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몿지니 토크 Mottzinee Talk 2019 – 이후 남겨진 질문들
새해를 맞이해 <몿진>도 춤 인터뷰를 거창하게 기획해야 하는 건 아닐까, 잠깐 고민이 일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니 아직 <몿진> 앞에 정돈되지 않은 대화들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호 셀프 인터뷰 ‘몿지니 토크 2019’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이후 남겨진 질문들’을 소개합니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춤을 찾고 있을 당신, 전통과 현대의 경계 앞에 이름 붙이기를 주춤거리고 있을 당신, 해석의 막막함 앞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을 독자분들께 조금은 힘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추는 춤은 뭘까?
보코 <몿진>의 시작에는 우리가 추는 춤을 해석하고 탐구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것 같아. 다들 그 시작과 현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궁금해.
소영 나도 처음에는 다른 단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아프리카 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시절이 있어. 한국에는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잖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단어가 쿨레칸의 작업과 엠마누엘 사누(Emmanuel Sanou, 이하 엠마)의 무용을 획일적으로 만들더라고. 물론 ‘아프리카 춤’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더 빨리 이해하고 마케팅적으로 잘 팔릴 수는 있겠지. 하지만 ‘아프리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이들의 문화와 창작의 구분 없이 퉁쳐버리면 이들이 어떤 음악을, 예술을 하는지 드러나지 않게 되니까.
보코 그 고민이 나 같은 위치의 사람에게는 어떻게 와 닿았냐면. 한국인으로서 나는 한국의 전통춤이나 무용의 역사를 잘 모른단 말야. 그래서 처음 엠마의 춤을 배울 때는 단순하게 생각했어. 흥미로운 춤이다, 체력을 키우면 좋겠다, 이 정도? 그런데 어느 순간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더 잘 추고 싶은 나를 발견하면서 한국인인 내가 보보 민족인 엠마의 보보동을 추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새로운 질문이 등장하더라고.
만세 그 질문이 언제 처음 시작됐어?
보코 춤 배우고 3~4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처럼 비전공자도 춤의 형태로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구나, 혹은 내가 잘 모르는 문화권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는 경험을 학습한다, 이런 측면으로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거든. 하지만 내가 만딩고 춤을 왜 계속 춰야 할까? 타자인 내가 다른 문화권 일부를 동일시하듯 흡수하면서 소화하는 게 가능할까? 이런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어.
소영 맞아. ‘아프리카’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아시아’의 관점에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대륙 대 대륙으로. 지금까지 엠마는 보편적인 예술로서의 ‘춤’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기획자인 나에게 계속 ‘아프리카’가 자동 수식되었던 것 같아. 엠마라는 무용수가 중심이 아닌 엠마의 춤을 굉장히 특수한 입장에서 바라본거지. 그래서 그걸 아프리카 춤(African dance), 아프리카 만딩고 춤(African Mandingo dance), 아프리카 전통춤(African traditional dance), 아프리카 현대 무용(African contemporary dance), 이런 식으로 분류해서 생각하고 있었더라고. 큰 장르처럼 보이지만 이름 자체가 설명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잖아.
만세 아, 어려워.
소영 그러니까 위치를 바꾸는 거지.
만세 어디서 어디로?
소영 유럽에서 한국으로. 혹은 서구에서 한국으로? 우리는 서구의 관점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있잖아. <아프리카 만딩고 춤 안내서> 연재를 시작하면서 한국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 한국인도 자신의 문화를 볼 때 서구화된 눈으로 보는 경향이 짙더라고. 만세도 잘 생각해보면 서구의 시선에서 한국 춤을 보는 경향이 있지 않아?
만세 오. 맞아.
소영 젊은 사람들이 더 넓은 눈으로 춤이든, 예술을 하면 좋겠어. 예를 들어 엠마라는 사람의 춤에는 자신의 민족문화와 전통춤도 있고, 유럽 안무가들의 다양한 무용 테크닉도 있고, 아프리카와 유럽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경험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잖아. 근데 그걸 지금까지 한쪽에서만 봤던 것 아닐까? 예를 들어 우리에게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되게 중요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어쩌면 쿨레칸이나 엠마의 활동이 한국에서 새로운 춤의 뿌리를 만드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봐. 나는 엠마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우리의 시선을, 위치를 넓히고 이동시킬 수 있다고 믿어.
어디까지가 전통적인 춤이고 어디까지가 현대적인 춤이야?
만세 바모 쿠마레(Bamo Koumare, 부르키나파소의 쿨레칸을 만든 사람)의 춤 워크숍을 들었을 때, 내가 이런 질문을 했거든. 당신의 안무는 전통춤이냐, 아니면 기본적으로 짜인 틀 같은 게 있냐? 그랬더니 자신이 뭔가를 넣었다고 하더군. 이럴 때 완전히 ‘전통’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지 모르겠더라고.
소영 내 생각에 한국에는 문화재보호법이 생기면서, 무엇이 전승해야 하는 전통예술인지 정해지는 시기가 있었잖아. 그전까지는 전통이라고 불리는 문화예술의 개념이 더 유연했을 거야.지금의 부르키나파소처럼. 그곳은 전통이 단절 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볼 수 있는 거지.
만세 어떤 것이? 예를 들자면?
소영 엠마의 민족인 ‘보보’의 전통춤에는 절대로 변할 수 있는 춤이 있는 반면, 누구나 변형할 수 있는 춤도 있데. 어떻게 동작을 연결하고, 새로운 동작과 리듬을 만드는 건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고. 이런 게 창작인거지.
보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 무엇이 닮고 다른지를 생각하는 게 춤을 추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소영 춤을 배울 때 그런 거 궁금한 적 없어? 내가 배운 안무가 어디까지 전통의 형식이고, 어디까지가 안무가의 창작인지?
보코 근데 애초에 구분할 수 있는 걸까?
소영 그게 질문거리로 남는 거지. 저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변형시켰나?
만세 질문으로 남기는 하는데, 우리가 해답을 찾을 순 없는 거네.
보코 나는 우리가 이 질문에 계속 집중하게 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봐. 그동안 왜곡된 관점이나 한쪽에 치우친 시선으로 우리의 춤을 바라봤던 건 아닌지 성찰해보는 것. 또는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춤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춤에는 관대했던 해석을 배제해버린 건 아닌지. 전통의 개념이나 현대 무용과의 경계에 관한 우리의 질문은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던 거니까.
소영 아까 말한 것처럼 한국에서는 국가가 ‘지정한 전통’을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배우잖아. 그래서 상대적으로 전통에 대해 고정된 관념을 갖게 되는 것 같아. 최근 리서치를 하면서 판소리 고수인 이향하 님이 전통의 개념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들었는데, 전통은 다음 세대가 정리해주는 것 같다고 말씀 하시더라고.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전통’이 당대 최신 유행했던 예술이었고, 그 때는 아무도 그걸 ‘전통’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이야.
보코 시간적인 관념도 얽혀있네.
소영 맞아. 한국의 예술가들이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 무엇을 남기고 지키고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전통적인 춤’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보코 나는 전통은 자신의 문화를 긍정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고 봐. 우리가 속한 지금의 사회는 이전의 사회와 단절되는 역사적 사건을 여러 차례 겪었잖아. 전통은 무엇인지, 현재와 어떻게 이어지고 바뀌었는지, 나의 문화권 안에서 고민할 가능성을 잃어버린 거지. 그래서 나에게 전통이라는 개념은 세대 간 연결의 이슈라기보다는, 나의 문화를 어떻게 긍정할 것인가와 더 관련 깊게 느껴져. 엠마처럼 자신의 문화와 뿌리를 긍정하면서 새로운 창작을 이어가는 예술가를 만났을 때 혼란스러웠던 이유도 여기 있고. 나의 경험 안에는 그런 감각이 상대적으로 빈곤하니까.
소영 부르키나파소 갔을 때 ‘전통’의 개념에 대해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답변이 다 흥미로웠어. 일단 지브릴(Djibril Ouattara)이라는 안무가는 춤에 있어서 전통의 개념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더라고. 첫 번째는 원형 그대로 전승해야 하는 신성한(sacred) 춤, 두 번째는 절반 정도는 대중이 변형할 수 있는 신성한(semi-sacred) 춤, 세 번째는 대중적인 춤(dace popular)으로 현대의 ‘쿠페 데칼레’, ‘어반댄스’도 포함하고. 네 번째는 신식민지주의 시대의 춤(neocolonialism)으로 프랑스 제국주의 지배를 받을 때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춤. 다섯 번째는… 자기도 모르겠데.
만세 와. 누군가가 전통에 관해 물었는데 이미 5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소영 더 재미있었던 건 지브릴이 자기한테 젬베 댄스는 외국 춤이라는 거야. 자신은 보보 민족이라 자신에게 전통춤은 보보춤이고, 젬베 댄스는 기니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외국 춤이라는 거지.
보코 우리가 봤을 때는 모든 게 다 전통춤처럼 보이는데 더 들어가면 그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네.
소영 같은 질문을 부르키나파소의 안무가인 아기부 사누(Aguibou bougobali sanou, 이하 아기부)에게도 물었거든. 아기부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류했어. 하나는 진짜 뿌리처럼 절대 변하면 안 되는 신성한 것. 예를 들어 민족 대대로 내려온 것이나 아무나 출 수 없고 배운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춤. 또 다른 하나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지금은 전통이 아니지만, 나중에는 전통이 될 수 있는 것. 그런데 사람들이 ‘전통’에 대해 말할 때 두 개념을 혼동해서 사용하거나 이해해서, 오류와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며.
만세 부르키나파소의 무용수들은 이미 전통에 대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것 같아. 만약 누가 나한테 전통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모른다고밖에 답을 못할 것 같은데.
소영 그래서 그냥 아프리카 춤, 전통춤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어.
<몿진>은 앞으로 어디로 갈까?
보코 가끔 <몿진>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질 때가 있어. 지금의 우리들은 비슷한 고민이나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 마주치고 있지만, 그게 끝나면 어디로 가게 될까?
만세 맞아. 나에게 웹진은 우리 기록물을 남겨 두기 위한 느낌이 더 강해.
소영 좀 더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수 있는 매체가 되면 어떨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독자들이 <몿진>을 읽으면서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못 찾은 것 같아. 독자들이야말로 묻고 싶은 게 더 있었을 것 같은데. 춤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다루면 좋겠어. 춤추는 사람들이 자신의 춤을 말로 설명하는 게 되게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고.
보코 어떤 면에서는 춤으로 전부 표현하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필요성이나 욕구를 못 느낄 것 같기도 해.
만세 나도 춤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아무것도 필요 없을 것 같아.
보코 나는 기록하고 글을 쓰면서 이 작업이 유의미하다는 생각은 지속해서 들었어. 물론 초기 기대나 완성도 면에서 떨어지는 부분은 분명 있지만. 서툴고 거칠더라도 꾸준히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나 같은 사람이 춤을 추고 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비슷한 누군가가 볼 수 있게 하는 것. 실제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작업 자체에 늘 의미를 발견하게 되니까 의무감으로만 이어가지 않았던 게 기뻤어.
소영 <아프리카 만딩고 춤 안내서>가 어느 정도 갈무리되면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
보코 소영 계속 바뀐다. 언제는 책으로 만들고 싶다더니.
대화|만세 보코 소영
기록·재구성|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