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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해경 만신 “거칠면서도 아름답지, 공감과 희열의 몸짓, 굿춤”

바람이 선선했던 춘천의 어느 봄밤. 야트막한 언덕 위로 빨노초파 색동 줄들이 낭창낭창 걸렸다.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보니, 무대에 걸린 형형색색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와, 이게 굿판이구나! 음악이 연주되기 전부터 묘한 설렘과 긴장감이 내 몸을 휘감는다. 밤 12시가 땡 하자마자, 장구가 덩덩 울리며, 만신 이해경 선생님의 축원 굿이 문을 열었다. 2011년 춘천마임축제였다. 생경함에 깜짝 놀라면서도, 동시에 가슴 속 깊이 푸근해졌다. 모두 낯선 존재들이 모였지만, 한바탕 뛰고 나니 어느새 친근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쌀과 과일들을 모두 나눠주는데, 그때 받은 사과 한 알이 어찌나 좋던지! 굿이 뭔지 잘 알진 못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래 이거지!’하는 마음이 기쁘게 차올랐다. 그렇게 이번호 인터뷰의 주인공, 이해경 선생님과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이번 <몿진>의 주제는 ‘춤과 세레모니’. 올해 인터뷰는 좀 더 본격적으로 ‘춤을 뒤집어 보자’며 출발했다. 주제를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이름은 바로 이해경 선생님의 이름이었다. 굿은 한국 음악과 춤의 제일 첫 뿌리로 중시되면서도, 이제 우리 일상에서 굿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어느 2월의 아침, 우리는 강원도 화천 어느 아늑한 다실에서 도란도란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해경 만신은 황해도 굿을 하는 강신무이면서도, 다양한 공연예술가들과 협업해 굿의 예술성을 공연으로 담아 현대와 꾸준히 호흡해왔다. 우리는 ‘춤’의 뿌리로서 굿을 다시 바라보고, 현대의 ‘굿’은 공연(Performance)과 의식(Ceremony) 사이에서 어떻게 사람들과 다시 어우러질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굿에서 춤은 몸짓이야. 그리고 확실한 목적이 있어. 굿을 의뢰한 사람의 간절한 소망을 저 하늘에다 알려야 돼. 그 몸짓이 춤으로 변형이 되는 거야. 천주교 신부님이 진행하는 의례처럼, 굿도 그런 절차가 있어. 그리고 굿의 주제와 목적에 따라 몸이 움직여져. 그러니 당연히 춤은 매번 달라지겠지. 어떻게 해야 한다는 틀은 있지만, 그 속에 아주 자유로운 의식이 들어가는 게 굉장히 중요해. 굿에서 춤이라는 건.”



굿춤에는 팔을 이렇게 올리고, 발을 이렇게 띄고 하는 형식 없이 어떤 ‘마음’이 존재한다. 신에게 간절히 바라는 소망, 괴로움을 풀어달라는 기도하는 마음들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몸짓을 만든다. 우리말에서 춤을 표현할 때 ‘신나게’, ‘신들린 듯이’와 같은 수사가 붙는 것처럼, ‘춤’과 ‘신’은 아주 가까운 사이다.


“굿춤은 거칠지. 거칠면서도 아름답지. 그런데 그게 막 미친 듯이 추는 게 아니야. 높—은 신을 맞이할 때는 그 신에 맞게끔 나도 격 있게 모시고. 또, 세상을 살아갈 때, 전투적인 태세가 되어야 하는 때가 있잖아. 그럴 땐 장군처럼 위엄 있는 춤을 추게 되고. 너무 슬프면 그 슬픔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몸짓, 그 울부짖음이 나오는 게 그게 굿춤이야.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몸짓이지.”



신과의 교감은 매번 같을 수 없다. 그때그때 굿을 의뢰하는 자에 따라,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의식을 진행하는 사제의 감정은 변화한다. 틀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순간순간 느껴 나오는 공감의 몸짓과 말까지 틀로 박제할 수 없다. 굿을 의뢰한 사람과 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틀 속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그렇다면, 왜 몸짓이 그 중심에 있는걸까? 사람들은 굿을 통해 기억해야 될 것은 기억하고, 애도가 필요할 땐 애도를 하는 등 전통사회에서 굿은 공동체 속 특별한 역할을 맡아 왔다. 왜 그게 몸짓의 형태로 주고받게 된 걸까?

“말과 글은… 어려워. 몸짓은… 쉬워! 몸짓은 민초들의 저 가슴속을 말할 수 있는, 아주 서민들의 이야기야. 억압된 민초들의 몸짓이 있지. 굿에서는 무당을 통해서 대리 충족을 하는 거야. 그러다가 연희적인 요소가 들어와. 전부 다 같이 뛰는 시간이 있는 거야. 그때 나오는 몸짓이 진짜 춤이야. 무당이 나를 대변해서 신령님께 몸짓과 춤으로 내 마음을 전해주다가 어느 순간에 우리가 같이 어블릴 때, 그 몸짓이 나온다고. 그게 진짜 진정한 춤이지.” 



진짜 춤, 그건 바로 ‘막춤’! 할머니들의 진짜 몸짓으로 공연을 만든 안은미 컴퍼니의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안은미 안무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막춤’의 정의는 ‘막’ 추는 춤이 아니라 ‘막’ 생겨난 춤이라는 거다.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춤!

“굿이 하나의 공연이라 할 수 있는 게, 연희적 요소가 굉장히 많았어. 놀이였어. 그리고 굿하는 날, 음식 나눠먹으면서 화해도 하고, 묵었던 감정도 푸는 거지. 옛날부터 굿을 할 때는 마을 사람들 전체가 함께 했어. 내 공연은 그 옛날에 어떤 주제로 사람들이 같이 마음과 힘을 합쳐서 빌었던 걸 재현한 거지.”



그때 마임 축제에서 느낀 푸근함이 다시 떠올랐다.

“원래가 그런 것이여. 원래가 그런 것이여! 그래서 굿이 아름답고, 굿이 좋은 거야. 나는 굿이 갖고 있는 본질을 사람들이랑 나누고 싶어. 굿 속에 공동체에서 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너무 소중한 게 있어요. 같이 즐겨요. 우리 문화예술 속에 좋은 게 너무너무 많아요. 이런 게 자꾸 사라져서 속상해요. 이거 같이 즐겨주세요~ 라고 하는 거야.” 



굿은 하나의 의식이고, 전통예술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통’이 박제되지 않고, 현대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갖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이해경 만신은 무엇을 변함없이 계속 이어가고, 무엇을 시대에 맞춰 변화시켰을까?

만신 이해경 선생님 @강원도 화천 희방신당(2020)

“굿이 갖고 있는 본질은 남겨야해. 나눔. 화합. 상생. 용서. 사랑이 굿에 다 있어. 모든 종교에서 주장하는 게 다 들어있어. ‘원수를 사랑하라’도 들어있고. 산자와 죽은 자가 오해한 채로 죽었으면 혼을 불러 화해를 시키지, 서로 싸우면 화합시켜주지, 나 좋으면 너도 좋지, 그리고 모든지 나눠 먹지. 옛날 사대부 집에서 굿을 하면 그 동네 굶는 사람, 거지가 없다고 했어. 다 나누는 거야. 일부러 사대부 집안이 곳간을 풀 때 굿의 형식을 통해서 풀었어. ‘효’도 있지.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지. 돌아가시기 전에 건강하게 돌아가시라고 예우를 해주지. 그게 ‘만수대탁’이야. 어느 종교든 착하게 살라, 선하게 살라고 하잖아. 그게 굿의 본질이지.”



그렇다면 변화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은 인간과 공존하고 있고, 시대가 흘러가는 만큼, 신도 역시 변한다고 말했다. 옛 사설과 재담을 현대의 말로 바꿔야, 지금 사람들과 신들에게 더 전달이 잘 된다고. 그렇다면 해외에서 하는 공연은 어떨까.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의 해석도 쉽지 않은 나라에서도 ‘굿’은 통할까?

“호주에 갔을 때야. 제일 어려운 게 내가 해외에서 말을 하면 누가 알아듣겠냐, 진짜 허공에다 말하는 느낌이야, 나는 그냥 신이랑 이야기한다 생각하고 굿을 끝내고 왔는데, 어떤 호주 부인이 나를 찾아 왔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 수 있대. 너는 나를 위해서 너무 열심히 빌어줬대. 그래서 눈물이 났대. 깜짝 놀랬어. 진정성은 통하는 거고, 어떤 말보다 내 몸짓, 내가 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톤, 이런데서 아는 거 같아. 나도 감동을 느꼈지.”



사실 굿은 전통적으로 관객과 공연자 사이의 경계가 없는 ‘판’에서 열렸다. 관객과 공연자의 거리가 먼 서구식 극장을 하나의 어우러지는 ‘판’으로 바꾸는 건, 다른 전통공연 예술가들처럼 굿을 공연하는 선생님에게도 제일 중요하고도 어려운 부분. 음악과 관객과의 합이 용호상박처럼 올라가며 쫙 어우러질 때, 그 순간 몸은 무게를 잊고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코스타리카 공연에서

“코스타리카에서 했을 때는 전부 나와서 미친 듯이 춤을 추고, 미친 듯이 공감을 했어. 무대가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어. 내가 막— 무대에서 신하고 교류가 딱 되가지고, 그 희열을 느낀다고 그러잖아. 그 사람들도 같이 느낀 거지. 그래서 굿장이 미친 판이 됐어. 그럴 때는 말보다도 몸짓, 행위가 더 와 닿는 거지. 말하고 글은 어려워. 몸짓은 쉽게 알 수 있어. 몸짓이야 말로 가장 잘 통하는 언어가 될 수 있지 않겠어.”



선생님은 이야기 내내 말과 몸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굿의 장면을 몸으로 이렇게 저렇게 묘사해주며 감정을 표현할 때, 그 몸짓이 가슴 속으로 절절하게 다가왔다. 어떤 순간에 선생님 눈에 물이 고이며 빨갛게 달아오를 때, 그 눈을 쳐다보는 내 눈도 어느덧 함께 빨개졌다. 이성을 통하지 않고, 그저 몸에서 몸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했다.

이렇게 몸짓은 직관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현대에 들어와 이 언어로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지 까먹은 듯하다. 뭐든지 설명하고 해석하려고 하는 요즘, 무용 공연을 볼 때, 이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하고 느껴야 하는지 자기 해석의 이정표를 찾는 이들도 많다.

“내가 현대무용을 가장 멋있게, 가장 미치도록 공감하며 봤던 게, 2004년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 왔을 땐데. 한 시간 반 내내 울다 나왔어. 속절없는 눈물이 흘러나오는 거야. 나의 가장 큰 외로움, 쓸쓸함, 고독함,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랄까. 그게 전부 끄집어져 올라왔겠지. 나는 의도를 파악하는 해석 없이 그냥 봐. 예술은 그 사람의 가슴 속에 저 깊이 꺼내지 못했던, 잊고 있었던 감성을 딱! 끄집어내서 울컥 하게 한다든가, 와— 하고 감탄이 나오게 한다 든가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 나는.” 

2004 내한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 작은 죽음 Petite Mort (안무 : 지리 킬리언 Jiri Kilian)



피나 바우쉬와 매튜 본 등 해외 안무가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무용 공연들을 모두 찾아 볼 만큼 무용애호가인 그녀는 다음에 태어나면 ‘무용가’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NDT 공연에서 느꼈던 것처럼, 저렇게 무대에서 불특정 다수의 감성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예술을 해보고 싶다고.

“근데 내가 그 예술을 하고 있잖아? 문제는 굿이 더 이상 그렇게 기능하지 않는 거지. 상업적으로 된 부분도 있고. 또, 예술로 인정을 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의 어떤 면도 있고. 옛날 굿의 본질을 펼쳐낼 수 있는 굿판을 벌리기가 어려운 상황이야.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우리네 무당들의 삶이기도 하지.”



산재로, 고독사로, 사회적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뉴스가 일상적으로 쏟아지는 요즘. 쇼크와 분노, 허망함과 무력함 등이 내 몸을 스쳐가는 동안에도, 이를 어떻게 풀어낼 수 없어 갑갑했다. 인간의 마지막 죽음까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추모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 걸까.

“위령제, 추모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굿의 형식이 없어졌지. 잔치처럼 판을 벌여 하는 게 아니라, 모여서 간단히 추모사 읽고, 살풀이 춤 한번 추고, 딱 끝나잖아. 옛날엔 무당들 불러서 같이 먹고 마시고, 죽은 자도 신나고, 산 자도 같이 신났는데. 무당이 가서 혼을 달래줘야 하잖어.”



애니메이션 ‘코코(coco)’를 보면, 일 년에 하루, 노란 금잔화가 길가에 깔리고 죽은 자들이 그 꽃을 따라 현세로 돌아와 살아있는 가족들과 함께 잔치를 하는 축제가 나온다. 그 영화를 보며, 세상을 떠난 나의 가족들, 친구들을 떠올리며 많이 울고, 웃으며 얼마나 위안을 받았던지. 적막강산에 산다고 말하면서도, 안 본 책, 영화가 없는 선생님 역시 ‘코코’를 너무 좋아한다고. 부르키나파소에서도 일 년에 한번, 그 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마스크 댄스 축제가 열린다. 한국도 옛날 기록에 정월 보름동안 굿을 하며 먹고 놀았다고 한다. 죽은 자들을 추모하는 춤과 음악, 굿은 오히려 산 자들을 위로하는 행위다. 그들이 떠난 이 세상에서 남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힘을 주고, 빛을 비춰주는 춤인 것이다.

“공연이나 굿을 한다는 건, 나의 충만한 에너지를 나눠 주는 거야. 어떤 형식으로든. 그러니까 나는 늘 밝고 희망차고 왕성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거야, 무당은. 그러다 어느 날 판이 탁 벌어졌을 때, 그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쫙 나눠줄 수 있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 에너지가 관객과 나 사이를 순환할 때, 그게 최고지. 굿에서도 그게 굉장히 중요해. 그게 공감이거든. 같이 공유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거기에서 위안을 받고, 거기에서 나는 희열을 받고. 내가 이번에 굿을 잘했구나. 만족시켜야지 관객을. 관객을 만족시키는 건 참으로 어려운거여.”



그녀는 영어를 한 마디 못한다 하면서도, 온 몸으로 세계 곳곳의 예술들을 흠뻑 만나고, 미친 듯이 사랑하고, 지금도 여행한다. 두 달 동안 차를 빌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최근 여행했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의 에너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또, 최근 포르투갈 파두 음악에 빠져 어떤 기타리스트의 ‘성덕’이 되고, 한국에 돌아와 포르투갈 문학에도 빠지게 되셨다고. 내가 선생님의 나이가 되어도, 이만큼 왕성하고 자유롭고 유연하게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꿈을 먹고 사는 사람, 내 인생은 모두 꿈이라는 이해경 선생님. 최고의 꿈인 그녀의 굿판에서 얼른 또다시 푸근하게 친구들과 가족들과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 

진행 | 소영, 보코 
기록 | 소영

Comments: 2

  • 자루
    2 years ago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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