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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춤] 지지와 연결의 움직임, 다리2020의 ‘엠마의 집’

2020년 ‘집’이란 공간은 모두에게 각별해졌다. 코로나로 ‘집콕’하며 그동안 집에서 하지 않았던 활동들까지 소화하며, 모두들 자신의 집을 새로운 눈으로 발견하게 되지 않았을까. 나의 일은 그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었으나, 집-일터-집 이렇게 축소된 반경 안에서만 주로 움직이게 되었다. 


조명을 바꾸거나, 가구의 위치를 이동시키며 올해의 우리집은 어느날엔 레스토랑처럼, 카페처럼, 영화관처럼, 도서관처럼 변신하곤 했다. ‘그 카페에 가면 이런 음악이 나왔었지’, ‘거기 냄새를 내가 좋아했지’ 하며 지금은 잘 가보지 못하는 공간의 추억을 되살려보며, 내 집에 머물렀다. 그러다 또 그리워진 것은 과거에 떠났던 여행길이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 속에서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기도 했고, 그 속에서 마주친 우연한 만남들 속에서 집의 온기를 느끼기도 했다. 나의 바깥을 경험하며, 오히려 나를 더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코로나로 좁혀진 생활의 동선은 바이러스가 더이상 확산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지만, 나는 올해 계속 어떤 ‘실제적인 만남’을 만드는 일 속에 있었다. 온라인으로 대체가능한 공연이나 전시도 있지만, 직접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한 공연과 전시도 있었다. 필수적인 일 외에는 만남을 축소하라는 정부방침과 나날이 천명대를 기록하는 코로나 확산세 속에서 나는 매일 갈팡질팡했다. 올해 마지막 프로젝트인 ‘엠마의 집’ 역시 2.5단계로 코로나 상황이 격상된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열렸다. 


‘엠마의 집’을 기획하고 창작한 프로젝트 그룹 ‘다리’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현실 속에서 ‘지지’와 ‘연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며, 한다리 건너 한다리에 있는 이들이 모였다. 건축, 무용, 영상, 목공, 기획 분야의 다양한 창작자들이 모여 함께 ‘집’에 대한 생각들을 펼쳐놓은 쇼케이스 형태로 12월 19일부터 31일까지 열렸다. 창작자는 창작을, 기획자는 기획을, 관객은 이에 참여하는 ‘결과’의 끝을 ‘후원’으로 연결하며, 올해는 ‘미등록 이주아동’ 관련 이슈를 알리고, 수익금 전액을 지원기관인 녹색병원에 후원한다.   


이 프로젝트는 엠마누엘 사누의 ‘집’에 대한 ‘조금은 다른’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에게 집은 사적인 공간이기보다 친구, 이웃들, 낯선 손님과 우연한 만남에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곳, 충고든 조언이든 서로에게 보다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만났던 다양한 공간과 만남들이 떠올랐다. 열려 있는 대문, 길에서 마주치는 이들과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호들갑스럽게 나누는 인사들, 거실과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 각자의 집들이 모여 공동체의 큰 집을 이루는 건축물, 초대없이 놀러가 배불리 먹고 놀았던 잔치들. 거리의 아이들은 날 ‘얼굴하얀 외국인’이라 놀려댔지만, ‘당신은 집에서 먼길을 떠나와, 다시 집에 도착했다’고 말해준 낯선 얼굴들 또한 만났다. 2016년 처음 부르키나파소에 도착해 언어도 문화도 낯설어 몸이 굳어 있던 가운데 만난 ‘집밥’같은 말이었다. 


이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건, 나이가 든 사람이거나 젊은 사람이거나 ‘이것이 우리의 문화입니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손으로 빨래를 빨면서, 거실의 모래를 쓸면서, 차가운 물이 떨어지는 샤워기 밑에서, 세탁기도 청소기도 보일러도 있는 한국의 집이 더 아늑하게 떠올랐던 날이 있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계는 찾아보면 발명되어 있고, 집을 꾸미려면 하루만에 ‘쿠팡’으로 멋드러지게 인테리어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의 문화는 과연 무엇이지? 라고 되물었을 때, 나는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여러번 상상해보았다. 이 곳을 방문한 낯선 누군가에게 ‘이것이 우리의 문화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나는 과연 그때 무엇을 우리의 문화라고 말하고 싶은지를 계속 되뇌이면서.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펀딩’을 맡으며, 지금 누구에게 가장 ‘지지와 연결’이 필요할까를 생각하며 이슈를 연결하고 후원처를 찾았다. 지금 당면한 사회이슈들은 아주 많지만 그 중 ‘미등록’ 체류 외국인에 관한 이슈는 나의 친구와 지인들로부터 듣고 겪으며 오랫동안 분통을 쌓아온 이야기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불법체류’로 만들어버리는 법의 문제를 보진 않고, ‘불법’이라는 딱지는 현재 불공평한 법을 합리화 시켰다. 


그중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이야기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더 자세히 알게되었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부모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난민 또는 미등록 이주민으로, 한국에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18세 미만의 아이, 청소년을 일컫는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선택으로 한국에 태어났거나 이주되었지만, 자신의 신분을 입증할 수 없어 시민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 등에서 보호받지 못한다. 건강보험에 가입을 할 수 없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도 자격증 시험을 딸 수 없고, 휴대폰 개통도, 인터넷 쇼핑도, 은행계좌 개설도 할 수 없다. 장애가 있어도 장애인 등록조차 하지 못한다. 성인이 되면 한국에서 계속 체류하며 일하거나 공부할 수 있는 합법적인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법 자체가 없다. 


여기에서 초점은 ‘이주’가 아니라 ‘아동’에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라면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보호받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태어난 곳에서 말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고, 좋아하고, 꿈을 키워온 이들에게 ‘집’은 과연 어디일까. 20년의 삶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그들의 ‘본국’은 과연 어디일까? 어머니, 아버지의 나라의 말은 알지 못하고, 문화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다. 당신의 국적이 어디든, ‘등록번호’가 있든 없든, 우리의 몸은 지금 여기에 함께 살고 있다.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한 다리 건너 한 다리’ 연결되어 있는 이 세계 속에서 나도 ‘여기가 당신의 집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문화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리가 만든 집은 약 2주간의 기간동안 사십여명의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이제 작은 걸음을 뗀 ‘다리’의 움직임에 큰 힘이 되는 만남들이었다. 그 중 법무부에서 난민지위를 심사하는 분께서 관객이자 후원자로 직접 방문해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미등록 이주민과 어린이들의 사연을 매일 접하며 직접 다가가지 못한 점이 죄책감으로 남았는데, 다리 프로젝트를 통해 다가갈 수 있었다고. 앞으로도 ‘다리’는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고 지지하며, 당장은 멀게 느껴지지만 함께라면 언제가는 가닿을 곳으로 가보려고 한다. 여러분들도 함께 이어주신다면, 더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로 새해에도 힘차게 움직여보자!

글 / 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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