 일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 권익 옹호나 인권 강사 활동 외에 문화 예술 활동도 직무로 구성했다. 춤에 있어서만큼은 최중증 발달 장애인 중에도 거리낌 없이 춤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들이 있고. 현재는 문화 예술 직무로 노들 에스쁘아 팀에 있는 분들은 올해 노동자로 탈바꿈한 상태다. 개념적으로 보면 지자체의 시립교향악단처럼 출근해서 공연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서서 공연을 올리는 일이다. 



무대에 서자고 다 같이 독려하면서 열심히 춤 연습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노들이 만들 공연은 단순히 ‘장애가 있는 사람이 추는 춤’으로 호명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일단은 에너지. 우리가 구성한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다. 춤을 추며 만든 커뮤니케이션 서클을 점점 확대해서 관객도 초대해 우리의 에너지, 춤의 에너지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발달 장애인은 사회 안에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적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각기 떨어져 지냈던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지금은 굉장히 필요한 때라고 본다. 기존 장애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각자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람과 사회를 만나고 싶다. 노들에서 춤을 배우며 좋아해온 분들에게는 그게 탁월하다. 춤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좁혀지지 않는 매일의 ‘거리’를 목격하며 유미 활동가가 언급한 ‘안전한 거리 갖기’에 대해 생각한다. 거리 두기가 아닌 거리 갖기. 사회적 고립이 아닌 물리적 안전을 확보하며, 존재의 연결을 살피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우리에게 열린 시공간이 또다시 언제 닫힐지 모르는 요즘, 그동안 열려있던 시공간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음을 재확인하면서. 모니터 너머로 열린 목소리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각주
(1) ‘코로나19’ 대구 장애인들의 절규 “암흑” (2020.4.28, 에이블뉴스)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14&NewsCode=001420200428161138112191

(2)  ‘노들야학 낮수업을 소개합니다’ (노들바람, 2017년 가을 112호) http://nodeul.or.kr/index.php?_filter=search&mid=nodeul_baram_view&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C%BF%A8%EB%A0%88%EC%B9%B8&document_srl=23614

진행 ㅣ 보코 소영 
기록 ㅣ 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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