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터뷰

[인터뷰] 몿지니 토크 Mottzinee Talk 2019

2019년의 마지막 인터뷰는 월간 춤 웹진 <몿진>을 만든 사람들, 일명 몿지니들입니다. ‘너의 상상을 덧붙이는 만화’를 그렸던 만세,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춤 인터뷰’를 기록했던 보코, ‘아프리카 만딩고 춤 안내서를 연재했던 소영이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인터뷰이이자 인터뷰어가 되었습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몿진>을 발행하며 깊어지고 변화하고 또 새롭게 피어난 고민을 살펴보고, 춤을 뒤집는 이야기의 현재를 찬찬히 짚어봅니다.



우리에게 한 꼭지도 안 줄 것 같아서 만든 웹진

보코  안녕 친구들. 우리가 이제 <몿진>의 8번째 발행을 앞두고 있잖아. 처음 기획했을 때는 우리가 <몿진>을 통해 어떤 메세지를 전할 수 있을까를 중심으로 고민했던 것 기억나? 기존 한국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춤의 관념을 뒤집자는 의미로 ‘춤을 뒤집어 보는 이야기’라는 메세지를 강조해오기도 하고.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달라진 것들이 있을까?

만세  나는 약간 포지션이 애매하게 바뀌었어. 그때는 마냥 배우고 싶은 사람에 가까웠던 것 같고. 비전공자는 아닌데 춤을 열심히 추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 지금은 전문적으로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소영  우리 안에 전문가가 없으니까 그런 포지션도 괜찮은데? 나는 서구의 시선이나 획일화된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의 눈으로 만딩고 춤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춤 자체보다 음악을 더 많이 다루게 된 것 같아. 제대로 설명하려고 보니 춤 이전에 음악과 리듬이 되게 중요하더라고. 쓰면 쓸수록 질문이 많아지다 보니 쓰는 중간에도 내가 가진 개념이 확장되는 경험도 있었고. 고정관념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야.

보코  그래서 <몿진>의 작업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어. 초기의 기대에 비해 각자 못 미치는 건 분명 있을 테고. 특히 완성도 측면에서. 하지만 멈추지 않고, 우리가 던지고 싶은 질문의 뿌리를 잡고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 이 말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작업하면서 더 강하게 생겼어. 나 같은 사람이 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누군가가 볼 수 있게 만드는 작업 말이야. 서툴고 거칠더라도. 

소영  <몿진>이 옴니버스식이잖아?

보코  그렇지. 우리가 각자 중심을 춤에 두고,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와 형태를 골랐으니까. 

소영  그래서 ‘춤을 뒤집는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하면 압박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야. 한편으로 여기 있는 이야기는 절대 그 어떤 춤웹진에 실리지 않을 것 같긴 하고. 연극 웹진의 경우는 텍스트 기반이라 춤에 비해 자유로운 매체가 많은 것 처럼 보였는데. 춤 웹진은 정말 드문 것 같아. 

만세  맞아. 고리타분한 것도 많고. 재미가 없어.

소영  한국에서 춤 이야기가 왜 이렇게 어렵고 재미없는지 모르겠어. 독자들을 위한 글보다는 논문에 가까운 기록만 많고. 혹은 비평이나 공연 리뷰 위주이고. 춤을 추는 사람 중에 글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도 한계인 것 같고. 

보코  우리는 일정 정도 그 문제의식에 기대어 가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 왜 춤을 뒤집는 이야기가 필요한지, 우리가 이해한 춤의 세계는 어떤 것인지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도 있고.

소영  우리의 이야기는 어쨌든 편집장이 안 실어줄 이야기인 건 맞아. 우린 꼭지가 없어요. 

보코  이야기를 꼭 싣고 싶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었다!

소영  항상 예술 관련 웹진은 너무 학술적인 말을 쓰더라고. 글을 읽으면 나를 위한 글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오덕 선생님은 예쁜 한국말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쓰잖아. 그런 웹진이 되면 좋겠다. 보그체라는 말이 있던데. 몿진체라는 말로 부른다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보코  나중에 그런 말도 할 수 있겠다. 저희는 이오덕 선생님의 뜻을 따라 보그체의 최극점에 있는 몿진체라는 언어로 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세  근데 옴니버스식이라 그런지. 우리 셋이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또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해.

보코  맞아. 인터뷰하면서 <몿진> 왜 만드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피드백도 받은 적 있어. 작업하는 우리끼리는 일정 정도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게 우리의 컨텐츠 안에서 잘 전달되고 있는지는 다시 살펴봐야 할 이슈 같아. 독자들에게는 선명하게 읽히지 않는 지점도 있고, 어떤 물음으로 <몿진>을 접했느냐에 따라 발견하는 지점도 다를 것 같고.

만세  춤을 뒤집는 이야기라고 하니까 엄청 기대를 하고 왔다가, 우리가 하는 생각이 뭔지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거야.

보코  다시금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왜 대학밖에 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냐! 외치는 만화

보코  만세는 나와 소영과 달리 만화를 택했잖아. 작업하면서 어땠어?

만세  그림을 그리면서는 생각보다 정리가 쉽게 안 되더라고. 지금 단계는 만화를 그리면 통쾌하다기보단 우울해지는 시기 같아. 나 스스로 불평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고. 지금 초점을 맞추고 있는 주제가 ‘배움’인데. 한국에 대학 중심이 아닌 다른 해결책이 뭐가 있을까. 내 상황을 봤을 때 좋지만은 않으니까 무겁게 느껴지고. 교육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

보코  만세가 그 주제를 택한 거잖아. 나는 만세가 만화를 그린다고 할 때 지금까지 배운 여러 종류의 춤에 대한 경험이나, 부르키나파소에 다녀왔을 때의 스토리 등 다양한 주제가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거든. 왜 하필 배움에 대한 욕구와 현실에 관한 주제를 택했을까?

만세  항상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 왜 대학밖에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냐! 근데 지금까지 <몿진>에 그림을 그리면서 순간순간 생각이 변화하고 있어. 누군가 대학도 하나의 세계라고 하더라고. 내가 안 가봐서 모르는 것도 있잖아. 그래서 뭐든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 근데 배우고 싶은 욕심을 상황이 받쳐주기까지 너무 힘든 거야. 그래서 속상할 때도 있어. 일단 말하고 싶은 마음에서 주제를 택했는데, 해결책을 내가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뭐가 되었든 마무리는 잘하고 싶어.

보코  만세가 생각하는 시점의 마무리는 어떤 모습인데?

만세  욕심내서 말하면 만화 안에서 조금 더 말이 되는 해결책을 내는 것. 그렇치만 욕심을 안 낸다면… 불평으로 끝나겠지. 난 항상 부담되긴 하거든. 곧 생길 알바 스케줄과 내 춤에 대한 욕심과 <몿진>이. 

소영  만세를 보면서 만세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어. 특히 요즘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십대 중 대학에 회의감을 갖는 사람들도 많잖아. 몿진이 지금 춤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관념을 넓히는 이야기를 계속하면 좋겠어. 그게 뒤집는 것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춤추는 상태의 만세를 더 보고 싶어. 지금도 열심히 춤을 추고 있잖아. 지금이 더 그려지면 좋겠고.

만세  맞아. 어느 정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긴 하지. 독자가 있고, 말이 되어야 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니까 쉽지가 않더라고. 그래도 얼렁뚱땅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확실해.



누군가의 첫 춤에 대한 이름들

만세  보코는 인터뷰 진행하고 글 쓰면서 어땠어?

보코  일단 인터뷰는 춤을 중심에 두고, 주목받거나 충분히 해석되지 않은 사람들.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방향을 갖고 잘 진행되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몿진>을 만들거나 알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춤에 대한 감각을 초면인 독자를 상상하면서 설명해내는 게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걸 느꼈어. 

소영  사람들이 말하려는 춤에는 다양한 것들이 분명 섞여 있을 텐데. 그걸 한쪽으로만 바라봤던 것 같아. 예를 들어 우리가 여성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정체성일 순 있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고 할 때 직면하는 오류 같은 것이랄까?

보코  나는 일단 엠마누엘 사누(이하 엠마)를 통해서 춤을 만나고 있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나 스스로 이 형태로 춤을 춘다는 걸 어떻게 맥락 화 할 수 있을까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을 쓰면서 고민이 많이 들었어. 막상 해보니 이게 너무 어려운 일인 거야. 현대 무용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지가 아니라, 아시아의 한국인 여성인 내가 아프리카 문화권에 뿌리를 둔 무용수에게 춤을 경험할 때 이것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가 나에게는 더 중요하니까. 

만세  나는 한국 무용보다 만딩고 춤을 더 많이 췄잖아. 근데 만약 누가 나한테 전통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만딩고 춤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덜 추고 더 많이 추고 가 전통을 정하는 기준은 아니니까. 근데 사람들은 늘 묻지. 무슨 춤을 추냐고. 춤의 뿌리라는 게 과연 뭘까.

소영  부르키나파소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그곳은 춤이 삶 속에 있어서 첫 번째라고 불릴 수 있는 전통이 있고 그다음 두 번째 춤, 세 번째 춤, 이렇게 배울 수가 있잖아. 만약 그런 환경이 아니라면 과연 첫 춤이라는 게 뭘까 물어본 적이 있거든. 그때 바모 쿠마레(Bamo Koumare, 엠마누엘 사누의 첫 번째 무용 선생님)로부터 이런 답을 들었어. 자기가 보기에 첫 번째 춤은 장르로 규정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뿌리는 자기 몸을 잘 이해하고 움직일 수 있는가. 춤의 기본과 관련된 것이니까. 뿌리가 깊을수록 새로운 것을 만들 때 자기 안의 자원을 찾을 수 있다며. 전통이 강한 문화권에 속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더라. 나는 그 말이 되게 넓은 생각이라고 느꼈어. 

보코  이전까지 나에게 춤의 뿌리는 화두가 아니었던 것 같아. 어차피 나는 춤을 잘 모르니까, 라고 여겼던 것 같고. 또 한국인이라고 해도 한국의 전통문화를 서구의 시선이나 해석을 통해 접하는 게 익숙하니까. 실은 내 위치 안에서 나의 춤 경험을 설명해 낼 거리가 없었던 거지. 근데 요즘에는 그런 생각도 들어. 개념화는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 왜냐면 나의 춤 경험은 제한적이니까. 내가 본 게 전부라고 믿으면서 이름짓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은 거지. 해석은 뒤늦게 따라오는 일이고, 나는 차라리 그걸 춤으로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소영 맞아. 공감해.  

만세  무용수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양한 장르의 춤을 추는 사람에게 물어봤거든. 너는 이것도 추고 저것도 추는데 스스로 현대 무용수라고 생각하냐? 그랬더니 그냥 자기는 댄서라고 답하더라고. 

보코  그런 감각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 같아. 우리가 추는 춤이 뭘까? 뭐라고 불리는 게 적당할까? 잘 설명해내기 위해서 애쓰게 되고, 때로는 그걸 잘 알려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 질문 자체가 과연 중요할까 싶어. <몿진>을 하면서 계속 드는 고민이고.

소영  인터뷰를 어떻게 넓혀 갈지 앞으로 기대된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뒤집을 수 있는 말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보코의 에세이도 너무 재미있었어. 글맛이 좋다고나 할까. 

만세  옛날에는 너무 짧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짧은 맛이 악숙해졌어.



대체 왜 만딩고 춤을 계속 파는 거야?

소영  누가 나한테 물어봤다. 대체 왜 만딩고를 계속하는 거야? 이유가 뭐야?

만세  그래서 뭐라고 했어?

소영  나 되게 큰 이유를 말해버렸어. 나는 전혀 아프리카의 특정 문화를 홍보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호기심이 많고 연구를 좋아하긴 한데, 나에게는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랑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등등. 지금껏 가부장 사회의 눈으로만 보다가 그걸 다시 나의 눈으로 볼 때의 해방감이 있잖아. 쇼킹하고. 그런 것과 상통하는 느낌으로 만딩고를 보고 있어. 만딩고 춤을 깊이 팔수록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게 보이거든. 지금까지는 서구의 시선으로 봤다면, 또는 특정 기준에 맞춰서 봤다면, 그 중심을 바꾼다고 해야 하나. 

보코  그래서 소영이 언어와 개념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 보여. 소영의 춤에 대한 역사 안에 그 고민이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소영  더 넓은 세계를 계속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늘 있어. 단순히 봤을 때는 <몿진>의 작업이 엠마의 춤을 넓히는 일처럼 보이잖아. 왜냐면 한국에서는 계속 다르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으니까 해석의 틀을 새로 만드는 작업인 거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드시 엠마에게만 국한되지 않다고 봐. 거꾸로 한국의 예술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으니까. 이제 한국의 예술이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 이동하는 시대인데. 내가 아프리카에서 온 안무가의 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나의 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질문이 건강한 방식으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만세  나에게 춤은 본능에 가까운 것 같아. 왜 춤인지 말로 설명할 때가 더 어렵게 느껴져. <몿진>에 그림을 그릴 때는 못 그려서 창피하다거나 더 잘해야겠다는 강박감이 없는데 춤을 출 때는 완전 정반대거든. 자기 전에 못 췄던 게 생각나고. 그래서 <몿진> 그림 그릴 때도 내가 얼마나 많이 쏟아냈는지 대충했는지 내가 더 잘 알아. 대충하면 대충한 만큼 한 달 동안 아쉽고. 몇 명이라도 볼 거라고 생각하면 부끄럽고. 

소영  그래도 좋았을 때는 사람들이 만딩고 춤에 관한 정보나 이야기를 <몿진>에서 잘 봤다고 말해줄 때. 안내서라고 불릴만한지 나도 아쉬운 점이 많지만. 쓰면 쓸수록 이야기가 바닥나고 내 밑천이 드러나는 것 같고. 동시에 글을 쓰면서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약간 백과사전식 기술이 필요한 부분도 보이는데.. 지금은 중구난방이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독자님 덕분에

만세  실은 내 친구들이 가장 좋아해 줘. 히히. 좋아하는 것을 실망하지 않게는 만들어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고. 지금 무용계의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공연 올리는 것에 급급해할 때, 나는 어떤 위치에 가면 절대 말만 하지 않고 교육을 고민해야겠다 다짐하게 되기도 해. 이런 상황을 만화로 잘 설명하고 싶었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영  <몿진>을 읽는 독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에 대해 더 고민해보고 싶어. 읽고 난 후에 자신의 춤에 대해 떠들고 싶어도 우리의 채널에는 아직 창구가 없으니까. 누가 <몿진>의 독자인지 모르고. 독자들이야 말로 묻고 싶은 게 더 있었을 것 같아.

보코  난 여행 가서 우연히 독자를 만난 경험이 있어. 제주도 외딴 곳, 소수의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몿진>을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만딩고 춤이 뭔지 설명하지 않아도 대화가 시작되는 경험이 처음이었거든!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 어딘가에 있고 우리 글을 읽고 있다는 걸 물리적으로 확인한 순간, 아 다음호도 열심히 해야겠다.

만세  맞아. 그게 엄청 큰 영향을 준 것 같아.

소영  나에게 <몿진>은 이미 정체성의 하나가 되었어. 혼자하면 절대 못했을거야. 이런 틀 안에서 같이 했기 때문에 내가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을 많이 해. 그래도 여전히 춤에 대한 생각을 말할 때 두려운 점도 있는 것 같아. 내가 공연판 안에서 이렇게 말해도 될까? 스스로 비판을 두려워한다는 생각도 들고. 이 안내서를 쓰고 있는 지금이 되게 소중한 시간이야. 내가 성장한 시간.

만세  앞으로 나부터 더 꼼꼼히 읽어야 겠다. 독자님들 다시 한 번 고마워요. 



대화|만세 보코 소영
기록|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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