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터뷰

[인터뷰] 이소영 안무가 “일렁임을 간직한 몸, 춤, 삶”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하에,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원칙 앞에, 몸이 마주치던 공간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학교가, 공연장이, 연습실이, 기약 없이 폐쇄되었다. 공식적인 폐쇄를 결정하지 않은 곳들조차 잔뜩 의기소침해졌다. 바야흐로 원하든 원치 않든 신체 접촉을 두려워하는 시대가 도래해버린 것이다. 악수나 포옹 같은 인사를 편하게 나눈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이제는 마스크 너머 가려진 타인의 입 모양을 상상하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 져버렸다.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한 채 눈빛을 간신히 교환하려 애쓰는 이를 만나면 되레 반가울 지경이다.

누군가와 ‘대면’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 행위가 될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모니터 너머로 얼굴을 마주하고, 각 잡고 앉아서 온라인 무용 공연을 관람하고, 움직임 워크샵 동영상을 시청한다. 상대방의 온기와 호흡을 기다리지만, 그 어떤 에너지도 모니터를 뚫지 못한다. 화면과 소리라는 신호에 기대어 서로의 존재를 더듬어 볼 뿐이다. 새삼스레 춤 역시 몸으로 에너지를 전하는 물리적 행위였음을 뒤늦게 자각한다.

조금은 무거워진 기운을 품고 그래도 멈추지 않고 탐구해보기로 한다. 나의 몸을 만나는 일, 몸과 몸이 만나는 일, 몸으로 전하는 일, 그 한복판에 있는 춤과 삶에 대해. ‘몸으로 추는 삶, 춤으로 사는 몸, 삶을 탐구하는 춤’을 주제로 한 ‘움직임 탐구그룹 14feet’의 대표이자 무용수로 활동해 온 이소영 안무가에게 만남을 청했다. 가장 먼저 지금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물었다. 

몸-춤-삶을 모토로 선순환하는 거점을 만들어 지금까지 왔는데, 코로나19로 쪼개지고 분리되는 경험을 하는 듯 하다. 직전까지는 작게나마 균형이 잡혀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아이가 학교 가면, 몸을 풀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 기운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개학 여부가 일주일 단위로 연기되면서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게 되자, 아이를 겨우 건사하고 나가면 컨디션이 초토화되기도 한다. 그래도 특별히 무력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코로나19로 정지된 일상, 달라진 삶에 대한 어려움이 주렁주렁 딸려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의연했다. 공감을 빙자해 막막함을 토로하기 위해 푸념의 리액션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이소영 안무가의 대답에 다소 당황했다. 어라?

사람마다 다를 텐데, 나는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이 있다. 코로나19 말고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춤은 물론 사람들과의 접촉이 확 줄었고, 춤을 추고 싶다고 꿈꿨지만 출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춤이라는 맥락 안에 있는 상태고 유지하고 있어서 괜찮다. 다만 안무가로서 끝없이 사유하는 상태가 필요한데, 그게 일상과 조금 괴리가 있다. 월별로 진행되던 워크샵이 무산되기도 하고. 연습실에서 매주 하던 스터디도 코로나19 여파로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그렇지만 앞선 경험들 때문인지 몸과 몸이 만나지 못하는 감각에 대해서는 오히려 느긋한 편이다.




무용수로, 안무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아이가 태어났다. 임신, 출산, 양육이라는 트라이앵글을 통과하는 동안 몸은 계속 변화했다. 안무적 테크닉과 성장을 도모할 수는 없었지만, 몸이 변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통해 갑자기 살아나는 감각도 있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감각과 변화를 감지하며 버텼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동안에도 ‘춤추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두 번째 놀라움. 어라? 대체 어떻게?

스스로 춤추는 사람이라고 잊지 않을 수 있던 까닭은 춤은 나의 자아였고. 춤을 추지 않는 동안에도 나의 중심 자아였으니까. 영혼과 자아와 춤이 일체 하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는가?



기습적이고 거창한 질문에 세 번째로 놀랐다. 어라? 영혼과 자아와 춤의 일체라니! 내 생에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과연 내 안에 펼쳐질 수 있긴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달음박질치듯 올랐을 때처럼 종종거리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이소영 안무가가 다시 말을 이어 붙였다. 

춤을 출 때 잘 추고 있는지 그 자체도 망각하고. 나라는 존재가 형태를 가진 구체적 생명이라는 것. 살아있고 만질 수 있는 물질이라는 것. 그걸 느끼는 게 너무 즐거운 것 말이다. 거기에서 나는 자아가 형성되고. 자존감도 만들어졌다.





이소영 안무가는 열아홉 살에 무용을 전공으로 시작했다. 일반적인 전공생 이력에 비하면 다소 늦은 편이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즐거웠다. 대체 왜 다들 수업을 땡땡이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상상력 대신 망상력이라고도 말했다.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 몰두하고 집중하게 하는 망상력. 하지만 ‘춤의 원형’에 대한 기억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간다. 일곱 살이었다. EBS 채널에서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봤다. <분홍신>이라는 발레 영화였다. 난생처음 춤이라는 걸 만났다. 그때부터였다. 춤추고 싶다는 꿈은. 이후 무용 교육을 받고, 아이를 돌보면서도, 질문은 자신에게로 되돌아갔다. 내 ‘춤의 원형’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 소위 말하는 주류 무용계에서 벗어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춤을 처음 만났을 때 내 마음 상태가 어땠지. 뭐였지. 끝없이 물었다. 그 끝에 일렁임이 있었다. 마음이 일렁였다. 기쁘다, 이런 특정 상태 이전에 움직인 거다. 일렁임을 주제로 첫 워크샵을 했을 때는 진짜 마음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사회적 프레임을 벗어나 ‘춤의 원형’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공감하면서 차원이 커진 것이다. 각자의 원형을 찾고 야생에서 키워내 성장 시켜 보고 싶어졌다. 아직 춤이라는 구조물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춤의 원형에 대한 기억은 ‘몸이 춤이 되기 전의 단계’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끈이자 힘이 되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움직임 탐구 그룹 ‘14feet’라는 명칭은 심장의 파장이 다른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는 거리인 열네 발자국을 뜻한다. <14fee>라는 공연을 시작으로 몸의 안팎을 넘나드는 에너지를 지속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에너지는 무용수와 관객 사이 이곳저곳을 넘실거렸다.

춤은 에너지를 연결한다. 춤의 본질적인 힘이자 삶을 변화시키는 춤이다. 그렇기에 흔히들 춤이라 여기는 발레나 현대 무용이라는 장르 특성이 관객에게 어떤 종류의 삶을 소개해줄 수는 있어도 장르 자체가 곧 힘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춤은 몸이 하는 일이다. 나에게 춤은 비스듬하게 두 존재가 놓인 사람 인(人)자 같다. 무용수는 관객의 숨을 들이마시고 그 정보로 춤을 춘다. 공감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난다. 그게 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맞다. 춤을 추는 동안 나도 비슷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 공간에서 함께 춤추다 보면, 타인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이력을, 피부색을, 취향을, 성 정체성을 가졌는지 굳이 따져 묻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 사람 또한 나처럼 움직이고 생각하고 펄떡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걸 온 몸 깊이 수용할 수 있다. 이소영 안무가가 참여한 <걸레의 진화-F등급 여성적 몸쓰기> 프로젝트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여성적 몸쓰기가 주제였지만, 내가 전달해주고 싶은 건 내 몸을 움직였을 때의 즐거움에 가까웠다. 고개만 돌려도 시야가 달라질 수 있고. 방 문턱도 어떤 호흡으로 넘느냐에 따라 예술적 유희가 될 수 있다. 추상적인 구호인 ‘여성 해방’ 이전에 ‘자기 조절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는데 나를 어떻게 느끼고 조절할 수 있겠는가. 의외로 생리 전 증후군의 존재를 거부하는 여성도 많아서 놀랐다. 호르몬은 지적 영역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지적인 것도 내 몸에서 나온다. 당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내가 나를 조율 할 수 있다는 감각은 자존감의 모태가 된다. 춤이 할 수 있는 건 편견을 벗어던지고 생명으로 몸을 만나면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다.



파주 일대에 거주하는 20대부터 50대 여성들과 진행한 ‘여성적 몸쓰기’는 곧 ‘나의 몸쓰기’로 진화했다. 마지막 쇼케이스를 마치는 순간, 뜨겁고 찬란했다. 여성적 몸의 차원을 넘어 일렁이는 상태는 이런저런 움직임으로, 여기저기로 뻗어 갔다. 몸이 몸으로만 이해되면서 온갖 편견이 없어지는 순간이 생겨났다.

춤 용어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실은 전문 용어는 일종의 기호이자 버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몸을 써봤던 경험,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껴본 사람은 춤의 맥락을 머리 대신 몸으로 이해하더라. 몸은 그 어떤 언어도 대체할 수 없는 최상의 미러링으로 기능한다. 거대 담론에 천착 되어 있는 사람들은 느끼는 걸 하위로 보거나 거부하기 때문에 이 감각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자신의 몸을 조율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힘, 통제와 자제력이 어디까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만끽했다. 느리게 움직였는데도 꽉 차는 시간. 이소영 안무가의 몸과 춤과 삶의 연결 고리는 무대 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나는 경험이 있다. 멈추었던 경험. 내내 무용만 배우면 살았는데 나에게 몸과 춤과 삶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공연에만 머물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시간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일상을 포기하고 공연만을 위해 나를 집어넣으면 연쇄적으로 가족이 무너지게 되니까. 결과를 내놓는 게 익숙한 패턴이 되면 거기에만 몰두하게 되지 않나. 외적으로 공연하지 않으면 끝나는 것처럼 보이고. 이게 과연 지속가능한 사유의 방식일까. 순환되긴 하는 걸까. 우리는 살아가는 걸까.



몸춤 스튜디오에서



‘춤과 몸’에 관해 묻기 시작해 결국 삶으로 되돌아왔다. 처음부터 그곳이 제 자리였다는 듯. 삶은 변화한다. 지금 우리는 몸이 마주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고 이 또한 변할 것이다. 마주치지 못하는 몸들도 각자의 속도대로 시간을 따라 변한다. 임신과 출산과 양육을 경험한 엄마의 몸, 한 여성의 몸, 자연인 이소영의 몸, 안무가이자 무용수의 몸으로 춤의 세계를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몸은 천천히 미세하게 오랫동안 바뀐다. 나도 갱년기로 넘어가는 중이라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자기 조절력이 전보다 떨어진다. 내 최대치의 상태를 아니까. 하지만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는 건 다른 얘기다. 춤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동적 테크닉이 전부라면 나이 들어서는 춤을 출 수 없다. 몸이 바뀌는 과정에서 춤의 영역에 더 깊이 들어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질문들 속에서 좌절과 실패를 겪기도 하고, 스스로 되묻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되게 중요한 것 같다.



나이듦. 노화. 시간을 몸으로 흡수한다는 건 춤을 추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몸의 전성기’가 반드시 ‘춤의 전성기’와 일치하라는 법은 없지만, 여전히 젊은 몸이 춤을 표현 예술로 삼는데 있어 유리할 것이라는 편견이 깊숙히 똬리를 틀고 있다. 이소영 안무가가 언급한, 몸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춤에 더 깊숙히 들어가는 장면. 나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이소영 안무가는 나이 든 여성 무용수들의 춤에서 그러한 장면들을 포착했다. 대학원 시절 만났던 아프리카 출신의 할머니 무용수는 아픈 무릎으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격동적인 리듬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무용수는 입가에 미소만 만연했다.

그러다가 움직이시는데. 이 선생님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나무가 생길 것 같은 느낌. 아무리 느리게 움직여도 겹겹이 쌓여 있는 시간이 느껴지는 것. 그 경외감과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다.



또 다른 나이 든 여성 무용수는 살풀이 무형문화재 명장이었다. 길에서 만나면 ‘할머니’하고 부를 것 같은 여성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라 옷을 여미고 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심지어 박자도 조금 틀리셨다. 그런데도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심장이 쿵.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거다. 나이를 먹고 몸이 바뀌면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는 것처럼 그 사람이 마셨던 숨과 기억 안에서 춤이 나온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일곱 살 텔레비전 속 <분홍신>에 눈을 떼지 못하는 꼬마처럼 이소영 안무가의 눈빛은 영롱하게 빛났다. 마스크 너머의 입꼬리를 떠올려본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외국 무용 페스티벌에는 공연보다 워크샵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온종일 춤만 춘다. 관객과 댄서의 경계도 없고. 놀고 춤추고. 현대무용, 발레, 이런 장르로 구분 짓지도 않고. 각자 자신의 주제와 이름을 가진 수업을 만들고 나눈다. 사람을 만나고 경계를 넘나드는 페스티벌을 만들어 보고 싶다. 몸. 춤. 삶을 키워드로.



이소영 안무가에게 몸-춤-삶이라는 연결은 자아-춤-영혼의 연결이기도 했다. 나의 몸에게 오늘의 안부를 묻는다. 나의 자아와 현재 관계는 어떠한가? 내 영혼의 움직임은 어떤 상태인가? 어떻게 하면 내 삶을 되살릴 수 있을까? 아득한 물음이 다시 펼쳐졌다. 

진행 ㅣ 보코 소영 
기록 ㅣ 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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